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사진가 김영갑. 한동안 이유 없이 술을 마시고 아침에 온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고 안도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뛰쳐나가듯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처음 갔었다.
『사진은 일 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거는 처절한 싸움이다. 한 번 실수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특히 삽시간의 황홀은 그렇다. 잡념에 빠지면 작업에 몰입하기 힘들다.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함은 삽시간에 끝이 난다. 그 순간을 한 번 놓치고 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일 년을 기다려서 되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다려도 되돌아오지 않는 황홀한 순간들도 있다.』 - [그 섬에 내가 있었네[1]] 중에서
그의 ‘삽시간의 황홀’ 앞에 섰을 때, 두 발은 바닥에 단단히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진에는 어릴 적 나를 온통 잡아 삼킬 것 같았던 노을이 펼쳐져 있었고 삽시간에 그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 듯했다. 자본주의에 적응하고자 자본 벌이에 충실했던 삼 십대 초반의 내게, 마침내 또다시 사랑에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던 내게, 두 딸이 번갈아 깨며 혼자 어쩔 줄 몰라 허둥대던 새벽 세 시의 내게 ‘어쩌면 이게 아닐 수도 있어’ 라며 토닥이는 것 같았다.
그 후에 어느 소설가와 함께 김영갑 갤러리에 갔었다. 그가 원해서였다. 매표소 앞에서 같이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고 정원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온전히 그 사진들을 봤으면 했다. 그는 한 시간을 넘기고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나오며 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갔군요.”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름다움 자체를 보면 사람들은 죽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한 소설가의 시니컬한 문장에도 어쩌면 아주 깊은 인간애가 있는 것 같았다.
나이를 넘어선 귀여운 누나가 있었다. 그녀와도 두모악에 갔었다. 역시 나는 정원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오면서 그녀는 언뜻 잔잔한 미소를 내게 보냈다.
“제주 사람들은 이 사람한테 정말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사진 뒤로 고구마 서리로 주린 배를 채우며 안개비가 드리운 숲과 들판에 엎드려 보름이건 한 달이건 또는 몇 년을 기다려 ‘삽시간의 황홀’을 담아두려 했던 사내를 본다.
평생을 병마와 싸우며 사는 동생이 있다. 김영갑과 같은 병을 앓고 있다. 바짝 마른 겨울나무 같은 그녀를 서울 대학로의 한 서점에서 만났다. 챙 넓은 모자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렁한 원피스를 입고 상큼한 재킷을 그 위에 걸치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옷도 그녀가 입으면 헐렁해 보일 것 같았다. 커다란 화첩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답이 없었다. 허물어진 근육 탓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후로도 우리는 그 서점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러다 서로 말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우리는 친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사실은 굉장한 떠벌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녀의 어눌한 발음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몇 년 후 그녀가 제주에 왔다. 마라도와 김영갑 갤러리만 아니면 어디든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내게 그녀는 그 두 곳만 가면 다른 데는 가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마라도에서 그녀는 주방을 뒤져 밀가루를 찾아내고 마을 사람이 모두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전을 부쳐 일일이 배달했다. 자신은 먹지도 못하는 것을. 마라도에서 나와 김영갑 갤러리로 달리는 동안 내내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잔인한 것일까. 매표소에서 걱정하는 나를 보고는 다부진 모습으로 ‘괜찮아’라는 말을 대신했다. 그녀가 갤러리에 들어가고 나는 또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정원에 겨울 햇살은 따사로웠고 내가 좋아하는 홍매화가 아름다웠다. 그녀가 나오면서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다.
그곳에 함께 갔던 친구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뒤뜰을 통해 그녀가 사진을 보는 모습을 훔쳤다. 그녀도 나처럼 사진 앞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무도 없는 구석을 찾아 흐느끼는 모습을 봤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계속 그 모습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로 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닷가에 앉아 그녀는 한동안 계속 울었다. 두모악 정원에서 기다리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금세 사라져 버리고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때로 슬프다.

[1] 김영갑 저, 휴먼앤북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