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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선 Aug 13. 2024

휴일

주제를 정해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

  내 휴일은 단순하다. 일어나서 밥 먹고 청소. 청소를 하지 않으면 쉴 수 없다. 청소가 끝나면 티브이를 보거나 영화를 본다. 책을 읽을 때도 있다. 그러고 나면 침대에 눕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낮잠시간이다. 잠시 눈을 붙이면 두 시간은 금세 흐른다. 유튜브를 보거나 웹서핑을 좀 하다 보면 배가 고파 저녁을 먹는다. 뒷정리를 한 후 티브이를 시청하고 나면 하루는 마무리된다. 이 단순하고 게으른 휴일은 1주일에 하루 이상 꼭 필요하다. 집 밖에 한 발 자국 내딛지 않고 집 안에 꽁꽁 숨어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 심심할 틈도 심심하지 않을 틈도 없다. 약간 무료한 듯싶으면 무료하게 내버려 두고, 재밌는 건 여러 번 돌려보며 아무 눈치 없이 편히 쉬는 그런 날. 


 편히 잘 쉬었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직전 휴일을 곱씹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쉬는 것이 맞았을까? 결제해 둔 강의는? 공부하려고 구매한 온갖 책들은? 운동은? 휴식으로 가득 채운 하루지만 여전히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이 불안함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저것 벌려놓다가 한꺼번에 실패했던 날들이 불과 얼마 전에 있었다. 쉼을 갖지 못해 예민함은 최고조였고, 불안과 의심의 씨앗들은 나를 좀먹었다. 실패하고 나니 그냥 다 내려놓고 그만하고 싶었다. 부끄러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내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쉼이었다. 마지막 시험 이후 방학을 갖자 스스로 약속하고, 충분히 쉬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건만 불안은 나를 쉽게 쉬지 못하게 만든다.  매일 꾸준히 뭐 하나 제대로 해본 것도 없는데 이렇게 쉬는 게 맞냐는 내면의 목소리. 나는 두려웠다. 이룬 것은 없고 시간은 흐른다. 여전히 나는 진로를 정하지 못했고 이 정도면 잘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휴일은 내게 복잡하다. 필요한데 가지고 나면 허무한 그런 날. 캘린더에 일부러 약속을 가득가득 채우는 것도 내가 정말 사람을 좋아하기보단 이런 허무함을 직면하기 어렵고,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는 것을 회피하고 싶어 그럴지도 모른단 생각을 가끔 한다. 나의 쓸모를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종의 자위. 불안은 내게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열심히 하는 것도 많이 지쳤다. 그저 오늘 휴일을 어떻게든 보낸 것에 위안 삼으며 남은 시간의 휴일을 조금 만끽해 봐야겠다. 

 다른 사람들의 휴일은 어떨까. 나와 비슷할까.




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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