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즈음한 이 시기에는 매스컴을 통하여 관련 뉴스나 사연에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한 연유로 이맘때쯤이면 나와 인연을 맺었던 선생님들에 대해 회상하게 되는게 사실이다.
나는 어렸을때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학급 내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이었고, 새학기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도 존재감이 별로 없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물론 친구도 하나 없는 외톨이는 아니었고 주변에 고만고만한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래도 중학교때까지는 공부를 그럭저럭 잘해서 반에서는 상위권에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한 학기가 지나갈 즈음에는 담임선생님이나 내가 잘하는 수학이나 과학같은 과목 선생님들의 관심이 조금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될때쯤에는 공부의 맥을 놓쳤고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더군다나 우리집 가정형편이 매우 열악했는데, 성격상 그런 것들에 많이 신경쓰고 움츠려드는 편이었기때문에 학교생활에 더욱 소심해졌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한번쯤 찾아뵙고싶은 선생님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선생님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들만이 또렸하게 남아있다.
그 상처들 중 많은 것들은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묻어두고 잊혀졌거나, 잊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지금과는 교육환경이 많이 다르겠지만, 내가 겪었던 선생님들은 대체로 공부잘하고 집안환경이 좋아 부모의 관심이나 학교방문이 잦고 촌지 등을 건넬 수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을 편애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무관심 했다. 또 교사의 권위만을 내세우며 학생을 억압하고 부당한 체벌, 훈육을 하는 선생님들도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대학생이 된 아이 둘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선생님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기를 바랬다.
불행하게도 아들녀석은 나처럼 선생님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외고를 다닌 탓에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아이들에 치여서 상대적으로 힘들었던 모양이다.
딸아이는 고교 2학년때 실용음악으로 진로를 결정했으므로 학원 수강을 위주로 하여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시교육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고, 학교의 무관심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지나간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중 특히 선생님은, 사춘기 혹은 자아형성 시기에 있는 제자에게는 상상할 수 없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선생님 한분 잘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면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반대의 결과도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세상에는 진심을 다해 올바른 교육관을 가지고 성심껏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이 더 많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 많은 제자들 하나하나에 일일이 관심을 갖기에는 여력이 부족하고, 수업 외의 잔무에 시달리며, 종종 못돼먹은 학생이나 학부모로 인해 교사의 권위는 무너지고,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해 입시를 위한 교육만을 강요하고 있는 이 시대에, 묵묵히 교육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선생님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오히려 그런 선생님들에 대해 고마움과 격려를 보낸다.
교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들과는 다르다는게 나의 소견이다.
나라를 짊어지고 갈 어린 아이들의 인생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에, 직업이기 이전에 소명이라는 생각을 가진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