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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ul 23.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49 & 50  한 사람만 곁에 있다면

  (마드리드)


  마드리드에 갈 만한 곳이 꽤 있어 보인다. 일단 공원부터 가야겠다. 초록이 그립다. 나를 안정시킬 초록의 자연. 캐나다에서 오신 퇴직 할아버지 보브(Bob), 엄청 할 얘기가 많으시다. 일단 시작하면 휴대폰 앨범까지 다 보여주며 끝이 없다. 아무튼 할아버지 덕에 괜찮다는 숙소를 소개받았고 나머지 일정은 마드 리드 한인 민박에 예약했다. ‘메뚜기’ 안 하니 마음이 훨씬 편하다.


  마드리드 중심부를 따라 공원으로 향했다. 서울의 명동만큼 복잡하다. 길은 오가는 사람들에 채일 정도. 도로 위에 차들은 어찌나 많은 지. 어떻게 이런 소음과 인파 속에서 살 수 있을까? 시골 쥐가 서울에 온 느낌이 이랬을까? 마드 리드에서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이 레티로(Retiro) 공원이었다. 다리가 저절로 이끌리듯 찾아와 나무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깊이 초록을 들이마신다. 휴우~ 이제 안정감이 서서히 느껴진다. 길게 늘어선 나무들 옆 벤치에 앉아 빵도 먹고 오렌지도 먹고, 마음과 몸이 평안하다.


  복단이 물었다. 나무를 껴안아 본 적 있느냐고? 오늘이다. 맘에 드는 녀석을 찾아 안아 봐야겠다. 딱딱한 껍질이 거칠다. 비와 바람, 추위, 뜨거움, 눈, 가뭄과 장마까지 견뎌낸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갑옷, 그 안에 켜켜이 저장해 둔 기억의 창고 나이테들을 가늠해본다. 귀를 대어 본다. 두 손을 다 둘러도 닿지 않는 둘레다. “난 네가 좋다.”라고 속삭여준다.


  공원 안으로 들어갈수록 키 크고 우람한 녀석들이 듬성듬성 제 가지를 맘껏 뻗어 그늘 아래로 사람들과 새들을 불러들인다. 소풍이라도 온 건지 십 대 아이 들도 떠들썩하게 몰려다니고 조깅하는 사람, 관광객, 산책 나온 아기와 엄마와 아빠들, 강아지들까지. 

  

  평화다. 

  한 사람만 곁에 있다면 완벽한 날이다.


  공원을 다 밟아보려면 한나절은 족 히 걷기만 해야 할 것 같다. 중심 부에 크리스털 궁전이라는 유리 궁전이 연 못 앞에 인형의 집처럼 자리 잡고 있다. 조금 옆쪽으로 벨라스케스(Velazquez) 궁전이 현대아트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독일 설치미술가 발터 (Walther)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흠, 아티스트들은 평범함을 넘어서 는 특이함, 비상한 영감(inspiration)을 현실로 불러들여 구경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마치 마술사처럼. 그의 작품은 그의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창작 의도를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력에 맡기고 즐길 수밖에.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점에서 예술은 내게 흥미롭다. 타성에 빠져있는 나를 마구 흔들고 뒤집어 새로움과 낯섦을 경험하게 하고 그로부터 더욱 유연하고 관용적인 관점과 시선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여행 또한 발로 하는 예술 창작활동이다. 기존의 생활권이 아닌 새로운 곳, 낯선 사람들과 환경을 캔버스 삼아 제 발로 그려내는 행위 예술이다.


  저녁엔 캐나다 할아버지, Bob과 한식당에 가기로 했다. 그는 퇴직 후 시간이 많아진 덕분에 온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고 했다. 카미노 순례 경험도 여러 번이고 70이 넘은 나이에도 의욕과 힘이 넘쳐 보인다. 마드리드 중심에 있다는 한식당 ‘사랑방’을 휴대폰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갔는데, 앗! 저녁엔 영업을 안 한다. 할 수 없이 오던 길에 봤던 웍투워크(Wok to walk)라는 중국식당에 가서 난 현미 볶음밥, 보브(Bob) 할아버지는 국수를 시키셨다. 할아버지는 마치 한국 남자들처럼 내 것까지 계산하셨다. 그러고 싶다고 하시며. 원래 저녁 먹고 프라 도 미술관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난 오늘 피곤해서 쉬기로 하고 할아버지 혼자 가셨다. 내일 오전에 다시 솔(Sol) 광장 앞에서 만나 시내 구경하고 한식당에 다시 가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가 끝나고 기차를 타고 스페인의 중심 마드리드로 오면서 이제 두 번째 여정이 시작되었다.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 보기가 콘셉트이다. 현지 생활인처럼 살 상황과 조건은 안 되고 완전 관광객 모드도 아닌 그 중간의 느린 여행자쯤이 될 것 같다. 무엇을 꼭 해야 하는 의무나 생계 걱정 없이 내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의 시간이다. 거리낌 없이 두려움과 낯섦도 친구 삼아 혼자 놀기의 달인이 돼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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