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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Nov 05. 2023

6. 자율: 2차 싸움(포용)

제5장 기타 개념에 대하여

8월 5일 토요일 8시에 2차 싸움의 서막이 올랐다. 그녀가 1차 싸움에 패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시기에 다시 도발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치밀했다. 사람들이 방심할 수 있는 휴일을 선택하여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남편은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쓴 글을 고치고 청소했다. 아내는 다른 토요일과 다르게 조금 일찍 일어났다. 아침 반찬으로 10개쯤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떡갈비, 감자볶음, 계란말이 등 반찬이 많았다. 폭풍 전야의 고요였다. 남편은 뒤늦게 아내가 전쟁 대비를 하고 있음눈치챘다. 도발할 수 있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았다.


그녀가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먼저 폭탄을 투하했다. 얼굴을 손으로 감싸 식탁에 괴며 피곤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녀가 안쓰러웠다. 아내는 처음에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주말 아침이고 더운데 쉬지 못하고 목적지에 가는 게 힘들지.”


그녀는 본심을 드러냈다. 오후에 가겠다고 했다. 사실은 숙제를 안 해 가기 싫었던 거고 오후에 대체 수업은 없었다. 거기에 넘어갈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는 그녀가 목적지에 안 가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면서 휴대폰 볼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 꼴 못 본다." 세게 나가는 아내에게 그녀는 당황해 눈물을 보였다.


그녀가 처량했다. 그렇다고 이 정도에 물러설 남편이 아니었다. 남편도 아내 편에 참전해 쐐기를 박았다. “아프면 병원 가고, 아니면 목적지에 가라.” 그녀는 한참을 더 울었다. 아내는 감기 기운이 있는 그녀에게 감기약을 줬다. 그녀는 감기약을 식탁에 토했다.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아내와 남편은 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하기 싫으면 토하는 공격을 어릴 적부터 했다는 것을.


그녀는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공격수단을 사용했다. 아내에게 목적지까지 태워주라고 했다. 아내는 단호히 거절했다.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가 버렸다. 힘과 힘, 자존심과 자존심 대결이었다.


사실 2차 싸움에서 이겨야 생기는 것은 없었지만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녀가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경우 집안 분위기가 한겨울처럼 냉랭해진다. 언제라도 싸움이 재개될 수 있다. 남편은 글 쓰러 나가기 불편하고, 아내는 화나 스트레스받는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안 트니 그녀도 더위를 참으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상황이 최악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내는 나갔지 그녀는 계속 울었다. 남편은 지금  순간이 그녀에게 카드를 던져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최선의 카드는 협상과 타협이었다. 그녀를 너무 세게 몰아붙이면 고집 피우며 감정적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남편은 2차 대전의 목표가 동거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녀가 순순히 목적지에 가는 것임을 잊지 않았다. 남편은 목적지에 혼자 가라고 말한 아내가 있는데 타협안을 제시하면 아내 말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차 배터리 충전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타협안을 제시할 적기였다.


남편은  발짝 물러나 차 배터리 충전할 겸 그녀를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지난주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불러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시켰다. 이번주 차를 한번 몰아줄 필요가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차 시동 안 걸릴 수 있으니 내려가서 체크하고 올라오겠다고 말했다. 다녀온 후 그녀에게 농담 한 마디 건넸다. “큰일 났어. 오늘 못 태우고 갈 것 같아. 시동이~~ 잘 걸려.” 그녀는 “에이, 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느긋했다. 목욕하고 머리를 말렸다. 남편은 그녀와 9시 58분에 출발했다. 그녀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감정 표현 안 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수업이 몇 시에 시작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10시에 수업이 시작한다고 했다. 지각으로 복수하는 짓이었다. 화내거나 재촉할 남편이 아니었다. 이미 늦은 것 화내 봐야 실익이 없었다. 남편은 사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덤덤했다. 그녀에게 목적지 상호를 물었다. 그녀는 차분히 알려 주었다. 내비게이션으로 위치 찾고 맞는지 물었다. 그녀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신호등이 기가 막히게 켜졌다. 좌회전, 우회전, 좌회전, 직진 신호등이 딱 맞았다. 차는 거침없이 질주했다. 남편은 그녀에게 운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10시 10분에 도착했다. 그녀는 억울함이 줄어든 표정을 지으며 내렸다. 남편은 그녀에게 “힘내!”라고 말했다. 그녀는 황급히 목적지에 들어갔다. 드디어 2차 대전이 끝났다. 남편은 전쟁으로 인한 출혈이 심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은 아내에게 카톡으로 전쟁 종료를 알리고, 글 쓰러 빵집 갈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중1 둘째 딸이고, 목적지는 수학 학원이었다.


그녀는 앞으로도 가장 실익 있는 것을 선택하는 훈련을 반복해 흐름의 방향을 읽고 흐름에 순응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특히 남이 자기 말 안 들어주어 기분이 안 좋을 때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며 고집 버리고 실익을 선택하는 연습이 많이 필요했다. 윽박질러 억지로 따르게 하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가 너무 깊고 습관 교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


최고의 공격전술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협상과 타협이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 낮추라고 하면 기분이 상한다. 힘센 사람이 낮추고 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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