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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Nov 07. 2023

8. 굽힘과 곧음

제5장 기타 개념에 대하여

사람들은 곧음을 강요한다. “네가 뭐가 못나서 굽혀. 죽을지언정 굽히지는 마라.”라는 사람도 있다. 곧음이 멋있고 강하고, 굽힘은 자존심에 상처 나고 약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굽힘에는 상대 존중이라의미를 담고 있다. 인사할 때 허리를 굽힌다. 절할 때 몸을 굽히고 무릎을 꿇는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을 때 협상을 통해 타협할 수 있다. 절대 내 이익은 포기할 수 없고 그럴 바에는 죽겠다는 사람과 협상할 수 없다. 자기만 존중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처사다. 타협은 피해를 줄이고 실익을 취하는 최선의 공격이자 방어기술이다.


곧음이 굽힘과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해진다. 약자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강자에게는 곧은 마음으로 부드럽게 대한다. 거꾸로 하기 쉽다. 곧기만 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힘이 빠졌는데 자기만의 원칙 지키다가 루이 16세처럼 당한다. 목 뻣뻣이 세우고 다니는 사장은 목 근육이 뭉쳐 통증이 오고 직원들에게는 다가가기 부담스러운 존재다.


916년 거란의 아율아보기는 유목생활을 하는 부족을 통합하여 거란제국(이후, 요나라)을 세웠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멸망하여 5대 10국의 혼란한 시기였다. 아율아보기는 야망이 큰 인물이었다. 중국을 차지하기 위해 배후 주변국들을 쳤으며, 발해도 926년 거란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중국 대륙의 송, 한반도의 고려, 만주지역의 요가 동북아시아를 지배했다. 요는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고려를 침공했다. 호락호락한 고려가 아니었다. 고려는 세 차례에 걸친 요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1차 서희의 외교 담판, 2차 양규의 거란군 후방 공격, 3차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 있었다. 그중 싸움의 최고기술을 구사한 사람은 서희 장군이다. 외교 담판으로 전쟁을 끝냈다.


993년 거란이 8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려를 침공했다. 거란은 거칠게 없었다. 고려의 보주, 천마, 봉산성을 연이어 함락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다. 고려의 군대는 중앙군 약 5만 명, 주현군 약 30만 명 등 전체 다 합쳐야 대략 40만 내외에 불과했다. 병력 수는 적은데 방어할 곳은 많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견이 나왔다. 그냥 투항하자는 의견, 평양 이북을 거란에게 넘겨주자는 의견, 일단 싸우고 의논하자는 의견(중군사 서희)이 나왔다. 고려 성종은 서희의 의견을 밀어주었다. “누가 거란과 외교 담판하여 만세의 공을 세우겠는가?” 중군사 서희가 대답했다. “폐하! 신이 비록 부족하지만 폐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서희 장군 일행은 국서를 지니고 담담하게 거란 군영으로 갔다. 거란의 소손녕 장군은 서희 장군에게 자기는 큰 나라 조정에서 온 귀인이므로 뜰에서 절하라고 했다. 서희 장군은 양국 대신끼리의 예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번을 소손녕 장군에게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 드러누워 버렸다. 소손녕 장군은 결국 받아들이고 마루에서 서로 예를 행했다.


소손녕 장군은 고려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졌다. “고려는 신라 멸망 후에 세워졌는데 고려 영토가 거란 땅을 침범하고 있다. 또한, 거란과 맞닿아 있는데도 바다 건너 송과 외교를 맺고 있다. 땅을 내놓고, 고려 임금은 요 조정의 조회에 들어오도록 하라(입조入朝).”


서희 장군은 다음과 같이 국토 문제를 방어했다.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요. 그래서 국호를 고려로 정하고 평양에 도읍하였소. 고구려 땅의 경계를 논하자면 상국(上國)의 동경(東京)도 모두 우리 경역인데 어찌 침범했다고 할 수 있겠소?”


서희 장군은 다음과 같이 입조 문제를 방어했다. “여진 때문에 입조를 못하고 있소. 여진을 쫓아내고 고려의 옛 땅을 되찾아 성보(城堡)를 쌓고 길을 뚫는다면 감히 입조를 하지 않겠소?”


서희 장군은 거란의 침략 이유와 협상의 핵심을 꿰뚫고 보고 있었다. 거란은 고려를 지배하기 위해 침략한 게 아니었다. 고려와 여진을 견제하기 위한 외교전략의 일환이었다. 송나라를 위해 주변국 견제가 필요했다.


거란은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다. 싸움이 길어지면 송과 여진족의 습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점 고려가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했다. 거란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는 고사하고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서희 장군은 거란의 속내를 잘 파악했고 고려의 안융진 전투 승리 등 협상 시점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협상에 힘이 실렸고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다. 소손녕 장군과 협상했다. 소손녕 장군협상 내용을 거란 조정에 보고하고, 화해를 맺으라는 회답을 받았다.


거란은 협상으로 실익을 얻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또한, 고려왕의 입조, 거란 연호 사용이라는 명분을 얻었고 고려, 송과 여진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고려가 송과 외교관계를 단절하여 고려와 송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었다. 또한 고려가 여진과 맞서 싸워 고려와 여진의 힘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고려도 협상으로 실익을 얻었다. 서희 장군은 고려가 약자라는 현실을 인정했다. 거란 80만 대군은 고려 중앙군보다 10배 이상 많은 병력수였다. 약자인데 머리 뻣뻣이 세우다가 전쟁에서 패하면 전쟁의 피해는 커지고, 속국으로 전락한다. 고려는 전쟁 피해와 전쟁비용을 최소화했고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고려는 거란과 화약을 맺어 태조 왕건의 고구려 옛 영토 회복 정책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그 이후 고려는 요의 약조와 달리 거란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송과 비공식적으로 계속 교류했다.


서희 장군은 거란 군영에서 7일을 머물고 소손녕이 준 낙타, 말, 양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왔다. 고려 성종은 너무 기뻐서 강나루로 나가 서희 장군을 맞이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싸워서 초토화시키는 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다. 이긴 자나 진 자에게 참혹하고 잔인한 게 전쟁의 현실이다. 특히 힘없는 자는 국경을 넘어선 적들에게 짓밟혀 땅은 황폐화되고, 약자의 국민은 집이 불타고 가족이 죽어 슬프며 싸우는데 힘겹고 먹을 것 없어 고생한다.


고려는 약자, 고려 영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수비해야 하는 입장이다. 약자가 전면전을 벌여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 등이 찔려 죽고 국토가 황폐화되어 굶어 죽는 경우 이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약자가 굳이 싸우지 않고 협상으로 공동체의 이익과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타협이 온전해지는 길이다. 서로 존중해야 가능한 타협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거둔다. 타협은 공격과 수비의 최고 기술이다.


약자가 추세나 흐름의 방향을 잘 못 읽고 머리 뻣뻣이 세우다가 루이 16세처럼 부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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