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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Oct 12. 2021

나는 겁쟁이인가?

어느 대학병원에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요."

"내 동생도 2기라서 항암 받고 힘들어하는걸 옆에서 봤거든."

"그냥 마음 편하게 치료받아요."

"자꾸 머리가 빠져서.. 며칠 있다가 정리하려고요."


대학병원 외과 진료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던 중 옆자리 두 여성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낯선 사람이 건네는 뜻밖의 위로였지만 두 사람은 이내 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느라 더는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지만 내심 '혹시나' 하는 나의 불안감커졌다. 마음을 졸이며 받은 검사에서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6개월 후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말만 듣고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바로 수납처로 향했다.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학병원 로비. 아무 빈 의자에 앉아서 버릇처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이 울음소리와 함께 유모차가 로비를 재빠르게 가로질러 갔다. 바로  백발의 어르신이 의자에 앉아 딸인 듯 중년의 여성이 주고 간 생수통을 물을 들이키는 모습도 보인. 갈증이 해소되고 마스크를 다시 쓸 여유도 없이 긴 한숨을 힘겹게 내쉬고 계셨다. 이내 깨끗하게 다려진 새하얀 셔츠를 입은 젊은 보안요원이 다가오더니 어르신에게 "마스크를 쓰셔야 한다" 안내한다. 어르신은 다시금 마스크를 고쳐 쓰고 어딘가로 사라진 딸을 기다리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린.


최근 몇 년 동안 대형병원을 2년에 한 번 꼴로 방문했다. 이젠 건강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부쩍  앞서기에. 오늘도 가를 내고 2시간 아침 출근길을 뚫고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의 "특별한 이상이 없으니, 6개월 후 검사받으러 오세요"라는 한 문장을 듣기 위해서다. 진료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내 마음은 여느 때처럼 극과 극을 달린다. 세상 까칠하고 불안한 캐릭터가 천사로 '짜잔' 변신하는 것과 같다. 스스로도 어이없지만 '정말 다행이야. 남은 인생 진짜 열심히 (주위에 잘하면서) 살아야지' 오늘도 버릇처럼 되뇌어 봤다.


나는 진정 겁쟁이인가?


'가 조금 이상하다'는 건강검진 결과 보고서 문구 하나에 지난 몇 년간 대형병원을 꽤나 다녔다. 검사하고 진료 보고, 검사하고 또 진료 보고. 대부분 '이상 없음'으로 나오지만 매년 검진 때마다 엄습하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다. 겁부터 잔뜩 집어먹고 한바탕 병원들을 돌아다니며 특이사항 없음을 확인받으면. 그제야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다음 해 정기검진 때까지 겨우겨우 버티(?) 것이다.


처음 1~2년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몇 년이 지나고 여전히 이러고 있으려. '진정 나는 '쫄보'인가? 아님 (병원 비즈니스의) 호구인가?' 싶다. 적당한 걱정인지 과도한 염려증인지 누가 좀 속시원히 말해면 좋으련만. 답답한 마음을 마땅히 털어놓을 데가 없다.


울음을 "와앙~" 터트리는 아이와 물 한 모금조차 힘겨워보이는 백발의 어르신 그리고 건강미를 넘치는 청년까지. 생명체의 다양한 단계들이 공존하는 대학병원이란 공간. 문득 나는. '지금 난 (탄생과 죽음 사이)어디쯤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적어도 6개월은 걱정을 덜어놓았기에 다행이지만. 이런 염려가 과연 괜찮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진정 겁쟁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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