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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선 Jul 25. 2024

경계 세우기

 아르바이트하는 카페 바로 앞엔 17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요구르트 사장 님이 계신다. 십 년 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도 계셨던지라 다시 이곳에 왔을 때 내심 반갑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작년 퇴사 후 놀고 있던 내게 아르바이트 제안을 해준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나는 8시에 출근하기 위해 7시쯤 일어나는 일이 고역이었다. 힘들게 출근을 하면 보이는 요구르트 사장 님의 모습이 당장이라도 달려가 떠마시고 싶은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잠이 깨지 않을 때, 청소하다 땀이나 갈증이 날 때, 몸에 힘이 없을 때 저 기능성 요구르트들을 마시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종종 뛰쳐나가 함께 일하는 동료 몫의 요구르트까지 구매하고 나면 마치 미뤄 둔 숙제를 해결한 듯 뿌듯함과 만족감이 들곤 했다. 늘 갈 때마다 내가 예쁘다며 뭐라도 하나씩 챙겨주는 사장 님 덕분에 못 다 채운 인류애를 채워가면서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이것저것 구매해 먹다 보니 맘에 드는 유산균 요구르트를 발견했다. 가족들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퇴근 후 요구르트를 종종 사갔다. 사장 님은 처음에 5개를 구매했을 때 우유를 주셨고, 열 개를 사면 항 개 더 줄 테니 열 개를 사라고 하셨다. 사실 다섯 개면 충분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해 열 개를 구매하고 열한 개를 들고 가면서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맘 편히 구매를 하기보다는 많이 사야 하나?라는 부담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요구르트 구매를 잠시 멈췄다. 나중에 사야지.. 나중에 살까.. 하며 지나친 지 한 두 주 됐었나? 출근해 청소를 하는 내게 갑자기 힘내라며 건네주신 요구르트 한 병에 모든 경계심이 무너지며 ‘아 그래, 이 분은 선량하신 분이었지’ 그동안 잘못생각한 나를 자책했다. 너무 받기만 한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일하고 있던 카페에서 수박주스 한 잔을 구매해 그분께 갖다 드렸다. 동네 이웃이 생긴 것 같아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퇴근한 후 갑자기 일하던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요구르트 사장 님이 너 번호 알려달라는데 괜찮아?” “어 괜찮지.” 내 얄팍한 경험으로 얼마나 고마웠길래 전화까지 주시려고 하시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뭔가를 바라고 드린 것이 아니었는데 별거 아닌 선물에 이렇게 전화까지?? 전화가 올 때까지 나도 모르게 기다렸던 것 같다.

 마침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어떻게 전화번호를 얻게 됐는지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전화를 건 목적은 영업이었다. “새로 나온 제품이 있는데 정기결제를 하면 어쩌고 저쩌고 사은품이 엄청 비싸고 좋은 선크림이에요.” “저는 그 제품이(신제품과 선크림 모두) 필요하지 않은데요.. “ ”우리가 합의를 잘해서 항상 드시던 걸로 맞춰 드릴게요 어쩌고 저쩌고 삼 개월만 하고 딱 끊을게요.” 장장 15분간의 전화동안 내 효심이 어떻고, 내가 어떤 심성을 가지고 있고, 온갖 가진 말을 다 꺼내 내게 영업했다. 사실 넘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차피 종종 먹는

요구르튼데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때까지도 경계를 세우지 않았다. 결국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고 다음 주 출근 날 결제를 하기로 했다.


  출근하는 날까지 내가 너무 바보 같은가? 자꾸 좋다고 하니까 날 너무 쉽게 생각하시나?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또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겨짚었다. 가서 결제하려고 하는데 “맨날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하시기에 “네, 좋아요.” 했고, 정기결제 금액 결제 후 내가 먹는 제품으로 맞춰주시는 줄 알았다. 안내한 정기결제 금액은 24,000원이었는데 나는 요구르트값 22,000만 결제한 것이다. 그래서 24,000원 아니었어요? 했는데 아니라는 말씀만 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퇴근 후 요구르트 찾으러 오겠다 했다.

 나는 1시에 퇴근한다. 사장 님도 알고 계신다. 그런데 갑자기 12시 57분에 근무 중인 곳에 불쑥 들어오시더니 “비가 많이 와서 가려고 하는데 요구르트 주고 가면 안 될까?” 하셨다. 근무 중인데…라는 생각과 뒤에 동료들 눈치가 보였다. 요구르트를 받으면서 사장 님이 정기결제 이야기를 하시기에 “이 요구르트로 결제한 게 아닌가요??” 물었고, 갑자기 나중에 돈을 돌려준다는 둥 복잡하니 나중에 얘기하자 하셨다. 비가 와서 일찍 들어가신다던 사장 님은 내가 퇴근하고 1시 5분이 되었지만 퇴근하지 않으셨다.

기분이 나빴다. 말도 없이 요구르트를 추가결제하고 설명도 없이 정기결제 신청서만 요구르트 안에 넣어 놓은 사장 님의 태도가. 호의가 지속되면 둘리 된다…? 여러모로 사장 님은 내 선을 넘었다. 경계가 필요하다는 알람이 울렸다. 친구는 잘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경계보단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늘 내 방식을 선호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경계를 세우면서 다시 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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