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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ug 01. 2021

이제 다시 등산!

두발로 산을 오르는 즐거움에 대하여

오늘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산을 올랐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정상까지 가다가 중간쯤 내려오는 안전한 코스였지만 땀을 꽤나 흘렸다. 이른 아침 산속 나무들 사이를 강물처럼 흐르는 좁다란 등산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교차될 때면 어깨가 닿을까 저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다. 아직은 느린 걸음 탓사람에게 나는 수시로 길을 양보해야 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기에.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가.


그렇게 나는 두발로 조심조심 산을 올랐다. 지난 1월 이후 거의 반년을 산 아래 평지에서만 빙글빙글 돌다가 이제야 제대로 된 경사면에 내 두발을 올려놓은 것이다. 흙냄새 가득한 푹신푹신한 야자나무 매트 위에. 


아침 7시, 섭씨 28도. 비록 이른 아침에만 느껴지는 선선함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아침 공기가 주는 생동감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아침 특유의 활기참이 느껴졌다.


모습에서그런 활기가 느껴졌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다쳤던 발목이 신경 쓰여 두 손에   등산용 스틱과 땅에 디딘 두발의 균형 맞추느라 불안함이 더 많이 보였을 것 같다.


두발로 산을 오르는 즐거움. 그걸 가장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났을 때다. 내가 고른 코스는 한 번도 아니고 최소 두세 번은 오르막길을 만난다. 거길 오를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등줄기를 쉴 새 없이 땀이 흐른다.


사실 등산을 할 때마다 이 순간이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론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등산 애호가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이때만큼은 간절하게 실천해야 한다.


가끔씩 경사진 땅을 힘겹게 오르는 두발보다 미친 듯이 뛰어대는 내 심장소리에 더 놀라기도 한다. 다급하게 뛰는 심장소리는 내게 잊고 있었던 삶의 긴장감을 불쑥 일깨워준다. 그리고 '체력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그렇게 자책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내려가는 길목에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


누구는 그 힘든 걸 왜 하냐고 묻는다.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틀고  익은 수박이라도 먹지. 뭐하러 이 더운 날 그 고생이냐고. 그 말도 맞다. 하지만 그땐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없지 않나. 내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 에어컨 기계음과 티브이 소음 그리고 기타 등등. 세상 평온하다. 그리고 평온도 반복되면  가끔은 지루하다. 


 지루함도 즐기라고? 나는 그게 조금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한여름 '에어컨과  빨간 수박' 대신 등산로 오르막길과 미친 듯이 쿵쾅대는 빨간 나의 심장을 기꺼이 선택한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긴 내리막길을 지나 다시 평지로 돌아온 나의 두발은 기분 좋은 뻐근함에 조금씩 후들거렸다. 나의 심장도 어느새 평온함찾았다. 내 눈길은 저 멀리 3시간 동안 걸어온 산행 코스를 쭉 훑어보고 있다.


순간 웃음이 났다. 이런 모습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기에. 지난 수년간 수백 번 오르고 내리면서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 나도모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고작 6개월 쉬었다고 어디 사라지진 않나 보다. 


그렇게 오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산으로 성공적인 컴백을 했다. 등산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어설픈 습관까지 무사히 내 곁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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