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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Feb 09. 2021

세상의 민낯만 보고싶은 엄마

류호정과 박현정

류호정과 박현정

아이 하나 엄마

나는 '아이 하나 엄마'다. 그리고 나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 전 비서 사이의 (부당해고 관련) 최근 논란이 조금 불편하다. 그 비서가 '아이 셋 엄마'라서 일종의 공감인걸까? 아니다.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 세상, 셋을 키우면서 국회의원 수행업무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이해는 지만 내가 불편한 이유는 다른데 있다.        


아이 친구 엄마의 전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이가 3학년이었던 때다. 나는 평소처럼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일에 빠져 있었다. 갑자기 아들과 같은 반 친구 엄마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OO이 엄마? 지금 통화 잠깐 가능해요?"

"오랜만이에요, OO엄마. 말씀하세요"

"그게... 내가 방금 OO이 데리러 학교 앞을 지나서 오는데 말이야. OO이가 누구랑 밀치고 싸우는 걸 봤어."

"네? 우리 아들이요?"(나는 깜짝 놀랐다)

"길에서 보긴 했는데 분명 OO이가 맞는 것 같았어요. 근데 앞에 애랑 막 싸우더라고. 걱정이 돼서 전화한 거예요."

"아이고, 제가 한번 확인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어른들'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놀란 마음에 감정을 추스리기도 전에 나는 아이가 오후에 다니는 미술학원과 태권도장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혹시 이상한 낌새가 없는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분명히 길거리에서 그렇게 싸웠으면 얼굴에 상처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두 군데 모두 평소와 다름없다는 답변만 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답답한 마음에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고 나는 아이의 안색부터 살폈다. 평소와 다르게 말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아이에게 "오늘 무슨 일 없었니?"라고 묻자, 이윽고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엄마, 왜 나한테 먼저 전화 안 했어?"

"...."

"나한테 먼저 전화해서 싸웠냐고 물어보는 게 맞지 않아? 오늘 태권도장에서 얼마나 창피했는데"

"나는 그게 먼저 상황을 알아보려고"

"왜 아들 말을 안 믿어. 학원마다 전화해서 선생님들이 날 이상한 아이로 보게 만들었냐고.."

"아... 그게. 엄마가 미처 생각 못했네. 너한테 전화해서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왜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았을까

울먹이며 나를 원망하는 아이의 두 눈을 보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왜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았지. 나는 왜 그 엄마의 말만 가지고 아들이 '당연히' 싸웠다는 가정하에 여기저기 '다른 어른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하고 그랬지.(사실 그때까지 아이는 한 번도 그런 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음에도) 무엇보다 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많이 아파했다.


그 이후 친구 엄마와 나는 다시 통화를 했고 그는 아마도 자기가 비슷한 다른 아이와 착각을 한 것 같다고 미안해 했다. 그녀는 분명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나와 아이 사이에 적잖은 상처를 남겨버렸다. 사실 누구보다 아이를 믿고 힘이 되어야 할 엄마인 나의 '경솔함'이 부른 참사였다. 당시 아이가 (진짜로) 누구와 싸웠는지는 내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류 의원과 3년 전 그날의 아이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을 '부당해고' 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류 의원. 노란 마스크를 쓰고 카메라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기사마다 나를 응시한다. 그 순간 3년 전 그날 눈물 그렁그렁한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불편한 이유는 그날의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


왜 '류 의원 vs. 전 비서'가 아닌가

류 의원과 관련된 기사를 보며 착잡했던 건. 왜 '류호정 vs. 전 비서'가 아니고, '류호정 vs. 아이 셋 엄마'의 대결구도가 되어버린 건지였다. 논란은 '국회의원'과 '비서'간의 업무와 관련한 부당한 해고가 핵심이다. 그런데 '나이어린 여성의원'과 '아이 엄마'라는 부차적인 것들이 의미 없이 때론 '의도적으로' 이 논란에서 남용되는게 아닌가 고민이 들었다. 아이가 하나든 셋이든 업무는 업무고 육아는 육아로 봐야지 않을까. 단지 그녀가 '20대 여자'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녀에게 너무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닐까. 조금 혼란스러웠다. 내겐 정리가 필요했다.


'이건 이렇게 보라고!'

그녀는 이제 막 발을 디딘 '(국회) 초년생'이다. 초선 의원이 되어 비서들의 수행을 받는 것도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어린 나이에 나이도 경험도 훨씬 더많은 비서진들의 도움을 받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녀가 소위 '새로운 꼰대' 처럼 행동을 했는지는 전 비서와 명확하게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서 밝히면 될 일 아닐까. 지금은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없다. 단지 두 사람의 '해명'과 '주장'만 있을 뿐이다. 내가 불편한 건 이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가 아닌 '이건 이렇게 보라'고 보이지않게 나를 강요하는 '수많은 어른들' 때문이다.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를 기억하다

이번 논란을 보며 떠올린 또 다른 여성이 한 명 있다. 바로 '박현정'서울시향 전 대표다. 국내 최고의 기업에서 오직 실력만으로 임원 자리에 오른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의 상징'이었던' 그녀.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꿈꾸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바로 내 기억 속 '박현정'이란 사람이었다.


그녀가 순식간에 무너지던 때

하지만 그녀가 서울시향의 대표가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2014년 10여 명의 젊은 남성 단원들이 업무와 회식 등에서 박대표의 성희롱, 폭언, 폭행으로 고통받았다며 호소문을 붙이면서다. 당시 대다수의 언론과 여론은 유명인이었던 박대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대기업 임원출신 여성 대표 vs. 젊은 남성단원들. 그럴듯한 프레임이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무차별적으로 전파를 타고 내 귀와 눈을 덮고 또 덮었다. 솔직히 나조차 (그녀를) 의심했으니까. 결국 거듭 해명을 하면서 끝까지 버티던 박현정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내 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진다.


'박현정 사건'의 결론

오늘 나는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새삼 궁금해서 기사를 찾아봤다. 2014년에 시작된 박대표와 서울시향 단원들 간의 긴 법정싸움은 2020년 5월에야 끝이 났다. '서울시향 직원들 치밀했던 마녀사냥 "박현정 이길 아이템은 성희롱"(2020.5.2. 자 한국일보). 경찰과 검찰 수사 그리고 대법원까지 갔던 6년 간의 긴 법정싸움은 결국 박 전 대표의 '무혐의'로 끝이 났다. 그렇다. 한때 대한민국 수많은 여성의 로망이었던 '박현정'은 6년 만에 '성희롱'의 프레임을 겨우 벗어났다. 이것으로 그녀는 과연 '성공'한 싸움을 한걸까. 


류호정과 박현정

류 의원과 박대표 사건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어찌 보면 조금은 억지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류 의원 사태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기에 '좀 더 냉정하게' 이 논란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둘을 같은 선상에 놓은 것이다.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92년생 최연소 국회의원 류호정. 그녀의 '입법 활동'보다  '입는 활동'이 더 많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 여성 정치인에게.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과제는 (이것 말고도) 꽤나 많을 것 같다. 이번 '부당해고' 사태가 그녀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나도 무척 궁금하다. 다만, 유독 그녀 주변으로 두 겹 세 겹 둘러쳐지는 그럴싸한 '프레임'들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

나는 류 의원에게 어떤 호감이나 관심이 있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결코 아니다. 3년 전 그날. 누구보다 나를 의지하고 믿었을 내 아이에게 큰 상처를 남긴 내 '경솔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다. 사람이든 현상이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판단하기 점점 힘든 세상이 되어가는 같아 씁쓸하다. 그래서 나라도 제대로 알고 느끼고 그렇게 살고 싶은 것뿐.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바로 '엄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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