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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an 31. 2021

쓸데없이 순진했던 '원우님'

"제가 수석입학이라고요?"

"제가 수석입학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4년 전 이맘때다. 시린 겨울의 찬 기운이 차츰 누그러지고 봄날의 따스함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하던 그때. 나는 두어 달 뒤 있을 꽃 심기 행사의 대상지를 물색하기 위해 사무실 인근 야산의 산책로를 열심히 오르고 있었다. 백여 명이 모여 진달래를 심어야 하기에 넉넉한 공간이 필요했다. 마땅한 곳이 없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전화기가 울린다.


"안녕하세요, OOO님 이신가요? OO대학교 경영대학원입니다."

"네, 제가 OOO입니다만..."

"경영대학원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와, 제가 합격했나요?"

"네, 그리고 혹시 입학식 때 참석이 가능하신가요?"

"네, 가능하면 참석하려고요"

"남녀 수석합격자분이 대표로 선서를 하시는데 그날 선서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수석입학이라고요?"

"네, 축하드립니다."


평일 늦은 오후 인적도 드문 야산에서 나도 모르게 "야호!"하고 소리를 지를뻔 했다. 일을 하면서 대학원 공부가 가능할지 사실 자신감보다는 무모함이 앞선 결정이었다. 몇 군데 대학의 MBA를 알아보고 일하면서 공부하기 가장 적합한 에 입학서류를 무작정 제출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혹시나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수석합격이라는 소식까지 들으니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솔직히 내 인생의 '행운은 이제부터 시작'인가 싶었다. 사실 그건 '내 착각의 시작'이었다.


여기저기 하얗고, 노랗고 불그스름한 봄꽃과 아지랑이가 흐드러진 봄날의 교정은 아름다웠다. 햇살은 눈이 부셨고, 봄바람은 따스했다. 첫 학기 수업 교재를 사기 위해 학교에 들른 어느 토요일 오전. 평화로운 캠퍼스의 풍경을 바라보던 그날의 설렘은 지금도 선명하게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얼마 후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질지 꿈에도 모르고.


입학식 때 여자 원우를 대표해서 선서를 한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입학식 직후 원우회(같은 기수 대학원생들의 공식모임) 꽤 높은 직책이 임시였지 내게 맡겨졌다. 함께 임시 임원이 된 몇몇 동기들과 의기투합하여 잘 한번 이끌어 가보자는 열의도 대단했다. 끈끈함으로 똘똘 뭉친 동기애는 그 옛날 대학시절의 풋풋함보다 더 강했고 또 달콤했다. 나의 부푼 마음 그 향기에 잔뜩 취한 채 캠퍼스 곳곳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달 후 치러진 정식 임원 선거를 기점으로 여러 가지 사건사고에 나는 (임원이었기에)자의 반 타의 반 휩쓸리게 되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오해와 협박까지 받았다. 나는 겁에 렸다. 결국 변호사를 찾아가 평생 한번 써볼까 말까 한 '내용증명'이란 것도 다. 시간이 지나 나와 관계된 오해는 풀렸어렵게 만들어 놓은 내용증명서를 우편으로 부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은 내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수석입학이라는 듣기에도 그럴듯한 타이틀은 어느샌가 몹쓸 독이 되어 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순진한 의지만 가지고 입학한 나에게 그때의 경험은 MBA가 꽤나 '정치적'(인적 네트워크와 학위 취득이 주목적)인 곳이라는 것과, 이런저런 (주로 남자들의) 권력싸움에 나는 무척이나 쉽게 휘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 후로도 그렇게 1년을 나는 더 방황했다. '어설픈 의리와 공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다 또 상처 받고. 그랬다. 바보같이.


3학기 수강신청을 하고 얼마 후. 토요일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간 나는 로비에서 친했던 동기를 우연히 만났다. 각자 수업이 있었기에 끝나고 오랜만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나눴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네, 진짜 오랜만이네요. 작년에는 (임원활동 으로)자주 만났었는데 말이에요."

"그렇지, 작년엔 그랬지..."

"저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애들과) 의리 때문에 계속 수업도 같이 듣고 그랬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그냥 제가 듣고 싶은 수업 신청했어요."

"잘했어, 잘한 거야!"

"그렇겠죠? 애들이 조금 당황하긴 하는데 그동안 힘들었던 이유를 찾다 보니 결국은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해서 그랬더라구요."

"그래 잘했어, OO이가 진짜 원하는 방식대로 그냥 따라가는 게 맞지."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힘이 나네요."


우연한 만남을 통해 힘을 받은 나는 MBA에서 늦었지만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았음을 확신했다. 대학원에서의 남은 1년 동안 첫 수업마다 홀로 낯선 얼굴들이 대부분인 곳에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하지만 학기 마지막에는 늘 각종 과제물과 프로젝트를 통해 교류하고 머리를 함께 싸맸던 이제는 낯익은 교수님들과 원우들의 얼굴이 곁에 있었다. 그리고 2021년 1월 현재. 지도교수님 한 분을 중심으로 (이미 졸업한) 다양한 분야에서 약을 하고 있는 십여 명의 원우들과 대학원 MBA 역사상 거의 유일한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끈끈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입학 초기 꽤나 '정치적'이어서 내게 큰 상처를 남겼던 MBA 라는 곳. 졸업이 다 되어서 그나마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시공간을 결국 나는 찾아낸 것이다. (도대체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던) MBA 수석입학 타이틀을 시작으로 파란만장했던 2년의 시간은 그렇게 석사학위와 함께 내게 남았다.


어찌 보면 태생적으로 (민간기업의 CEO나 임원이면서 남자가 다수인) MBA는 지극히 남성적이고 정치적인 곳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기업체 임직원도 아니고 공직에 있는 '여성'인 나에게 그곳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 당연했.(왜 이런것들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야지 깨닫게 되는걸까)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만약 내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진짜 내가 원하던 방향을 포기했다면 지금 내겐 무엇이 남았을까.


'MBA에 나는 (네트원크가 아닌) 공부를 하러 들어왔다'는 어설프지만 순진했던 원래 목표를 나는 다시 기억했다. 분명히 '나와 비슷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들을 만났다! 바로 지금의 스터디 모임이다. , 어쩌면 나는 얼떨결에 '네트워크'도 가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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