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삶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일을 말한다. 조사한 결과 자기 삶을 살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했다고 한다.
왜 사는지, 뭐 하고 살지에 대해서 사실 내 관심 주제가 아니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 따름이다. 아침에 눈이 떠져 일어나고, 쾌적한 집안을 위해 청소한다. 에너지가 필요하여 밥 먹고, 건강을 위해 걷는다. 고객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나도 고객이 있어야 하므로 즐겁게 일한다. 집에 걸어가고, 사색하다가 피곤하여 잠을 잔다. 내 행동에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마음 가는 대로 산다.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미리 정해 둔 목적지는 없다. 가고 있는 길의 매 순간이 목적지다. 공을 차는 애들이 쉬는 시간 10분이 간절하듯이 짧은 삶이 절절하다. 목표를 꼭 말해야 한다면 기대하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며 존중하고 감사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주인으로 살고 싶다.’ 내 마음의 소리에 따라 몸을 움직여 걷고 싶다. 남이 시켜 끌려다니거나 남의 시선에 따라 살 경우 짜증이 나고 나중에 후회한다. 내 삶이 아니고 남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동행하는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고 싶다.’ 곁에 있는 아내, 자식, 가족, 친구, 고객 등이 그런 사람이다. 어릴 적 밥 주고 똥, 오줌을 치우고 수발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같이 부대끼며 사는 아내와 애들, 외로울 때 곁에 있고 밥 사준 친구가 고맙다. 돈을 주는 고객이 있고 그 돈으로 본부를 운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바쁘더라도 곁에 있어 소중함을 잊기 쉬운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심심한 삶을 살고 싶다.’ 심심한 삶에 행복이 있다. 세상에 감사할 게 없는 게 아니라 이미 완벽하고 널려 있다. 너무 심심해서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심심하다고 불평한다. 널뛰지 않는 마음, 공기, 물, 햇볕, 음식, 사지 멀쩡한 몸, 숙면, 잘 나오는 배변 등 모든 것에 고맙다. 사고를 당하면 심심함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껴 안다. 타이슨이란 권투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자본주의, SNS 사회에 살고 있다. 등지거나 매몰되지 않는다.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적응한다. 돈, 땅, 건물, 직장, 학벌, 팔로워 수 등이 많거나 좋으면 살기 편하고 뿌듯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나 SNS 속 세상은 비교 경쟁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그것들에 매몰되면 걱정이 늘어 행복하기 어렵다. 남의 것이 커 보여 본성대로 사는데 큰 걸림돌이고 비교 경쟁에 몰두하고 자신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 나중에 후회한다. 돈 등이 많으면 고맙고, 적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거실과 방의 불을 켜고 창문을 열었다. 청소를 했다. 음식 하느라 도마에 사각사각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딸이 맞춘 알람도 크게 지저귀었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죽은 후 식구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그는 삶의 순간순간을 열렬히 아꼈으며, 사랑하는 삶, 그녀가 흘러가는 데로 내맡기고, 그녀에게 성실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