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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아 Jul 16. 2024

상실, 남아있는 고통에 대하여#13

가을이 문을 열었다.

13. 가을이 문을 열었다.



주말 연휴, 날씨는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주방 창문에 달린 롤 스크린을 끝까지 올렸다. 창문에 걸친 새파랗게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나는 그만 싱크대 앞에 주저앉아서 울고 말았다. 이 아름다운 계절 앞에 다시 또 목이 메어온다.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지독한 여름이, 타들어가던 더위가 가고 나면 조금 나을 것 같았다.

먼지를 씻기는 깨끗한 바람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이, 이 아름다운 계절이 내안의 상처를 후비며 시리게 할 줄 몰랐다.


처를 타고 흐르던 피는 잠시 멈추는 듯했다. 상처 위에 말라붙은 딱지는 내가 언제 아물었냐는 듯 갈라지고 벌어진 틈새로 다시 피가 흐른다. 이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순간순간 나를 찌르는 상처의 바늘들은 언제 어디일 거라는 예고가 없다. 그것은 비형식적이며 비정형적으로 시시각각 다가온다. 예기치 않은 장소와 시간 또는 언어로 혹은 기억으로.

나도 남편도 한비도 모두 각자 다른 장소에서 각자 마주친 일상에서 겪어 내야 하고 울어야 하고 애써 외면해야만 할 때도 생기리라.




우리는 주말 정오를 훌쩍 지난 시간, 갑자기 강원도 화천 봉오리에 가기로 했다. 꽤 오랜만이다. 아이들과 한 삼 년 전쯤 왔던 게 마지막이다. 그 사이 포천 이동까지 길이 뚫려 있었다. 우리가 화천을 떠나온 시간이 13년이나 흘렀다는 게 잘 믿기지가 않는다.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꾸리고 첫 아이 시우를 낳 곳이다.  결혼과 출산이란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고 부족한 것들이 많았지만 결핍이 있어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그래서 추억으로 남는 곳, 가끔 생각나고 와보고 싶은 우리 시우의 고향 같은 곳이다.


신혼 때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던 강원도의 첩첩산중 시골풍경이 오늘은 예쁘고 또 예뻤다. 눈 돌리는 곳마다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이. 강원 내륙의 산은 산조차도 보기 싫은 울퉁불퉁 근육질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낯설고 불편한 시골살이가 답답했던 도시에서 온 20대 젊은 새댁이었다. 어느새 막 마흔이 된 나는 나무와 꽃을 좋아하고 오늘 내 앞에 있는 가을을 품은 아름다운 산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심란한 마음도 조금 가라앉는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뒷자리에 앉은 한비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려나,

함께 있어도 결국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조각들을 삼키며 서로를 바라봐야 함이 아프다.




매년 가을이면 아이들 학교에서 축제가 열린다. 다음 주 열리는 축제 발표회로 분주한 학교 아이들. 한비도 자기 반이 연주하는 작은북 연습에 여념이 없다.


축제 준비로 학부모회에서 회의가 있어서 오전부터 학교에 갔다. 오늘따라 유난히 시우 친구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직은 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는 건 좀 더 성숙한 여자 친구들이다. 보통 남자아이들은 어쩌면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인사하기도 한다. 이 녀석들은 벌써 우리 시우를 잊어버린 건가 섭섭한 생각도 들만큼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지나간다.


들뜬 축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나의 맘이 가라앉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작년 축제 때 시우반이 발표했던 짧은 독립영화 상영과 엄마한테 자기가 받을 꽃다발을 만들어 가져오라 주문했던 것, 발표회가 끝나고 먹거리 장터에서 엄마가 챙겨준 쿠폰으로 맘껏 먹으며 즐겼던 작년이 떠오른다.


이번 축제에 시우가 없다... 학교에서 엄마를 보면 본 척 만척하는 한비와는 다르게 시우는 늘 발표회장 멀리서도 엄마를 찾고 엄마가 보이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좋아했다. 뒤돌아보면 시우가 정이 많고 감성적이다... 나를 닮았다... 이성적인 아빠를 닮은 건 오히려 딸인 한비다.


마트에서 장난감 같은 선물을 고르게 하면 대부분은 갖고 싶은 게 여러 개라 고르기도 힘들어하고 골라도 다시 바꾸고 싶어 하는 게 일반적인 아이들이다. 한비는 유치원 때도 자기가 고른 물건을 번복하거나 사고 나서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다. 한 번은 사자마자 망가졌던 공주놀이 세트가 있었다. 그때도 괜히 이걸 골랐다고 후회하거나 망가진 것을 보고도 울거나 다시 사달라고 하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시우는 반대로 고르고 나서도 다시 바꾸기를 몇 번씩하고 집에 와서도 괜히 이걸 골랐다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적이 많았다. 둘은 정말 달랐다.


자신의 슬픔에 대한 속마음을 드려내지 않는 한비를 보면 정말 괜찮은 건지 걱정스럽다. 태연한 척 담담하고, 감정에 대해 물어도 회피는 태도로 모두 괜찮다고 하는 것이 정말 한비의 속마음인지 알고 싶고 걱정도 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차단해 버리기로 했다면, 지금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2주 전부터 한비는 미술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상담사는 초기 상담내용으로 판단해 볼 때 오빠의 사고로 인한 큰 트라우마로 인해서 한비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적인 지지가 무너지지 않았다. 건강한 정서를 보인다고 말했다.

조금 안심은 되지만 더 긴장하고 지켜봐야겠다.

한비가 스스로의 벽장을 걷고 아픔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저 연약하고 작은 생명이 죽음에 관해 어떤 고통을 느낄지 상상하기 두렵다.




시우가 함께 할 때는 남편이 없는 저녁도 혹은 휴일도 한 번도 외롭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없으면 한가 져서 좋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이란 게 이렇게 서럽고 고독한지 몰랐다.


저녁을 짓는 시간, 지는 해가 들어오는 주방 창 너머 노을빛이 너무나 슬퍼서 목이 멘다.

시우가 학원에서 허기진 배로 허겁지겁 들어 올 시간이다. 부지런히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저녁시간의 모든 것이 단조롭고 심플해졌다.

사다 놓은 재료를 소진하고 만들어진 음식을 소비하는 것이 상당히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나를 일류 요리사로 등극시키는 최고 맛있다며 엄지손을 치켜드는 시우의 찬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엄마가 만든 모든 음식을 늘 맛있게 먹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엄마한테 정말 큰 효도였다... 시우야... 아주 맛있게 엄마의 음식을 먹으며 흡족히 웃는 너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 좀 더 부지런히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했던 엄마가 너무 미워진다...



2016년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당시 2년간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편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기일이 8주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써내려 갔던 피투성이였던 나는 시간이 처방하는 어느 정도의 망각을 통해 상흔을 남길지언정 흘리던 피는 서서히 멈추고 상처는 단단해진 채 상실의 아픔도 나의 일부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다고 지금도 이렇다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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