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디자인연구소 김남효박사
기독교 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C.S. 루이스와 제프 김의 문학 세계에 투영된 기독교 세계관 연구
A Study of the Christian Worldview Projected into the Literary Worlds of C.S. Lewis and Jeff Kim from an Evangelical Christian Perspective
동서양디자인연구소 김남효박사
기독교 복음주의 세계관의 이론적 기초: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의 사중 구조
기독교 복음주의 세계관은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상태, 그리고 역사와 종말에 대한 성경적 거대 서사를 체계화한 사고의 틀을 의미한다. 이 세계관의 핵심은 창조(Creation), 타락(Fall), 구속(Redemption), 회복(Restoration)이라는 네 가지 핵심 기둥으로 구성된다. 복음주의 신학에서 세계관은 지적인 동의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이자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토대가 된다. 알버트 월터스와 마이클 고힌 같은 학자들은 이러한 세계관이 사물의 본질인 '구조(Structure)'와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Direction)'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창조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자신의 지혜와 말씀으로 선하게 지으셨다는 고백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하여 만물을 다스리도록 문화적 사명을 위임하셨다. 이는 우연이나 진화의 산물이 아닌, 질서 정연한 하나님의 설계에 의한 것이며,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선한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타락은 이 선한 창조 세계에 치명적인 왜곡을 가져왔다. 죄는 사물의 선한 구조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가 지향하는 방향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이로 인해 피조 세계는 무질서와 엔트로피의 증가, 그리고 관계의 단절이라는 고통 속에 놓이게 되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왜곡된 방향을 바로잡을 수 없는 자정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대속적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이 뒤틀린 세상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구속은 영혼의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오염된 창조계 전체의 선함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개입이다. 회복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로 시작된 종말론적 과정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의 긴장 속에 있는 소망을 의미한다.
세계관 요소의 핵심 개념 및 학문적/신학적 의미
1) 창조 (Creation) :선한 구조, 하나님의 형상, 문화 명령 - 만물의 기원과 목적, 인간의 존엄성 정초
2) 타락 (Fall) :방향의 왜곡, 전적 부패, 피조물의 신음 - 죄의 실재성, 자정 능력의 상실, 도덕적 파산
3) 구속 (Redemption) :대속적 희생, 성육신, 부활 - 그리스도 중심적 회복, 은혜의 통치
4) 회복 (Restoration) : 구조의 재방향 설정, 새 하늘과 새 땅 - 종말론적 완성, 만물의 갱신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나타난 기독론적 상징과 구속사적 서사
C.S. 루이스는 그의 대표작인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기독교의 핵심 진리들을 '가정(Supposal)'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여 탁월하게 형상화했다. 그는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동물이 말하고 신화적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나니아라는 세계에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자 아슬란이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아슬란의 신적 야성과 주권적 통치
아슬란은 나니아의 창조자이자 구원자로서, 성경의 '유다의 사자' 이미지를 차용한다. 루이스는 아슬란을 '길들지 않는 사자'로 묘사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과 자유를 강조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조종하거나 협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오직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이는 복음주의 신학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그분의 섭리적 통치를 문학적으로 투영한 것이다.
루이스는 아슬란을 통해 '두렵고도 착한 존재'라는 신적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는 신자들이 하나님을 대할 때 가져야 할 경외심, 즉 그분의 공의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그분의 자비하심에 대한 신뢰를 동시에 의미한다. 나니아의 캐릭터들이 아슬란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떨림을 느끼는 장면은, 타락한 인간이 거룩한 존재를 직면했을 때 느끼는 영적 각성을 상징한다.
창조의 노래와 말씀의 능력
마법사의 조카에서 묘사된 나니아의 창조 장면은 기독교의 창조론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재현한다. 아슬란은 노래를 통해 별들과 대지, 생명체들을 하나씩 깨우며 무(無)에서 유(유)를 창조한다. 이는 성경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사건의 문학적 변주이다. 아슬란의 노래에 따라 혼돈이 질서로 바뀌고 생명의 파동이 우주에 퍼져나가는 모습은, 창조가 우연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의 예술적 행위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창조의 서사는 자연 세계가 지닌 영적 의미를 회복시키려는 루이스의 의도를 반영한다. 그는 현대 과학이 별을 물질적인 기계 체계로만 이해함으로써 잃어버린 '영적 상상력'을 복원하고자 했다. 나니아에서 별은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이는 피조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각자의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속적 죽음과 태초 이전의 심오한 마법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아슬란의 희생은 기독교 복음의 정수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한다. 에드먼드의 배신으로 인해 하얀 마녀가 주장하는 '태초의 마법'에 따라 배신자의 피를 흘려야 하는 상황에서, 아슬란은 스스로를 대속물로 내어준다. 하얀 마녀는 율법의 정죄와 죽음의 권세를 상징하며, 아슬란의 죽음을 자신의 승리로 오판한다.
그러나 루이스는 '태초 이전의 더 심오한 마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는 "죄 없는 자가 배신자를 대신해 죽으면 죽음 자체가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법칙으로, 복음의 핵심인 부활과 승리를 의미한다. 아슬란의 부활은 한 개인의 소생이 아니라, 돌 탁자가 깨어지고 죽음의 권세가 무너지는 우주적인 전환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로 인한 타락의 효과를 근본적으로 무효화하고 창조의 선함을 회복하는 시작임을 보여준다.
종말론적 소망: 마지막 전투와 영원한 나니아
나니아 연대기의 완결편인 마지막 전투는 기독교의 종말론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다룬다. 루이스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유인원 시프트와 혼합주의적 종교 '타슐란'의 등장을 통해 말세의 영적 혼란을 경고한다. 거짓 아슬란을 내세워 대중을 미혹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종교적 타락과 진리의 왜곡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나니아의 멸망은 허무한 끝이 아니라, '진짜 나니아'로 들어가는 문이다. "더 위로, 더 안으로"라는 구호는 신자가 죽음 이후에 맞이하게 될 영원한 생명과 더 높은 차원의 실재를 향한 갈망을 상징한다. 루이스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세상이 '그림자 땅(Shadowlands)'에 불과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나라가 참된 실재임을 강조함으로써 신자들에게 종말론적 승리를 확신시킨다.
제프 김의 그림책에 투영된 영적 생명력과 변혁적 세계관
제프 김 작가의 작품들은 시각 예술과 문학의 결합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의 현대적 적용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책 깨어나는 파동의 숲과 꽃을 사랑한 호랑이, 유오는 각각 창조의 역동성과 구속을 통한 본성의 변화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깨어나는 파동의 숲: 창조적 에너지와 성령의 운행
깨어나는 파동의 숲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깃든 생명력과 그에 대한 영적 각성을 주제로 한다. 여기서 '파동'은 창조주의 말씀이 물질 세계에 전달되는 방식이자, 만물을 보존하고 운행하시는 성령의 호흡을 상징한다. 숲이 조용해 보일 때조차 그 안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정은,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준다.
기독교 복음주의 관점에서 이 작품은 창조의 선함을 재발견하라는 부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루이스가 아슬란의 노래를 통해 창조를 설명했듯, 제프 김은 파동이라는 시각적, 감각적 메타포를 통해 만물이 창조주와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우연과 무질서를 주장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맞서, 우주가 지적인 설계와 목적 아래 있음을 변증한다.
꽃을 사랑한 호랑이, 유오: 구속을 통한 성품의 변화와 평화
꽃을 사랑한 호랑이, 유오는 타락한 본성이 구속적 사랑을 통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우화이다. 맹수로서의 본능, 즉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던 호랑이 유오가 연약한 꽃을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복음이 가져오는 '방향의 전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유오의 변화는 행동의 수정을 넘어 존재의 지향점이 바뀌는 구속적 사건이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구속은 우리가 부패시키고 왜곡시킨 본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꽃을 사랑하는 호랑이의 이미지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 성경적 샬롬(Shalom)의 시각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림책 비평의 방법론: 묘사, 해석, 판단
제프 김의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비평의 삼단계가 요구된다.
첫째, 텍스트와 그림에 나타난 정보를 세밀하게 읽어내는 '묘사' 단계가 필요하다.
둘째, 그 안에 담긴 세계관적 의미를 파악하는 '해석' 단계이다. 여기서 작가가 포스트모던한 허무주의를 따르는지, 아니면 성경적인 질서를 따르는지가 구분된다.
셋째, 그 가치가 기독교 신앙과 일치하는지를 분별하는 '판단' 단계이다.
제프 김은 루이스가 강조한 '수용적 태도'로 작품을 대할 때,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창조주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그의 그림책은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는 파동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루이스와 제프 김의 비교 분석: 매체와 시대의 변주
두 작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를 사용하지만, 복음주의 세계관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며 이를 현대 대중에게 전달하는 변증가적 역할을 수행한다.
상상력을 통한 진리의 구체화
루이스와 제프 김 모두 추상적인 교리를 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한다. 루이스가 '가정'의 형식을 통해 신학적 명제를 서사화했다면, 제프 김은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영적 실재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두 작가에게 상상력은 진리를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타락으로 인해 무뎌진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깨워 더 깊은 실재를 보게 하는 도구이다.
영적 전쟁과 선악의 구도
나니아 연대기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전쟁은 성경적인 영적 전쟁의 상징이다. 이는 물리적인 전투를 넘어 내면의 도덕적 갈등과 영적 충성심의 문제를 다룬다. 제프 김의 유오 역시 자신의 맹수 본능(타락한 성향)과 꽃을 사랑하는 마음(구속된 성향) 사이의 긴장을 보여줌으로써, 신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성화의 과정을 은유한다.
지식과 반응: 아슬란에 대한 참된 지식
나니아의 캐릭터들 중 아슬란을 배반하지 않은 이들은 그에 대한 '참된 지식'을 소유한 이들이었다. 이는 아슬란의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품과 과거의 행적을 신뢰하는 인격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반면 아슬란을 믿지 못하는 난쟁이들은 스스로 만든 불신의 감옥에 갇혀 구원의 잔치를 누리지 못한다. 제프 김의 작품에서도 숲의 파동을 느끼고 반응하는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의 대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복음주의 세계관의 문화적 적용과 변혁
두 작가의 문학 세계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문화를 변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문화 명령과 대위임령의 조화
신학적 쟁점 중 하나인 문화 명령과 복음 전파의 사명(대위임령)의 관계에서, 이들의 작품은 양자의 조화를 보여준다. 나니아에서 아이들이 왕과 여왕이 되어 정의롭게 통치하는 행위는 문화 명령의 수행이다. 그러나 이 모든 통치의 근거는 아슬란에 대한 신앙(대위임령의 핵심)에 있다. 즉, 세상을 돌보고 가꾸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구속된 신자의 당연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의 가교
루이스는 점성학적 요소나 신화적 생명체들을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비기독교적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일반 은총'의 영역을 긍정했다. 그는 과거의 좋은 의미들을 활용하여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기쁨(Sehnsucht)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제프 김 역시 자연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통해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생명의 신비를 노래하며, 이를 통해 영적 실재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죄의 실재성과 회복의 점진성
기독교 세계관은 인간의 결함을 섣부르게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인본주의적 낙관론을 경계한다. 나니아의 에드먼드나 유오의 변화는 고통스러운 과정과 외부의 개입(은혜)을 필요로 한다. 구속은 회복의 시작이며, 성령의 열매는 점진적으로 맺혀간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들에게 죄에 대한 정직한 직면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점진적인 성화와 회복의 소망을 준다.
결론 및 제언: 현대 사회에서의 기독교적 상상력의 가치
C.S. 루이스와 제프 김의 연구를 통해 확인된 기독교 복음주의 세계관은 파편화되고 허무주의적인 현대 사회에 강력한 대안적 서사를 제공한다.
첫째,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선한 설계 아래 있다는 '창조'의 신앙은 인간과 피조물의 존엄성을 회복시킨다. 이는 생명을 물질로만 보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만물을 사랑과 질서의 파동으로 인식하게 한다.
둘째, '타락'의 실재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와 인간 내면의 악을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다. 이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외부로부터 오는 구속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겸손의 토대가 된다.
셋째, '구속'과 '회복'의 서사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소망을 제공한다. 아슬란의 부활과 유오의 변화된 본성은, 어떤 어둠도 하나님의 빛을 이길 수 없으며 결국 모든 것이 원래의 선한 방향으로 회복될 것임을 확신시킨다.
결론적으로, 루이스와 제프 김의 문학은 복음의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삶으로 살아내게 만드는 '경험적 신학'의 장을 마련해 준다. 신앙인들은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을 도구 삼아, 타락한 세상 속에서 창조의 선함을 보존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 나가는 문화 변혁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아슬란을 따랐던 자들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나가는 영적 여정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글: 동서양디자인연구소 김남효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