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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l 01.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40  D-1

(리바디소다바익소에서 오페드루소까지 20.3km)


  산티아고 입성을 하루 앞둔 아침. 마지막을 좀 더 늦추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집 나선 지 40여 일 만에 밤새 덜 깨면서 잤나 보다. 당연히 평소보다 출발이 조금 늦었다. 그래도 산 위 일출을 놓치고 싶지 않아 아침 먹을거리를 들고 길로 나섰다. 다행히 이제 막 시작이었다. 이미 길에 나선 젊은 순례자들이 있었다. 전날 오르락내리락 몇 번 반복되던 산자락 아래서 잔 덕분에 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다. 하늘엔 구름까지 잔잔히 물결무늬로 퍼져 있었다. 태양은 한 번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적이 없다. 흐린 날엔 구름에 양보하듯 천천히 온 땅을 비추고 비 내리는 날엔 비에게, 안개 낀 날은 안개에게, 그저 큰 형님처럼 백그라운드가 되어 주었다. 그런 해를 마중하는 아침이 좋아서 부지런히 나섰나 보다. 별 바래다 주기도 당연히!


  나에겐 도착하는 곳이 곧 목적지나 끝이 아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함으로써 끝나거나 완성되지 않는다. 내 삶이 스스로 계획한 어느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신이 부르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한때 오만하게도 내 생명의 마지막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생명력 그 자체, 생존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있어서, 네가 있어서 다행이고 충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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