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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y 20. 2020

나는 '가식의 동물'?

출근길 옷차림이 준 단상

흐리다. 구름이 잔뜩  끼었다. 14도. 쌀쌀하다. 하지만 출근길 사람들의 옷차림은 여전히 20도에 머물고 있다. 티셔츠와 셔츠 한 장만 걸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오늘 아침 내 방 옷장 앞. 나는 가죽재킷을 꺼내었다가 다시 넣어놓고 얇은 점퍼를 꺼내 입었다. 가죽은 이미 너무 늦은 느낌에다 최근에 가죽옷을 입은 사람들을 못봤기에. '남들이 뭐라 하지않을까'.


출근길. 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계절의 변화를 가장 많이 실감한다. 나와 비슷한 두께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내심 안심했다. '오늘  내 옷, 과하지 않았군'. 나보다 두터운 옷차림의 사람을 보면 '어디 아픈가', '옷에 관심이 없나'. 그렇게 위안과 추측을 순간순간 만들나는 그들을 지나친다.


'아, 춥다!'

결국 나는 사무실에 앉아 쌀쌀한 공기를 느끼며 얇은 마스크 한 장이 주는 따뜻함에 감사하고 있다. 그냥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었어야 했다.


두꺼운 가죽점퍼가 딱 좋았다. 후회가 밀려온다. 누가 내 옷차림에 신경 쓴다고. 괜한 '신경씀'이 가져온 결과다.


날씨에 비해 조금 두꺼운 옷이든 얇은 옷이든 그게 무슨 대수라고. 사람들 시선? 솔직히 아. 무. 도. 관심 없다.


가끔씩 이런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내 모습을 깨닫고 어이없음과 함께 씁쓸함이 밀려온다. 누군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그랬던가. 이런 미명 하에 지나치게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얷매여 있는 내 모습. 마냥 짜증스럽지만 어쩔수 없는 것일까 고민이 든다.


솔직히 '가식의 동물'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적당히' 남들과 비슷하게 맞추면서 살면 되는 거지 뭘 그리 힘들고 피곤하게 사느냐고?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자주 그 '적당'이 어떤 건지 헤매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당연히 이래야지' 하면서도 또 어떨 땐 '뭐 이 정도야' 하고 쉽게 타협해버리는. 매번 바뀌는 애매모호한 기준에 나조차 그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나는 '진짜 사회화'되는 과정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믿 싶은 대로 그런 '척'하는 '가식 덩어리' 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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