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에서 죄와 용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신애는 무참히 살해된 어린 아들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 후 신애는 아들을 죽인 남자를 용서하려고 교도소를 방문했다. 그런데, 그 살인자는 기독교인이 되어 신애의 의지나 고통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구원받았다고 고백했다.
① 용서의 의미 ② 죄지은 자를 처벌하는 자, ③ 죄인을 구원하는 자에 대해 알아본다.
용서라는 행위는 피해자가 복수심을 꺾는 행위, 죄지은 자가 잘못을 비는 행위, 용서한다고 말 등을 전하는 행위, 벌하고 구원하는 행위로 나누어진다.
‘피해자가 마음으로 하는 용서는 복수심을 꺾고 자기를 해방시킨다.’ 피해자가 마음으로 용서한다는 말은 상대를 불러놓고 상대에게 용서한다고 말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자기 마음속에 있는 복수심을 꺾는 행위를 말한다. 혼자 마음속으로 자기에게 하는 행위다. 상대에게 화풀이나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내 마음속에서 삭제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는 복수심을 꺾고 증거를 모아 신고하고 법에 의해 처벌하며 역사에 기록을 남긴다. 용서한다고 말을 전하거나 구원해 주는 행위는 절대자에 맡긴다.
상대가 나에게 죄를 저질렀고 나는 상처를 입었다. 내 과거의 아픈 상처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원한과 증오가 피해자인 나를 옭아맨다. 내가 그 구속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복수심을 불태우는 게 아니다. 원한과 증오로 복수심을 안고 사는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죽어난다. 마음속의 화로 인해 몸과 마음이 병든다. 과거에 피해를 입어 피해자고, 복수심으로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 피해를 입는 피해자가 되고 만다. 복수심을 꺾는 행위를 통해서만 그 원한과 증오에서 해방될 수 있다. 마치 상대에게 쓰레기를 받았는데 쓰레기를 꼭 간직하고 쓰레기를 보면서 나에게 나쁜 것을 준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것과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복수심을 꺾는 용서는 피해자가 통제할 수 있으나, 가해자가 죄를 비는 것은 가해자 마음이므로 피해자는 통제할 수 없다. 상처받은 일은 과거의 일이므로 완전 수용하고 통제 불가능한 가해자에 내 행복을 내맡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삶이 짧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기에도 바빠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상처를 원망하거나 부여잡고 울 틈이 없고 소용도 없다.
내가 용서했는데 그 사람이 돈이 없어 다시 죄를 지었다. 용서한 내가 잘못한 것인가? 나 혼자 마음속으로 복수심을 꺾은 용서 때문에 상대가 다시 죄를 지은 게 아니다. 돈이 없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내가 복수한다고 범죄 재발률이 더 낮아지지 않는다. 범죄재발률과 내 용서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다시 죄짓는지 여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피해자는 죄지은 자를 처벌하면 안 되고 처벌할 수도 없다.’ 사적 복수를 허용하면 개인의 원한을 이유로 살인, 폭행 등이 난무할 수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범죄에 해당하여 처벌이 매우 엄격하다. 현행 법이나 절대자만이 처벌할 수 있다. 설령 피해자가 죄지은 자를 처벌할 권한이 있더라도 현실에서 죄지은 그자를 처벌할 수 없다. 살인자가 죄를 진실로 반성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선행을 베푼다고 하자. 과거에 죄지은 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다. 벌을 받아야 할 죄지은 자가 사라져 버려 죄지은 그자를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죄를 용서하여 구원하는 주체는 도, 불성 또는 신이다.’ 피해자인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다. 영화 <밀양>의 신애는 어처구니없었다. 살인자는 용서를 구한 적이 없었고, 피해자 신애도 용서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살인자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 구원받았다고 말했다. 신애는 살인자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살인자는 신애의 의지와 상관없이 셀프 구원을 받아 버렸다.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피해자는 죄인이 진실로 반성하여 죄에서 벗어났는지를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다. 노자는 ‘도에 대한 깨달음을 구하고 도를 깨달으면 죄를 지어도 용서한다.’라고 말했다. 불교는 ‘아집에 사로잡혀 법(法)에 어긋나는 일이 죄이므로 자력에 의한 해탈이 죄를 벗어나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성경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죄를 해결할 수는 없으며(렘 2:22),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인간에게 죄 사함의 은총을 허락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뿐임을 강조한다(엡 1:7, 히 9:22-28, 요일 1:7, 출 34:6-7, 히 10:17, 요일 1:8-9). 나도 많은 죄를 짓고 절대자에게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았듯이 남도 죄를 짓고 절대자에 빌고 구원받을 수 있다.
영화에 악당을 때리거나 물리치는 장면을 보고 통쾌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들면 자기만 손해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복수심으로 명이 짧아지며 암, 치매 등 병이 난다.
용서를 비는 죄인을 용서하여 구원하거나 벌하는 주체는 절대자나 법이므로 그런 것은 절대자나 법에 맡긴다. 그런 권한이 없는 인간이 할 일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복수심을 꺾고, 화병 나지 않은 마음으로 증거 확보 등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