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공직에 들어와서 가장 힘들었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 생각 때문이었다. 밖에서 바라본 공직자의 모습과 막상 그 속에 내가 들어가서 직접 겪어 본모습이 너무 달랐기에. 여기서 오는 실망감과 허무함은 상당히 컸다. 나의 첫 공직 1년은 수백 번도더 수험기간을 후회했고그 선택에 대한 온갖 원망으로 전부채워졌다.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정확히 그랬다.
그 후 10년이란시간이 흘렀고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공무원이 다른 직업에 비해 더 많이 힘들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어떤 직업이든 그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을 갖고 있기에 함부로 이게더 힘들다고 어설픈 잣대를 들이댈수는 없다. 다만,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향된 팩트는 바로잡고 싶다. 적어도 '좀 편한' 직업이라는 편견만큼은.
지난 10년간 근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바로 '비상근무'다. 작년 연말 송년행사 때 발표된내부 직원대상 설문조사가 있었다.설문에 응답한 직원들이 가장 힘들다고 느낀 부분도 눈, 비, 태풍 등 천재지변과각종비상사태와 같은 다양한 '비상근무' 상황에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밥 먹다가, 씻다가, 자다가, 영화관에서도 내 전화기의 '응소' 알림 문자는 어김없이 울린다. 가족과 설레는 여행을 떠나는 중이든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든 딱히 중요치 않다. 그냥 시간 내 '응소'해야 한다.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만 떠도 경우에 따라 근무조 순번대로 전 부서가 최소 인원으로 비상근무를 서야 한다. 밤을 꼬박 새우며 대기하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한달 전 예약한 비행기표를 출발 전날 취소해야 했다. 왜냐하면 출국일임박해서 때마침 태풍이 북상 중이었고 우리 지역이 영향권에 들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풍은 다행히 우리나라 어디에도 큰 피해를 남기지 않고 얌전히 동해로 떠나갔다. 대신 나에게취소 위약금은 남긴 채.그 외에도 비상근무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이 지금껏 꽤 있었지만 내가 너무 익숙해진 건지 지금딱히 기억에 남는게 없다.
요새는 직업을 평가할 때 '편하고 좋은'직장이라는 개념부터 예전과는 많이 바뀐 듯하다. 우선은개인차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더 폭넓게 조성됐다. 그래서 '편하고 좋다'도 각자에 의해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 것 같다. 다행이다.
내가 생각하는 '편한'직장은 '남들 쉴 때 나도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이런 생각이 든 걸 보면 여기 들어와서 확실히 그 부분은 내가 많이 포기한 게 맞는 것 같다. 암튼 공무원이란 직업. 나름 고충도 있고 '작은 일상의 행복'을 생각보다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거. 내용이조금은 투정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공무원도 직장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고민으로이해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