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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an 01. 2020

 새해 첫날, 난 아무 생각이 없다

12월 31일. 저녁을 먹고 12시가 되기 전 일부러 잠자리에 들어버린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1월 1일 아침에 눈을 뜬다. 그냥 새해 첫날이든 평상시 날이든 아침을 맞이하는 내 모습은 비슷하다. 작년부터 바뀐 나의 일상이다.


늘 새해라서 연말이니까 뭔가 달라야지. 그런 것부터 버렸다. 일상의 날을 매일 새롭게 맞이하려는 나름의 노력이라고 해두자. 바로 몇 시간 전이었던 작년 연말은 감기몸살로 며칠째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밤에도 나는 감기약을 먹고 9시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어느새 새해 아침이다. 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목을 더 꽁꽁 싸매고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약기운이 가시지 않은 몽롱한 정신으로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들어오는 아침의 찬 기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1시간 반을 걷고 또 걸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호수 주변으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산책로를 두 바퀴 정도 돌면 등에 살짝 땀방울이 맺힌다. 몸에 열기도 돈다. '아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러다 문득 반쯤은 살짝 얼어붙은 호수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오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리 한 마리 한 마리가 만들어내는 V자의 잔물결들이 반쯤 살얼음으로 덮힌 평온 호수 표면을 다채롭게 채운다. 마치 캠퍼스 위를 왔다갔다하는 분주한 붓질처럼. 유난히 더 차갑게 느껴지는 새해 아침. 호수 위 여유로운 오리들의 유희는 내겐 더할나위 없이 역동적인 삶의 단면으로 문득 다가온.


새해 첫날, 난 아무 생각이 없다. 첫날이기에. 눈부시게 새하얀 도화지를 바로 눈 앞에 둔 느낌이랄까. 2020년 이제 364일 하고 몇 시간 남았다. 난 어떻게 이 도화지를 채울 수 있을까.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질까. 호수 위를 그려내는 오리들의 다채로운 V자 물결처럼.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한해를 또 어떻게 그려낼까. 2020년 첫날. 난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서 설렌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무언가로 채울 생각에. 그 무한의 가능성을 향해. 나는 또 한 발짝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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