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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Feb 18. 2021

사람들과 그런저럭 지내는 여자

'여자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있는가'

'여자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있는가'

'여자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있는가'


아마도 이 글을 클릭한 대부분의 분들이 '제목'이 주는 자극에 자동적으로 이끌리지 않았을까. 나도 똑같이 그랬으니까. 


며칠 전 기사를 검색하다 눈에 띈 프로선수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어느 일간지 기사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문득 궁금했다. 도대체 여자 선수들 간의 학교폭력 문제가 왜 '여자 대 여자' 문제로 연결되는 걸까. 비슷한 시기에 터진 남자 선수의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나는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왜 '남자는 남자와 잘 지낼 수 있는가'라고 는 매체는 없는걸까.


'여자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있는가'라는 물음. 그 자체가 여자라는 성에 대한 은근한 편견이 깔려있다. 여자들끼리는 잘 지내면 그것 자체가 굉장히 특별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말이다. 사실 여자들 간의 우정이 남자들의 것보다 더 특별한 것으로 취급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단지 이런 '냄새'가 심하게 나는 프레임이 나는 불편하다. 계산된 장치로 만들어낸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인식에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혐오를 부추기는 것처럼 보이기에.


'여자의 적은 여자?'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이런 식의 부정적인 인식의 말들은 생각보다 많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그렇다. 내가 알기로는 이 말은 여자들이 같은 여자들에게 더 가혹하다는 뜻이다. 사실 나도 은연중에 이 말을 쓴 적이 종종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많은 조직(예시) 병원, 콜센터, 은행 등)에서 근무한 (여자) 지인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의 연차가 쌓이면서 (주로 남자들 간의) 권력싸움을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비정함에 깜짝 놀랐던 적이 많았다. 그리고 조직생활에서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남  여'라는 대치관계 자체를 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꺼려하니까 피할 수 있는 (대부분의) 남녀 싸움은 피해버린다. 단, 필요한 경쟁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무자비하지만)


상처에 대한 치유 방식의 남녀 차이가 아닐까


내 경험에서 아주 사소한 남녀 간의 차이가 있었다면, 여자들은 상처를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치유하려는 경향이 남자들보다는 조금 더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직장이나 관계에서 받은 아픔이나 상처를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게 비교적 쉽게 털어놓는다. 여자들 간의 경쟁이나 다툼이 남자들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일 뿐, 결코 여자들이 같은 여자들에게 더 가혹해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


내가 10년 이상 몸담아 온 공무원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 동료들과의 모임이든 남자동료가 대부분인 모임이든 다들 비슷한 어려움과 상처를 말하고 있었다. 다만 남자 동료들이 자신들의 상처에 대해 (내가 여자여서 그랬던 걸까) 좀 더 과묵하다고 느꼈다. 대부분 남자 동료들은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면 "에잇, 딴 얘기하자!" 이렇게 넘겨버리는 식이다. 반면 여자 선후배나 동기들과는 상처나 관계에 대해 굉장히 긴밀하게 공유를 했다. 도대체 여자가 같은 여자와 잘 지내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 있는걸까.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움직인다'.


'보이는 것들에 속지 말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여자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있는가'는 무척이나 정중하고 그럴듯한 질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조금은 무례한 시선이 숨어 있다. 남자든 여자든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는 여자들도 막상 이 질문을 불쑥 받게 되면. '흠, 나는 문제가 없을까' 하고 다시금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심지어 혹시 모르는 단서가 없는지 집요하게 찾기도 한다. '보이는 것들에 속지 말라.' 그렇다.


이제부터 더 이상 그런 식의 자동반사적인 반응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냥 '사람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는 여자일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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