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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아 Aug 08. 2024

상실, 남아있는 고통에 대하여 #16

허무와 삶의 원초적 욕망사이

허무와 삶의 원초적 욕망사이



남편이 5일 동안 싱가포르로 출장을 간다. 새벽 4시, 남편을 공항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고 들어왔다.

우리가 태국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출근하는 남편을 이른 새벽 시간에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던 날이었다. 선잠을 깬 시우가 전화를 했다. 잠이 깼는데 엄마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도 그날처럼 새벽잠을 깬 녀석에게 전화를 받고 싶다. '아빠 오늘 출장 가시잖아'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내가 집에 들어가면 어느새 다시 잠들어 있을 너를 상상한다.

집에 들어가 시우 방문을 열고 책상에 앉았다.
빈방 너의 빈자리에 눈물을 떨군다. 

기도를 한다.
주님의 선하신 계획을 강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약한 나에게 그 믿음을 주시기를...


책상 위 얼마 전 현상해 둔 시우의 사진들을 본다, 아무리 보아도 인정할 수 없는 너의 부재.

우리가 과연 이 삶을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이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한발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 분인데 지금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2주 이상 허리가 많이 아팠다. 허리를 똑바로 펴지 못했고 세수하려고 허리를 굽히는 것도 힘들었다.  앉는 것도 눕는 것도 모두 불편했고 힘들었다.
신경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퇴행성 디스크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현상으로 디스크 간격이 좁아지면서 일어나는 통증이라고 했다. 코어 근육 운동을 해서 단련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내 나이가 퇴행성 디스크라고?' 하는 반문이 일었다가 '40대라는 나이가 젊은이도 아니고 이제 서서히 노화로 인한 현상이 일어날 시기라는 게 이상하지 않지'라고 수긍이 되면서 이내 서글퍼졌다. 

일 년 동안 열심히 한 운동이 결국 몸에는 무리를 주고 있었나 보다.


누워서도 허리를 들 수 없어 뒤척이는 것조차 괴로웠던 시간 동안 우리에게 허락된 건강한 육신은 정말 큰 축복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루하루 육신의 고통 속에서 과연 우리가 시우와 함께한 예전과 같은 완전한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반문했다. 하지만 결국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부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삶의 욕망이 내 마음 한편에서 일어나는 걸 느꼈다.

자고 있는 한비  곁에 누웠다. 한비는 태국에서 돌아온 후로는 한 번도 오빠를 기억하며 울거나 회한의 말을 하지 않는다. 견뎌내 줘서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때로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아이처럼 그냥 울어버리거나 힘들어하면 차라리 나을 텐데... 갑자기 아이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마치 어른처럼 아픔을 견뎌내고 있는 아이가... 애어른같이 어딘가 변해버린 너의 모습이...  분명 예전에 오빠와 함께 할 때와는 달라진 너의 공기가... 더 크게 웃어도 예전과는 다른 슬픔의 잔향이 엄마를 더 아프게 해...


2016년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당시 2년간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편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기일이 8주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써내려 갔던 피투성이였던 나는 시간이 처방하는 어느 정도의 망각을 통해 상흔을 남길지언정 흘리던 피는 서서히 멈추고 상처는 단단해진 채 상실의 아픔도 나의 일부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다고 지금도 이렇다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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