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3월 14일.
오늘로 OO살 꽉 채운 나이가 되었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늦은 06:17분. 눈을 뜨고 욕실로 걸어가는 가면서 ‘아, 오늘 내 생일이구나.’ 생각이 났다. 뭐, 그렇다고 아침 해가 1시간 일찍 뜬다든지 폭죽이 터진다든지 하는 이벤트는 절대로 없다. 그냥 제 시간에 해는 떴고 하늘은 좀더 우중충하게 흐릴 뿐이다.
세수를 하고 버릇처럼 베란다 노란 테이블에 우두커니 앉았다. ‘아, 맞다! 오늘 특별한 것이 하나 있기는 하네.’
에스프레소 커피를 오늘은 특별히 '더블'로 내렸다. 생일인데 이 정도 특별함은 필요하지. 커피향이 조그만 베란다 공간에 쫘~악 퍼진다. 이럴 때 음악도 빠지면 안된다. ‘I won’t give up’ 제이슨 모라즈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귀를 감싸면서 흘러나온다. 그렇지!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 생일날 특별함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것이다. 'Never ever, I won't give up.'
커피를 거의 다 마시고.
이번에는 사방으로 널부러진 이부자리처럼 흐트러진 마음을 매일 아침 한글자씩 꾹꾹 눌러가며 정리하는 수첩을 펼쳤다. 특별히. 생일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쭉쭉 써내려갔다. 무척 특별했다. 사실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까 아침에 무슨 말을 썼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얼마나 주저리주저리 ‘아무말대잔치‘를 했으면 이렇게 기억이 안날까. 그만큼 오늘 아침 글쓰기는 생일이어서 아주 ‘특별’했던 것이다. 그럭저럭 수첩 한 페이지를 나이 채우듯 빈틈없이 채우고 나니 왠지 마음이 더 뿌듯했다. 역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생일이니까.
오랜만에 흰색 셔츠를 꺼내 입었다. 단추도 좀 특별하게 끝까지 다 채워서 입었다. 거울을 보니 역시 뭔가 다르다.(뭐가 다른지는 비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재킷을 걸치고 가방을 들고 고요하게 잠든 집안의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힘껏 열었다.
‘앗, 택배 상자다!’
친구가 생일날에 맞춰서 보내 준 택배가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매년 생일 전에 선물을 챙겨주던 친구가 올해는 특별히 날짜에 맞춰 배송을 해준 것이다. 역시 올해는 특별하다. 더군다나, 마침 오늘 나도 보낼 물건이 있어서 택배 상자가 필요했는데, 사이즈도 딱 적당한 상자가 선물까지 담은 채 문 앞에 있다니 더욱 놀라울 뿐이다.
택배상자를 냉큼 집어 들고 주차장을 향했다.
출근 길 차안. 신호 대기 중에 옆 조수석을 힐끗 바라봤다. 누런색 택배상자와 비슷한 겨자색 가방이 사이좋게 조금은 삐딱하게 엉켜있다. 이 상황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언제였지? 무슨 느낌이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선물을 보내준 친구에게 인증샷을 ‘찰칵’ 찍어서 보냈다.
문득.
‘나는 선물이 고마운걸까 아니면 저 택배 상자가 좋은 것일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