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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May 30. 2018

숲 속의 작은 방-자체 고립 르포르타주 3


 지난 밤 알람도 삭제하고 잤다. 사람, 강아지 룸메없이 게다가 으르렁대는 낡은 냉장고 소음도 제거하고 숲 속 작은 방에 자체 고립 완벽한 밤이었다.

 

 동쪽 창문으로 새벽 햇볕이 느껴진듯 비몽사몽 간에도, 그간 아쉬웠던 아침 잠 보상받듯 잠자리를 고수했더니 온갖 꿈들이 시리즈로 이어졌다. 이만하면 됐어 쯤에서 일어나 나를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어제 남은 현미밥 약간, 삶은 달걀 하나, 김, 무채와 연근볶음 아마 3박 4일 동안 같은 메뉴일거다. 다른 식재료를 준비해 온 게 없으니. 숲에 들어가 나물을 채취한다면 모를까.

 

 미니멀라이프를 단박에 실현했다.

혼자 있으니 먹는 건 당연히 배고플 쯤 먹고 식기도 최소로 쓰게되고 설거지 물도 쓰레기도 거의 없다할 정도다. 이렇게 혼자살기 방식을 집단에게 적용할 수 있을 지, 지속가능할 지 숙제로 넘겨놓는다.

 실제 미국의 스콧 & 헬렌 니어링 부부는 하루에 4시간은 생산을 위한 노동, 4시간 지적 활동, 4시간은 타인과 교류하며 함께하는 삶을 실천하면서 100세까지 살고 서서히 곡기를 끊어 죽음을 의식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암튼, 식 후 커피는 소확행의 하나라 포기할 수 없어 미니멀가방 안에 담아왔다. 역시 컵이 없어서......밥그릇 위에 젓가락 두 개를 살포시 걸치고 드립 후 탕약 짜듯 한 번 비틀어줬다. 밥공기에 내린 커피가 딱 사약 비주얼. 이번엔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창 밖 초록산을 마주하고,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무 소리, 여러 가지 음색의 새소리까지 조화롭다. 조화롭지 않은 자연의 삶이 있을까?

 

 커피잔이었다면 마당에 내려가 어슬렁거리며 마셨을텐데...... 테라스 난간에 노랗고 작은 새가 찾아와 꽤 크게 지져귀고 포르르 날아가버린다.

 갑자기 나도 그들처럼 미션 하나 클리어해보고 싶었다.

새 불러들이기! 한번도 해본 적 없지만. 쌀 알 몇 개를 난간턱에 놓았다. 그새 한 녀석이 왔다가 내 인기척에 그만 날아가버렸다. 앗싸! 창 안쪽 방 귀퉁이에 앉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온다. 에이 :(

 

 시간은 이미 정오를 넘어가고 있었다. 잠깐 주변을 돌아보려고 나갔다가 캠핑장 위쪽에 난 길을 발견했다. 계획도 준비도 없이 나와서 '힘들면 내려오지 뭐'하는 맘으로 천천히 걸어 올랐다. 평일 낮이라 나 말고 인적은 없고 새들이 산주인이다. 경계경보인지 환영인사인지 꽤 높은 피치로 짧게 반복해서 끼역끼역 빽빽거렸다. 소리주인을 아무리 찾아도 위장술이라도 부렸는지 안보인다. 저들끼리 요란하다.

 정상이 가까이워지니 또 다른 경계경보 새소리가 났다. 이번엔 저음으로 길다. 뚜뚜뚜뚜......역시나 못 찾았다.

 

 두 개의 봉우리 갈림길까지 다달았다. 왼쪽 깃대봉과 오른쪽 적취봉. 팔영산은 여덟개의 봉우리를 뜻한다. 안내서에 따르면 옛날 중국의 위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에 감탄하여 신하들에게 찾게 하였으나 중국에선 찾을 수 없어 우리 나라까지 오게 되었는데, 왕이 몸소 이 산을 찾아와 제를 올리고 팔영산이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란다.


 먼저 왼쪽 깃대봉으로 올랐다. 오른쪽 적취봉보다 50미터 짧아서. 이미 정상이라 봉우리 가는 길은 바위 능선 걷는 길이었다. 깃대봉 바로 아래 펼쳐진 다도해! 올망졸망 봉긋봉긋 물 속에서 솟은 듯하다. 시원하면서도 따뜻하다. 능선을 따라 나머지 7개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오르락 내리락 장관이다.

 

 나 혼자 산주인인양 뿌듯해하고 있는데 산봉우리 바위 뒤에서 여성 등산객들이 시끌시끌 개미처럼 연이어 올라왔다. 반갑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반대편 산 아래부터 올라와서 꽤 힘들고 긴 코스였나보다. 왁자한 세러머니가 한참 걸렸다. 바위를 등지고 앉으니 산 아래 손톱만한 휴양림 숙소 건물이 보였다. 해발 601미터라니 낮은 산은 아니다.


 하루 산행으로 정상까지 오른 산악회원들은 컴팩트한 성취감으로 충전될 것이다. 동행자와 함께 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해도 혼자가 아니라서 덜 힘들고 덜 지친다. 함께라면 하루에 할 수도 있을텐데 난 혼자라서 이틀 삼일에 나누어 하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면 같은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 성취감의 크기와 깊이는 각자의 몫일 뿐.


"유일한 참된 충고자 고독이 하는 말을 듣도록."

(스테판 말라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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