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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May 20.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20 Little tree is not alone

         (부르고스에서 오르니요스까지 20.2km)


  서머타임이 시작된 후 같은 아침 7시라도 엄청 깜깜하다. 노란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아서 자꾸 더 두리번거렸다. 부르고스 외곽으로 빠져나오자 희뿌옇게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어젯밤 묵은 알베르게에 한국인 남자 순례자들만 네 명이 더 왔다. 20대 청년, 발목 접질린 30대, 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허리를 다쳐 열흘 중 칠일을 버스 타고 왔다는 40대, 날렵해 뵈는 나와 동갑내기 지리산 날다람쥐까지 스페인 무리만큼 시끌시끌했다. 광주에서 왔다는 동갑내기는 하루에 40킬로미터는 거뜬히 다니고 있는 듯했다. 나이는 역시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오늘 아침 새벽에 같이 나섰지만 그의 노란 가방 커버만 보일 듯 말 듯 휑하니 앞서갔다.


  모두가 다른 스피드로 같은 길을 간다.


  도심을 빠져나오자 우리나라 시골의 논길을 따라가는 듯한 풍경이 이어졌다. 매우 익숙하고 친근하기까지 했다. 10킬로미터쯤 가서 잠깐 쉬고 다시 이어지는 길에서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가 새로운 세계로 빠져 들어갔을 법한 푸른 초원과 황량한 산이 나타났다. 연이어 녹색 초지 사이로 길만 끝없이 이어지다 파란 하늘이 맞닿는 곳에서 뚝 떨어질 것 같은 곳이었다.


가도 가도 뱅글뱅글 돌아가며 이어지는 초록 공 위를 걷는 듯했다. 초록의 지평선 위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담대함은 먹먹함 그 자체였다.


  Little tree is not alone(작은 나무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뒤에서 천천히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순례자는 마치 구름 속에서 걸어 나오는 신선 같았다. 내가 그에게 “You look like a godly man out of the clouds(구름 속에서 나오는 신선 같으세요)”라고 하자 그는 빙긋 웃었다. 캐나다에서 오셨다는 노신사 분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열심히 앞으로 걸어가셨다.


  난 점차 발뒤꿈치 통증이 심해지면서 더 뒤처졌다. 걷기 시작해서 두 시간이 지나면 발도 아파오기 시작하고 배낭은 자꾸 어깨를 끌어내리듯 무거워진다. 그래도 하루 20킬로미터 정도 걷는다. 전체 800킬로미터 순례길 중 초반은 고통의 시간이고 중간은 명상의 길, 마지막 세 번째 파트는 깨달음의 시간이라 고 누군가 말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서는 걸까?


  길은 여전히 끝없이 이어지고 이국적 풍광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길 위의 노매드로서 피로감과 지루함도 슬쩍슬쩍 끼어든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끝없이 광대한 나무도 없는 초원에서 새들의 지저귐은 신비 수준이다. 어디에 사는 건지...... 덤불 같은 키 작은 나무도 안 보이고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풀밭에 옹기종기 앉아 있나? 파란 하늘 위를 올려다봐도 없다. 넌 뭐냐? 하지만 바다같이 광대한 초원에서 그들은 물고기같이 살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저리 지저귀는 걸 보니.


  드디어 초록 공 같던 길이 뚝 떨어지는 지점에 다다랐고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하강하는 내리막이었다. 길은 360도 초록 산으로 둘러싸여 움푹 꺼져 들어간 분지로 이어지고 작은 마을에 닿았다.


  오르니요스!(Hornillos)

  오늘의 목적지


  거대한 대자연 앞에 너무나 작은 인간을 상기시키는 곳,

  Little tree is no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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