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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pr 22. 2019

공무원은 왜 편한 직업이라 생각할까?

비상근무와 '응소'문자가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아직도 공무원이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다. 적어도 10년  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공직에 들어와서 가장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생각 때문이었다. 밖에서 바라본 공직자의 모습과 막상 그 속에 내가 들어가서 직접 겪어 본 모습이 너무 달랐기에. 여기서 오는 실망감과 허무함은 상당히 컸다. 나의 첫 공직 1년은 수백 번도 수험기간을 후회했고 그 선택에 대한 온갖 원망으로 전부 채워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정확히 그랬다.


그 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지금의 나는 사뭇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공무원이 다른 직업에 비해 더 많이 힘들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어떤 직업이든 그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을 갖고 있기에 함부로 이게 더 힘들다고 어설픈 대를 들이 수는 없다. 다만,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향된 팩트는 바로잡고 . 적어도 '편한' 직업이라는 편견만큼은.


지난 10년간 근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바로 '비상근무'다. 작년 연말 송년행사 때 발표된 내부 직원대상 설문조사가 있었다. 설문에 응답한 직원들이 가장 힘들다고 느낀 부분도 눈, 비, 태풍 등 천재지변과 각종 비상사태와 같은 다양한 '비상근무' 상황에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밥 먹다가, 씻다가, 자다가, 영화관에서내 전화기의 '응소' 알림 문자는 어김없이 울린다. 가족과 설레는 여행을 떠나는 중이든 이미 목적에 도착해 있든 딱히 중요치 않다. 그냥 시간 내 '응소'해야 한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만 떠도 경우에 따라 근무조 순번대로 전 부서가 최소 인원으로 비상근무를 서야 한다. 밤을 꼬박 새우며 대기하지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 한달 전 예약한 비행기표를 출발 전날 취소해야 했다. 왜냐하면 출국일 박해서 때마침 태풍이 북상 중이었고 우리 지역이 영향권에 들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풍은 다행히 우리나라 어디에도 큰 피해를 남기지 않고 얌전히 동해로 떠나갔다. 대신 나에게 취소 위약금은 남긴 채. 그 외에도 비상근무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이 지금껏 꽤 있었지만 내가 너무 익숙해진 건지 지금 딱히 기억에 남는게 없다.


요새는 직업을 평가할 때 '편하고 좋은'직장이라는 개념부터 예전과는 많이 바뀐 듯하다. 우선은 개인차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더 폭넓게 조성됐다. 그래서 '편하고 좋다'도 각자에 의해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 것 같다. 다행이다.


내가 생각하는 '편한'직장은 '남들 쉴 때 나도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이런 생각이 든 걸 보면 여기 들어와서 확실히 그 부분은 내가 많이 포기한 게 맞는 것 같다. 암튼 공무원이란 직업. 나름 고충도 있고 '작은 일상의 행복'을 생각보다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거. 내용이 조금은 투정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공무원도 직장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고민으로 이해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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