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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J Dec 13. 2021

#6 스투키에 물을 주는 가장 완벽한 방법


연은 상신 버튼을 누르고 눈치를 살핀다. 부장은 자리에 없다. 막간을 이용해 상신한 품의를 제목부터 첨부파일까지 글자 단위로 확인한다. 별다른 오류가 없는데도 빨라진 심장박동은 멈출 줄 모른다. 이러지 마. 연은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다른 곳, 다른 사람이야.      


― 이거 주임님이 가져온 거예요?     


옆자리 대리가 책상 위에 놓인 스투키를 보고 묻는다. 연은 고개를 끄덕인다.     


― 사령장 받을 때요. 인사팀에서 신입들한테 하나씩 줬어요.

― 별 걸 다 챙겨주네. 신경 좀 썼나 봐요.      


연은 희미하게 웃는다. 화분은 연의 두 손에 폭 담길 만큼 아담하다. 2주 전 부서배치를 받을 때, 인사팀에선 자못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화분을 건넸다. 생각보다 위안이 될 거예요. 연은 연둣빛 도는 스투키를 손끝으로 쓸어본다. 이것과 꼭 같은 화분이, 전에도 있었다.     


졸업 축하해. 이 년 전, 이전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학교 졸업식에 다녀온 연에게 동기가 화분을 내밀었다. , 이게 무슨 선물이야. 연이 투덜대자 동기는 ‘네가 어지간한 건 다 말라죽일 것 같아 제일 쉬운 애로 데려왔다’며 퉁을 줬다. 연은 그걸 자취집에 놨다. 스투키는 물을 자주 주면 안 좋다던데, 매일 주는 것보다 가끔 주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 달력에 표해가며 챙겼다. 입사 반 년 여까지는.      


연이씨, 이거 뭐야? 연의 사수 과장은 아침마다 카랑카랑하게 소리 질렀다. 전달 못 받았다고? 지금 선배 탓하는 거야? 엄한 부서였다. 커리어에 도움될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원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만큼 위계질서가 강하고 꼼꼼한 부서였다. 연이씨, 자기가 한 것도 믿지 마. 남이 해온 건 더 믿지 마. 자간이나 줄간격 때문에 다섯 번씩 문서를 고치거나, 작은 실수 하나에 면전에서 고함 나는 상황이 숱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서류가 날아다녔다.

    

처음엔 당연히 버텼다. 자신보다 십 년, 이십 년 이상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니 배울 점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연민도 갔다. 전통적으로 에이스이던 부서는 시장환경이 바뀌면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과장, 차장, 부장의 승진이 모두 밀렸다. 다들 지쳤을 것이다. 연과는 다른 식의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모든 모욕감을 아래로, 가장 약한 고리로 쏟아내려서는 안 됐다.      


갓 대학을 졸업한 연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 사람들이 화를 내는지, 똑같은 일을 했는데도 자신은 함부로 대하는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다짐조차 하지 않는지. 회사 업무의 반이 이미지 메이킹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몰랐다. 상사가 말하기 전에 틀을 짜 가야 쫓기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는데 화내는 사람은 많았다. 회사 안에선 아득바득 울음을 참다가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밤새 울었다. 이러다 몸속의 물이 모두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만큼 매일 울기만 했다.     


어느 날, 스투키 줄기 하나가 부러진 걸 발견했다. 연은 죽은 줄기를 버리고 남은 네 개에도 물을 주지 않았다. 내가 바짝 마르는 만큼 너희도 말랐으면 좋겠어. 그렇게 마르고서도 살아남았음 좋겠어. 줄기가 꼭 하나 남은 날, 사직서를 썼다. 대낮에 본가에 가 당황한 엄마에게 화분을 건넸다. 엄마, 얘 하나는 꼭 살려줘.


― 다들 이거 먹어요.


연이 잠시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사무실에 돌아온 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옆자리 대리가 불쑥 고개를 든다.      


― 와, 뭐예요?

―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어요.     


부장이 웃는다. 연은 신이 난 대리가 가져온 걸 하나 문다. 불안한 마음에 단맛이 단맛같지 않다. 부장은 잠시 잡담을 하다 모니터를 켠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연이씨, 이리 좀 와봐요-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이 벌써부터 귓가에 쟁쟁하다.


무섭다.     


그 때다. 결재대기 리스트에서 문서가 사라진다. 뭐지? 한참 새로고침을 누르다 설마하는 마음에 결재완료 창에 들어가보니 거기 품의가 있다. 당황하는 연에게 부장이 칸막이 너머로 말한다.      


― 연이 주임님, 결재했어요.      


연은 저도 모르게 되묻는다.     


― 벌써요?     


그러자 부장이 엉거주춤 일어난다.      


― 그럼요. 품의 깔끔하던데.      


연의 눈에 혼란의 빛이 떠오른다. 부장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연을 마주본다. 그러곤 웃는다.      


― 우리 팀 분들이 품의 얼마나 잘 쓰는데. 연이 씨도 그럴 거라 믿어요.      


부장은 다시 자리 앉는다. 잠시 뒤, 칸막이 너머에서 콧노래가 들린다. 연은 멍하니 모니터를 본다. 연이 씨도 그럴 거라 믿어요. 믿어요. 그럴 리가.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잘한 것도 없는데.      


연은 하릴없이 제가 쓴 문서를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새삼 줄간격이 예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단어 하나를 바꿨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연은 새로고침을 다시 해보고, 못 읽은 메일이 없나 확인한다. 화장실에 간다. 변기 위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잠시 운다.      


― 주임님, 물 주러 가요?     


자리에 돌아온 연이 스투키를 집어들자 대리가 묻는다. 연은 두 손으로 화분을 모아쥔다.      


― 네.     


웃는다.


― 이번엔 잘 키워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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