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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아 Aug 29. 2024

상실, 남아있는 고통에 대하여#18

쓸쓸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18. 쓸쓸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오랜만에 잠시 정신없이 바빴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바쁘게 돌아간

일상이 오랜만이다.


꽃다발을 만들며 울다가 들어오는 주문에 다시 정신없다가  슬펐다가 그렇게 나사 풀린 사람처럼 허둥지둥 정신없이 일을 끝냈다.


아이들을 키우며 최근 7년 11월부터 시작되는 겨울 유치원 행사와 졸업식, 입학식, 그리고 5월 어버이날 스승의 날 시즌에 나는 늘 바빴다.




나는 정식 플로리스트 과정을 밟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오랫동안 비누꽃과 조화로 마치 생화처럼 보이는 조화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제작했다.

개인 블로그와 지역 커뮤니티 기반 인터넷 카페등에서 인기리에 판매할 만큼 재주가 있었다. 꽃다발 판매는 소소 용돈벌이 이상의 수익을 안겨 주었다. 재료대 외에는 온전히 나의 감각과 손재주 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가능했다.


매년 아이의 재롱잔치나 졸업식 등에 주문하는 사람들이 올해도 나를 찾았다.

올해는 미리 준비도 없이 어쩌다 보니 들어오는 주문들로 급히 시작해서 한 보름을 정신없이 보냈다.

누군가의 졸업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만들며...




올해는 시우도 초등학교 졸업을 하는 해다. 졸업식 전날 따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시우의 졸업장과 앨범을 받아왔다.

학교에서 명예 졸업으로 시우의 졸업장을 따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도, 담임 선생님께서 졸업식 행사 때 시우가 나오는 사진과 영상을 틀 건데 괜찮으시겠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학교에서 시우의 졸업앨범을 받고 나와 차에 앉았을 때도 그 복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고 나는 주저앉았다. 


어쩔 수 없는 비통한 마음은

아이들의 졸업을 기다리며 기쁘고 설렌 마음으로 꽃다발을 주문하는 엄마들을 보며 더욱 배가되었다.


스키시즌 내내 시우 없이 셋이 수없이 스키장을 다니면서  고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게  많이 울었다. 신랑은 신랑 나름으로 나는 나대로 한비는 한비대로 그렇게 아팠던 겨울... 수없이 반복될 이 계절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사를 하고 겨울이 오고 스키를 타고  2월 졸업식이 끝나고 돌아보니  시우 없는 반년이 훌쩍 지나있다.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달이, 한 계절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울고 있는 나를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고도 그렇게 세월은 지나갔다.  


세상의 어떤 고통과 형벌도 이보다 더 잔인하지 않을 텐데...  지독한 아픔이다...  아무리 울어도 조금도 가시지 않는... 마흔 살을 살아오며 평생 울었던 눈물의 몇백 배를 울고도 결코 멈출 수 없는 비통함...


한 순간 모든 불이 꺼지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길을 잃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마음의 확신 없는 기도 우리는  모든 걸 극복하고 괜찮아져야 한다는  일념하에 실낱같은 믿음으로 붙들어본다... 이 상황을 그저 감사하다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누  나약한  크리스천로서...




시우 저금 통장을 해지하기 위해 은행에 갔을 때도, 은행직원에게 전화로 필요한 서류를 물을 때도,  서류를 준비하려고 동사무소에 갔을 때도


시우의 죽음이라는 말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해야 하고 서류상의 사망이라는 활자 실체와 부딪혔을 때 더 큰 절망과 아픔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하는 것도 모두 내가 겪어야 하고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참 안된 사람이네 불쌍하네 취급받는다는 것도 참을 수 없다. 동정과 의구심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자신에 대한 안도감을 느낄 내 앞의 타인들에게 화가 다.  나를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물론이다.


나는 생각하고 다짐한다.


지금껏 존재했던 내 안의 허영과 오만함 그리고 부주의함 같은 것들을 다 버리겠다고. 





나는 잃었다.


사소한 나의 친절 또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벼운 농담과  사교적인 언어를


혼자 있어도 지을 수 있 미소를


여행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찬사를


마음속을 채웠던 삶에 대한 열정을


그런 열정으로 뜨거워지던 가슴을



그렇게 내 삶 안에 존재하던

다양하고 풍성했던 색을 잃다.

많던 색들이 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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