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시우의 꿈
2016.11.27
이삿짐을 정리했다. 이 집에서 마지막 밤이어서인지 여기 이사 온 첫날 밤이 문득 생생하다.
침대에 누워 낯선 벽지의 천장을 바라보며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던 밤. 어제까지 다른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 나에겐 아직 낯선 곳에 누워서 느꼈던 상당한 이질감. 이 집에서 2년 하고도 3개월을 더 살 면서 낯섦은 다시 익숙함으로 바뀐 지금, 나의 모든 삶이 부서진 채로 여길 떠나야 하는 마음을... 이 서글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가능하다면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시우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이곳을...
시우의 유품 상자를 박스테이프로 고정시키는데 눈물이 흐른다. 문득 우리가 이사 왔던 날 시우가 쓴 일기가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서 상자에서 2년 전 4학년 때 일기장을 꺼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날에 대한 일기는 없었지만 그때는 선생님께서 일기에 대해 주제를 정해 주셨나 보다. 그날의 일기는 '2040년에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란 주제였다.. 내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다면 부모님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혹시 내가 그때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지만'이란 내용도 적혀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꿈을 이루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쓰여있다.
시우가 영어 학원에서 청와대 견학을 갔던 일이 생각난다. 시우는 어리지만 대통령이나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청와대 견학이 매우 흥미로웠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인 남양주시의 현역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서 잠시 아이들과 질의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시우는 그 국회의원에게 "의원님은 꿈을 이루셨나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그 당시 영어 선생님이 시우가 크게 될 것 같다고 질문이 기특했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저 일기가 자신의 꿈을 이룬 정치인을 만난 뒤에 쓴 글인지 그 이후인지 모르겠으나 시우는 큰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던 아이였다.
분명 우리 시우는 2040 년에 시우의 꿈을 이뤄 존경받는 사람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엄마는...
매일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세상은 흘러가고, 결국 나도, 우리도, 그 흐름에 따라 순응하며 흘러갈 수밖에 없는 사실을 머리로는 인지하면서도 마음은 계속해서 좌절하게 된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 이 꿈만 같은 현실을... 나의 아들, 그 생생한 육체를 가진 튼튼한 시우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애써 평온을 가장했던 내 마음은 얇은 살얼음처럼 단숨에 금이가고 내 안의 슬픈 액체가 무방비로 쏟아져 나온다. 나의 머릿속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돌아간다. 수많은 가정법을 대입하여 그날을 바꾸기 위한 무한 반복 재생 버튼이 눌러진다.
날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상실감과 마주한다... 어제는 우리가 가던 스키장이 개장을 했다. 마침 첫눈이 내렸다. 신랑과 한비의 스키 시즌권을 수령하러 갔었다. 드디어 겨울이 돌아왔다. 우리가 스키장에서 함께했던 겨울시즌이 다시 돌아왔는데... 눈 덮인 슬로프... 스키를 타는 사람들... 가족들... 행복한 표정들... 믿을 수가 없다. 이 부재를... 우리가 함께여서 행복했던 그 겨울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2016년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당시 2년간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편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기일이 8주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써내려 갔던 피투성이였던 나는 시간이 처방하는 어느 정도의 망각을 통해 상흔을 남길지언정 흘리던 피는 서서히 멈추고 상처는 단단해진 채 상실의 아픔도 나의 일부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다고 지금도 이렇다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고 위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