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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기 Sep 25. 2016

자식 대학 보내기 2

신문에서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을 분석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나의 형제자매가 5녀1남이고, 시댁도 똑같은 구성인 나에게는 흥미로운 기사였는데 분석 내용이 대체로 맞는것 같고 기사내용대로 출생순서에 따라 특색있는 성격을 가지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였다.


누구나 큰아이의 교육에 좀더 엄격하고 정성을 들이는 반면 둘째아이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고 좀더 자유분방하게 키우는 듯 싶다.

나도 마찬가지로 둘째아이에게 상대적인 방목을 했던것 같다.


귀여운 막둥이


아들과 2년 터울인 딸아이를 키울때 꽤나 힘들었다. 맏이도 아직 어린데 거의 연년생이나 다름없는 둘째를 감당하기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던게 사실이고, 자연스럽게 풀어놓고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영리함에 종종 놀라곤 할 때도 있었다.

예를들면 '이젠 슬슬 한글을 가르쳐볼까'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길을가다 간판을 읽곤 하는 것이다.  

아마 내가 신경쓰지 않고 있는 사이에 오빠나 가족들을 통해 혼자 터득한 모양이다. 어찌나 귀엽고 신기한지. 아마 막둥이라 더 귀여운 건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가끔씩 반에서 1등도 하고, 큰아이를 가르칠때 힘들게 넘어갔던 부분들, 예를들면 구구단 외우기, 통분하기, 방정식 부분들을 훨씬 수월하게 넘어가는지라 내심 큰아이보다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아이가 수포자?


그랬던 딸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쯤 되면서 소위 말하는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되었다. 그 무섭다는 중2병이 찾아왔던 것일수도...


그리고 장래희망이 거의 한달마다 바뀌었다. 미술을 하겠다고 하다가, 춤을 배우겠다는 둥, 연예인이 되겠다고도 한다. 어쨌든 나에게는 공부를 하기싫어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는 것으로 보였다.


고심하던 나는, 딸아이가 잠시 클라리넷을 배운적이 있고 곧잘 하기도 하여 시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입상한 적도 있어서, 그걸로 대학을 보낼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주변에서 예체능을 시킨  엄마들이 집을 한채 팔았다느니, 부업을 해 레슨비를 충당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이내 포기하였다.


고집쟁이 막둥이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딸아이는 수포자로서의 확실한 길을 가고 있었다. 다만 영어와 국어는 어느정도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는지라 포기하기엔 아깝고 애매한 등급이었으므로, 딸아이와의 싸움만 계속 되었다.


그런데 고2때 5월경 갑자기 실용음악과를 진학할테니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내 자식들은 왜 진학 시기만 되면 내 속을 썪이는 건지 참... 그것도 뒤늦게.


나는 허락한 적이 없는데 딸아이는 아빠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즈이 아빠 손을 붙들고 기어코는 실용음악 학원을 등록하고 왔다.


 '그거해서 나중에 뭐해먹고 살래?, 그걸로 대학  가기가 쉬울거 같니?, 공부해서 가는거보다 더 어렵데, 실용음악과 들어가기가 바늘구멍만큼 어렵다는데' ... 여러가지 협박(?)으로 설득해도 막무가내였고 딸아이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어라? 내딸이?


예체능계  진학을 준비하기엔 너무 늦은 시기였다. 하지만 딸아이는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자신감을 믿지 않았다.


학교 수업, 야간 자율학습에 소홀해졌고 당연한 결과로 성적은 더 떨어졌다.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수능시험이 다가오고 수시모집이 시작되었다. 딸아이는 연주곡 준비, 자작곡 녹음,  이론시험 준비 등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험이 다가올수록 그 노력이 가상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자작곡이라며 들려주는 곡을 들어보니 그럴듯 한게, 혹시라도 붙으려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하기도 했다. 나도 무척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시 실기시험이 시작되었고, 딸아이는 지원한 모든 대학에 낙방했다...


내딸이 재능있는 그 수많은 아이들의 바닥을 깔아주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정시모집이 시작되었고 아이는 모든 곡을 다시 작곡하고 녹음한다고 하였다. 말없이 지켜보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니 답답하기 짝이없고 그 두세달의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는데, 정시 준비가 마무리될 즈음 아이는 내게 '나 열심히 했고, 짧은 시간 동안  실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믿어주지 않았던 것이 미안해 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는 많이 성장해 있었던 것 같다.


정시 결과는 한 학교는 3명모집에 추가 3번, 또 한군데는1명 모집에 추가 1번이었다.


다음해 1월 말까지 추가합격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딸아이는 알바를 하면서 재수를 할거라며  서울에 있는 학원을 알아보고 알바자리를 구해 놓았다.


그리고 2월초쯤 추가 3번 학교에서 추가합격 소식을 알려왔다. 딸아이와 나는 부둥켜 안고 눈물을 찍어냈다.


딸, 니가 행복하다니까


큰아이가 재수를 했고 다음 해에 둘째 입시까지 내리 3년을 수험생을 둔 부모로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꿈을 꾼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아이들의 졸업 후 취업을 걱정해야 할 시기다.


아들보다 딸이 걱정이다.

아들은 경제학과를 진학했기 때문에 막연히 어디라도 노력해서 취업할 길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지만, 딸아이는 실용음악과를 나와서 취업할 수 있는 분야가 너무나 한정되어 있고, 아이의 창작활동을 지원해 주기에는 우리 부부의 경제력은 부족하다.


딸아이가 얼마전 이렇게 말한다.

'지금하는 공부가 너무 행복해'


나는 그 시절 행복했던가?

너무나 부족했던 어린시절과 많이 불행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본다. 내가 하고싶었던 공부와 일을 해본 적이 있었나... 내가 20대라면 미친척 하고 엄마와 가족을  버리고 그냥 이기적으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텐데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나는 그때로 돌아가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우리집은 꿈을 가지기에는, 희망을 관철시키기에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내 딸아이가 행복하다는데, 그거말고 뭐가 중요한가.

이제 나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나중에 무엇이 되어 어떤 것으로 성공할지는 살아봐야 아는 것이다.


지금 행복한 만큼 앞으로도 살면서 충분히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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