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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y 19. 2022

아주 사적인 나의 모임'시그니처'!

본질을 잃어버린 모임의 미래

오랜만에 휴가를 맞아 아침운동을 나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수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걷고 전망대도 올라갔다. 전망대 꼭대기에서 갑자기 확 트인 광경에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 영상도 찍었다. 다시 산책길로 내려와 걷기를 한 시간 정도. 이제 땀도 조금씩 난다. '그렇지 난 오늘 운동하러 왔지'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고 '딴짓'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은 덕분에 본래 목표한 운동량을 겨우 채웠다. 


걸으면서 내가 활동하는 조정(rowing) 클럽 커뮤니티에 어젯밤 올린 글이 생각났다. 감독님의 '굿' 이모티콘과 선배님들의 격려의 글이 금세 달렸다.

제가 '조정 그리고 조정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딱! 적혀있네요. 좀 오래된 기사지만 조정의 역사도 나와 있고 오랜만에 로잉을 다시 시작하면서 제게 나름 공부가 되는 내용이라서 (부끄럽지만) 공유드려봅니다. 언제 다시 세계 조정대회를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요? <믿음과 신뢰+배려, 의리>, 로잉은 사랑입니다~♡

"조정에는 스타플레이어가 없다.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 배를 탄 운명’이 조정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보트 위에 오른 선수 개개인이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움직여야 하는 믿음과 신뢰의 스포츠다. 목적지를 바라보며 진행하지 않는다. 등 뒤 결승점을 향해 선장 격인 콕스(COX)의 구령과 앞뒤 동료의 숨소리를 듣고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게 승리의 관건이다."(기사 내용 중 발췌)


그리고 자연스럽게 '적모임'에 대하여 생각해봤다. 사실 처음에는 사적 모임이 아닌 '취미활동'이라고 썼다. 그러다 다시 지우고 사적 모임으로 고쳐 썼다. 왜냐하면 취미와 사적 모임은 다른 영역이고 개인적인 시간을 따로 낸다는 무게를 두고 싶어서다. 아무튼.


그러면 모임은 어떻게 해야 잘 되는 걸까? '잘 된다'의미는 뭐지? 가장 뚜렷한 증거는 회원수가 꾸준히 느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멤버들의 최소 70~80프로는 꾸준히 활동하면서 적정한 활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사적 모임은 어떻지?


현재 나는 3개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2개의 스터디 모임과 하나의 운동 클럽. 다행인건지 지난 2년간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그나마 유지해오던 애매한 모임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나의 일상도 동시에 깔끔해진 느낌이다.


정리된 모임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크다. 순간순간 가졌던 애매한 감정의 시간이 줄어서다. 사적 모임은 정기적인 교류가 핵심인데 그걸 위해 단톡방에 들어가고 회비를 내고 만날 약속도 정해야 한다. 거기에 회원들의 크고 작은 경조사도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그 모임 하나를 위해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이 할애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명 맛집의 시그니처 메뉴처럼 사적 모임도 나름의 '시그니처'가 필요하다고 본다. 맛집과 사적 모임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조금은 있다.


3주 전쯤 조정 연습이 끝나고 경기장 근처 백반집찾은 날이다. 영업이 11시부터인데 벌써 사람들이 긴 줄을 서있었. 운 좋게 우리 팀은 첫 타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등 맛갈스러운 음식들이 하니 둘씩 상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감독님이 반찬 하나를 가리키며 "이게 이 식당의 시그니처야!" 하신다. 빨갛게 양념한 두부조림이었다. 역시나 한입 먹어보니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시던 특유의 깊은 맛이 입속으로 훅 들어왔다. 이런 게 바로 대표 메뉴, 일명 사람을 불러 모으는 맛집의 '시그니처'구나 싶었다.


사적 모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인기 있는 모임의 특징은 명확한 색깔에 있다. 일명 모임의 '시그니처'다. 다른 모임이 줄 수 없는 그곳만의 매력. 독서모임, 어학 모임, 운동모임이 대표적이다. 내 경우 학습동아리 2개와 운동 동호회 하나를 참여하고 있다.


첫 번째 모임은 리더십과 조직생활 고민을 나누는 대학원 스터디 그룹다. 한 달에 한번. 평일 퇴근 후 2~3시간 모여서 각자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모임에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전문 강사, 회사 임원, 대표, 외국계 기업 팀장 등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이야기를 이끌고 조율하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때문이다. 가끔씩은 존경하는 교수님과 나보다 한참 선배인 분들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토론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은(못한) 30대 동생들에게 발언권을 줘야 한다. 처음엔 '이래도 되나, 너무 버릇이 없는 건가' 싶었지만. 3~4년째 계속하다 보니 의례 다들 내가 알아서 발언시간을 잘라주고 적절히 분배하고. 뭐 그래 줬음 하는 눈치다. 그렇다. 


그럼 대학원 모임의 시그니처는 무엇일까. 편한 토론 분위기와 진심 어린 경청이다. 그걸 유지하려고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고 몇몇 회원이 못 견디고 나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명 남짓 멤버들이 나름의 암묵적인 룰과 선을 잘 지키며 스터디에 진심을 다해 참여하고 있다. 모임 후 회식? 없다. 12월 연말결산 시상식과 함께 딱 한번 '공식적으로' 다 같이 밥을 먹는다. 멤버 간 토론과 경청이 주목적이기에 제대로 된 저녁식사는 이곳에서 후순위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최근에 직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대학원 스터디와 유사한 형태로 시작한 스터디가 하나 있다. 첫 모임에서 나는 회식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면 되고 여기 모임은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여러번 과할 정도로 강조했다. 20~30대가 대부분 었지만 예상보다 싫지 않은 반응이었다. 사실 한두 명 이탈을 각오한 발언이었다.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나는 '동료에게 뭐든 배운다'는 학습동아리의 핵심은 흔들림 없이 지켜나갈 계획이다. 이제 막 시작한 활동이기에 모임 시그니처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올해가 가기 전. 이 스터디만의 시그니처 메뉴가 꼭 개발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조정동호회가 있다.

요즘 나의 주말 오전은 조정이란 운동이 거의 채우고 있다. 아침 8시부터 에르고메타 머신을 당기는 준비운동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배를 창고에서 꺼내 호수까지 끌고 가  1천 미터 정도  호수를 6번 정도 왕복한다. 훈련이 끝나면 배를 창고로 다시 가져가서 깨끗하게 씻어 넣는다. 전부해서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경기장에서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한다. 겨우 한 시간 남짓 로잉을 위해  주말 시간을 조정하고 참여 신청 투표를 하고 금요일 저녁 올라오는 조편성표를 확인한다. 무엇보다 배를 타기 위한 준비와 마무리 작업이 만만치 않은 이 조정이란 운동이다. 


처음엔 배 위에서 선수간의 거의 완벽한 싱크로율에 반해 멋모르고 시작한 클럽활동이다. 하지만 지금은 운동 전후로 이루어지는 사람들과의 협력,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의리와 배려의 스포츠맨십에 반해서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많이 애쓰는 중이다. '의리, 배려...' 이런 가치가 '그냥' 멋져 보여서다.


그래서 내가 정한 조정모임의 시그니처는 단연코 '의리와 배려의 스포츠맨십'이다. 이것이 내가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지난해 발목이 다쳐 하체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조정모임을 진심으로 그리워한 이유였다. 그리고 올해 다시 동호회를 나오면서 처음 모임을 시작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어떤 모임의 일원이 된다는 건 활동에 대한 권리도 주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각자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모임 자체를 내가 진심으로 즐기지 못한다면 거기에 뒤따르는 활동들은 귀찮고 무시하고 싶은 것들로 한순간에 바뀌어버린다. 과거에 그렇게 시작해서 그만둔 모임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사적 모임이기에.
시작도 끝도 아주 '사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 수도 없는
 '그냥 그렇게 되었어' 라는


사적모임은 무엇보다 모임 시간 그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도 좋아야 하고 거기에 잘 짜인 프로그램은 필수다. 그래야 적정한 기대치를 회원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가심비를 중시하는 요즘의 시대 문화에 '의미 없이 애매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도 잘 포착한다. 그게 아니면 회원들 스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도록 참여시키는 수고로움을 또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니면 배려와 책임감이 탁월한 몇몇의 리더가 그걸 묵묵히 대신하든지. 결론적으로 사적 모임은 확실한 시그니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조정경기장 근처 맛집의 빨간색 두부조림. 스터디모임의 진정성 있는 토론과 경청, 조정동호회의 의리와 배려 스포츠맨십. 뭔가 다른것 같지만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긴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반대에는 모임 시그니처보다는 회식자리의 친목, 끼리끼리 파벌도 현실 속 수많은 사적 모임의 언저리에  분명히 공존하고 있다. 사실 그런것이 사람들의 즉흥적인 결속은  단단히 할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 다음을 그려보면 살짝 또 애매한 감정이 올라오는건 어쩔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복잡하지도 또 단순하지도 않다. 사적모임을 나가는데는
단 하나의 '시그니처'만 필요할 뿐이다.


요즘 내가 하얀 쌀밥을 마주할 때마다 종종 떠올리그날의 두부조림 처럼 말이다. 왜냐고? 그냥!


아주 사적인 나의 모임 '시그니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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