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비 촉촉히 내리는 날

우산에 대한 기억

by 장은기

비가 제법 굵게 내린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다.

외출하려고 현관에 나서서 우산을 집어드는데 네식구 우산치고는 수가 많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침에 들고 나가면 집에 돌아올때는 어김없이 빈손으로 들어오는 까닭에 비올때를 대비해 틈틈히 구입하여 쟁여놓은 우산들이다.





나의 아버지는 팍팍한 도시생활과 생활고에 지쳐 아내와 자식을 외면하고 외아들인 남동생만데리고 시골로 내려가셨고 서울에는 엄마와 네딸, 이렇게 다섯식구가 남겨졌다(마침 시골에 내려가 있었던 여동생은 졸지에 엄마와 떨어져 시골살이를 하게되었다).

엄마는 남편없이 막막한 도시에서 네 딸들을 먹여살려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일이다.


초등학교에 다닐때, 나는 비오는 날이 싫었다.


일단 식구 수대로 우산도 없었거니와 있다하더라도 망가졌거나 대나무살에 파란색 비닐로 씌워진 너덜너덜한 우산이 전부였다.


부지런했던 내 바로 위 언니는 그 중 좋은 우산을 차지하기 위해 비오는 날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우산을 먼저 선점하기 일쑤였고, 나는 좋은 우산을 차지하지 못해 속상한 마음을 삼키며 터덜터덜 학교로 향하곤 했다.


운좋게 우산을 차지하고 학교에 가도 좀 넉넉하게 사는 아이들이 가져오는, 헝겊위에 투명하고 톡톡한 비닐이 덮여있고 거기에 들장미소녀 캔디 같은 만화영화 주인공이 그려진 멋진 핑크색 자동우산을 보면 너무나 부러웠다. 내 우산이 창피하기도 했다.


아침에 등교할때는 비가오지 않았는데 하교할때 비가 내리면 난 더 우울해 졌다.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우산을 가져와서 교실밖에서 기다릴때, 난 어차피 일나가신 엄마오지 않을 것이고 비를 맞으며 집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산없이 비를 맞고 학교에 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우산이 모자랐을때 비를 맞고 출근했던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언니들이 우산을 사주기도 했었지만, 내가 제대로된 예쁜 우산을 가지게 된 것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부터인것 같다. 그때도 월급으로 엄마 생활비며 적금, 용돈, 결혼자금 등을 모으느라 사정이 녹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내가 사고싶은 것을 살수는 있었다.




나는 지금 결혼해서 아이들이 대학생이고 남편은 대기업 부장이며, 일찍 결혼해 아이들을 다 키운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어 재취업에 성공했다.

남편 소유의 아파트가 있고, 내가 사용하는 작은 자동차도 있으며, 나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현관에는 식구 수보다 많은 우산이 구비되어 있고 자동차 트렁크에도 서너개의 우산이 비올때를 기다리며 준비되있다.


더이상 좋을 것이 없다.

그런데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 그시절의 나는 무엇이든 될 다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난 더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는걸 깨닫는다.


오늘 나는 우산을 적시는 비를 바라보며 새삼 내가 잃어버린 꿈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선생님이라는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