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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y 18. 2019

공무원과 민원인이 함께 스쿼트를 해요~

동 주민센터 시한부 시간제근무 그 여섯 번째 이야기

"자 오늘은 스쿼트 15개 할게요."
"하나 둘 셋 넷. 발바닥 전체에 힘을 주세요!"
우리 사무실 가장 오래된 근무자인 복지도우미분이 그저께 아침 스쿼트를 난생처음 진행하면서 직원들에게 내뱉은 구호다. 내가 전날 같이 해 보자고 제안했을 때만해도 수줍게 '자기가 그런 걸 어떻게 하냐'고 하던 그 모습은 어딜 가고 이렇게 잘해내실줄이야
스쿼트하는 민원실 그림 삽화 by J. H. Lee


2019. 5.15. 오전 8시 53분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주택가 골목길 깊숙한 곳에 위치한 동 주민센터 민원실의 평일 아침 풍경이다. 약 두 달 전부터 작은 소통을 위해 이곳에서 시작한 '아침 3분 스쿼트'가 만들어낸 변화다.  그동안 이곳에 무슨일이 생긴걸까?




먼저, 여기 주민센터를 간단히 소개하면 주민 2만 명 내외비교적 작은 지역을 관할하는 센터다. 정식 명칭이 '행정복지센터'. 5급 사무관인 동장 이하 6급 행정민원팀장과 맞춤형복지팀장, 그리고 7~9급 실무자까지 총 11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임기제, 공무직, 공공근로, 자원봉사, 복지도우미 일반직 공무원외 근무자까지 합하면 아담한 4층 청사 공간에 20명 남짓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 사무실의 출근 시간은 이질감과 다양성이 섞인 '이채로움' 그 자체다. 시크한 90년대생 신참 공무원, 동네 터줏대감 통장님, 옆 동네 살지만 근무는 여기서 하고 계신 나이 지긋한 젠틀맨  선생님, 공무원 시험 준비에 한창인 이제 갓 20살 넘은 풋풋한 사회복무요원까지. 이 사람들 나름의 활기참과 반가움을 담아 때론 무심하게 때론 정겹게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주 짧고 평범한 인사. 하지만 저마다의 색깔이 담긴  내 귀로 흘러들어온다. 그러기에 매일 아침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나는 궁금하고 또 기다려진다.  4개월간 여기 주민센터에서 일하면서 발견한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처음엔 아침 인사가 조금은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변화는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그 어색함이 무색할 정도로 출근시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도대체 뭘 어찌했길래?

 

아침 3분 스쿼트

스쿼트는 제대로 하면 건강과 체력, 육체미를 모두 크게 향상시켜주는 좋은 운동이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릎, 허리 등의 관절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으며 평생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 평생 쓸 몸을 위해 안전하게 운동하도록 하자. <출처 : 나무위키>


그렇다. 스쿼트도 잘해야지 잘 못하면 평생 남을 부작용이 있다고 어느 자료는 내게 경고한다. 뭐든 쉬워 보이지만 의외의 결과는 항상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실제로 우리 사무실에도 런일이 일어났다. 다행히 좋은 방향으로.


사실 내가 출근시간 '작은 소통'을 위한 활동을 제안한 이유는 공무원들 사이의 다소 가라앉은 근무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반응이 왔다. 바로 센터에서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상황은 항상 예측대로 가지 않는 법. 공무원 멘토링 모임에서 두 멘티가 빠진 채로 결성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그랬고. '아침 3분 스쿼트'는 공무원들보다 그 옆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스쿼트를 따라 하고 심지어 그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이 반응을 어떻게 하지? 답은 간단했다. 늘 직원 한 명이 주도해 온 운동시간을 이분들도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 사실 직원들은 순환보직 때문에 당장 내일 발령이 나서 다른 근무지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곳에서 우리보다 더 오래 근무하고 새로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스쿼트를 시작한 공무원들이 떠나 실천지속되고  주민센터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주도를 해야 . 그래서 자원봉사자 한분과 센터의 최고참 도우미분에게 스쿼트 진행을 부탁드려 보았다. 처음엔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던 모습은 어딜 가고 막상 직원들 앞에서 두 분 모두 씩씩하게 잘해 내시는 모습에 나 혼자만 아는 감동이 살짝 밀려왔다. 왜 이분들이 주도하는 것이 필요한지 다른 직원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하니 쉽게 풀릴 것도 같다.


그리고 5월15일 아침. 그날의 스쿼트는 특별했. 바로 '3분'이 주민센터  사람들을 넘어 민원인 마음도 함께 움직였기때문이다.


그날 아침. 어김없이 사무실에 경쾌한 음악이 시작된다. 직원들은 각자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물론 한명이 구호도 붙이고 리드를 한다. 그날은 업무 시작을 기다리며 어르신 두 분이 민원실 대기석에 앉아 계셨다. 한분은 복지팀 업무, 나머지 한분은 민원서류를 떼러 오셨다. 대부분 이런 경우 '민원대'를 기준으로 바깥의 민원인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그냥 구경만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음악이 나오자 대기석에서 두 분이 일어선. 그리고 자연스럽게 직원들과 함께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하고 계신다. 하나의 장벽처럼 높아만 보였던 그 민원대가 이날만큼은 민원인 직원들을 연결하는 커다란 실타래 처럼 보였던 조금은 뭉클한 순간이었다.




동 주민센터에서 시작한 '아침 3분 스쿼트'. 이건 내게 하나의 실험이었. MBA에서 조직행위와 리더십을 좀더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절실히 느꼈던 현실과 이론의 격차. 그걸 어떻게 해야 현장에서 좁힐 수 있을까. 유명한 경영 이론이나 최신의 통계와 기술, 아니면 심오한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한 걸까?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건 사람이다. 변화를 원하면 내가 바뀌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꾸준함을 가지고 일상에서 작은것부터 실천하는 것. 이 생각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들을 시도하고 또 쉽게 포기하지않게 만들었다.  실험에서 내가 얻은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섣부른 예측보다는 끊임없는 관찰과 유연한 대처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데이터 분석가 송길영(다음소프트 부사장). 그의 저서 <상상하지 말라> 따르면 마케팅에서도 소비자에 대한 섣부른 상상력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책 전반에 걸쳐 '상상하지 말고, 사물이 아니라 사람을 관찰하라'고 강조한다.


만약 누군가지시 활동이 시작되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담당 공무원은 아마 기간, 횟수, 인원 등 눈으로 보이는 수치에  집중했을 것이다. 반면  속에 있는 사람들의 미세 변화놓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설픈 예측. 이건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갈 때 확실히 문제가 된다. '그만해야 하나?' '세상 내 맘대로 안되는군' 이렇게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자기 확신이나 기대감그닥 의미 없음을 이번에  확실하게 경험했.


중요한 건 함께하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변화가 보이면 거기에 맞게 또 유연하게 대처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뭐든 결과는 나오지 않을까.


결국 공직과 행정서비스의 혁신은 최전방에서 주민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공무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침 스쿼트 하나로 당장 뭔가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만 나는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할 뿐이다. '누구든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슬픈 현실 아닐까'


어떤 사람은 기계를 보고
어떤 사람은 사람을 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보는 사람들까지 본다.
이 셋 중 누가 승자가 될지는 자명하다
- <상상하지 말라> 중 -


작은 주민센터 안에서 나는 과연 제대로 사람을 보고 있는 걸까.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들을 봐야 하는가. 아직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나도 궁금한 나의 미래다.




매일 아침 8시 53분. 우리 동 주민센터는 '하나, 둘, 셋, 넷...' 3분 스쿼트로 하루를 조금은 남다르게 시작한다. 그리고 남다른 반가움으로 직원들은 민원실을 찾는 주민들을 맞이할 것이다.


"스쿼트 같이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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