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어설픈 나의 생각들 001
요즘 숲을 걷는 시간이 늘었다.
푸른 잎사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발밑에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코끝을 스치는 흙냄새까지. 이 모든 감각이 나를 지금 여기에 붙들어 매는 듯하다. 하지만 가끔,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숲은, 정말 내가 인식하는 그대로의 숲일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항상 양자중첩(Quantum Superposition) 개념이 떠오른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동시에 중첩되어 존재한다는 그 기묘한 이야기 말이다. 숲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을 때, 이 숲은 어쩌면 수많은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기 저 나무는 아직 가지를 뻗을지, 꽃을 피울지 결정되지 않은 채 흔들리고 있고, 저 돌멩이는 흙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새로운 생명의 터전이 될지 정해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내가 눈을 뜨고 발을 내딛는 순간, 비로소 나의 관측(Observation)에 의해 하나의 현실이 확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관측이 정말 유일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걸까? 메를로-퐁티가 말했듯, 우리의 몸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주체이자 통로다. 나는 숲을 걷지만, 동시에 숲은 나의 몸을 통해 경험된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흙의 질감, 나뭇가지에 스치는 옷깃의 감촉, 폐 속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 이 모든 것은 나의 몸이 숲과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경험’이다.
어쩌면 숲의 불확실성은 나의 몸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숲의 무수한 가능성 중 내가 하나의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이 숲과의 끊임없는 교감(Interaction)을 통해 특정 가능성을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숲의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그 과정에서 숲은 나에게 특정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숲길을 따라 걷다 잠시 멈춰 선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이 순간, 나는 숲의 모든 가능성과 나의 몸이 지닌 모든 감각이 한데 어우러져 중첩된 상태를 느낀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나는 다시 지금의 숲, 나의 몸이 경험하는 이 숲의 현실 속으로 돌아온다. 이 어설픈 숲 산책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유동적인 곳이며, 나의 몸이 그 모든 것을 인지하는 중요한 매개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의 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양자 중첩 상자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음 발걸음은 어떤 숲을 만나게 될까?
나는 또 어떤 현실을 경험하게 될까?
숲은 여전히 나의 다음 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김남효, ‘무하유 중첩 01’ 아사천에 숯, 안료,
116.8×91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