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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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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01. 2024

44. 아무런 형상이나 생각 없이 덕을 베푼다

도덕경 제38장

높은 덕은 아무런 형상이 없으니 덕이 있고,

낮은 덕은 덕을 놓아주지 않으니 덕이 없다.


높은 덕은 무의식적이고 하는 이유가 없고,

낮은 덕이란 의식적이고 하는 이유가 있다.


높은 어짊은 의식적이고 하는 이유가 없고,

높은 의리는 의식적이고 하는 이유가 있다.

높은 예절은 의식적이고 응하면 화낸다.


따라서

도를 잃은 후 덕이 뒤따르고,

덕을 잃은 후 인이 뒤따르며,

인을 잃은 후 의가 뒤따르고,

의를 잃은 후 예가 뒤따른다.


대체로

예는 정성과 참됨이 박하고, 어지러움의 시작이고,

지식은 도의 화려한 겉이고,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이 때문에 대장부는

정성과 참됨이 후하며 박하지 않고,

열매에 머물며 꽃에 머물지 않는다.


이에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上德不德, 是以有德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위지이유이위.

上仁爲之而無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상인위지이무이위. 상의위지이유이위.

上禮爲之而莫之應則攘臂而仍之.

상례위지이막지응즉양비이잉지.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夫禮者忠信之薄而亂之首也, 前識者道之華而愚之始也.

부례자충신지박이란지도야, 전식자도지화이우지시야.

是以大丈夫處其厚, 不處其薄,

시이대장부처기후, 불처기박,

居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거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


노자가 도, 덕, 인, 의, 예, 지, 신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힌다. 도와 덕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나 인, 의, 예, 지는 의식적인 행위라고 한다.


도는 없음이다. 사람에 체화되어 있는 도를 본성 또는 덕성이라고 한다. 각각의 만물에 담겨 있는 도의 유전자를 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성이나 덕성은 자아(ego)를 통해 드러난다. 자아(ego)에 덜 영향받을수록 높은 덕에 가깝다.


높은 덕은 형상에 집착하지 않으며(無相), 행할 때 의식하지 않고(無爲), 어떤 목적이나 이유가 없다(無以爲). 참된 마음으로 행한다(信). 의식적으로 하는 게 없는 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하고, 아무 가치도 없는 듯하다.


반면 낮은 덕은 형상에 집착하고(有相), 행할 때 의식하고(有爲), 목적과 이유가 있다(有以爲). 참된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不信). 겉은 화려하나 속은 꾸미고 참되지 아니하여 허하다.


'높은 덕은 형상에 얽매지 않는다(無相).'

높은 덕은 형상에 얽매지 않아 무상(無相)이고, 낮은 덕은 형상을 놓아주지 않아 유상(有相)이다. 높은 덕은 고정된 관념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립을 초월하므로 선하든 선하지 않든 차별하지 않는다.


낮은 덕은 고정된 관념이 있어 어떤 모습이 덕이라는 형상에 집착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경우 그 대상을 미워한다. 행한 이후에 덕을 베풀었으므로 보답을 기대한다.


'높은 덕은 무의식적이며(無爲), 목적이나 이유가 없다(無以爲).'

높은 덕은 의도하는 게 없어 무위고, 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낮은 덕은 의도하는 게 있어 유위고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높은 덕은 자연 발생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혈액이 순환하고, 맥백이 뛰며, 숨 쉬는 것처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와서 한다. 


반면 낮은 덕은 의식적으로 하고, 덕을 베푸는 목적과 이유가 있다. 가려서 덕을 베풀고 베푼 후 보답을 바란다.


'무위와 유위의 수준'

, , 예, 의식적이다. 인, 의, , 지가 나쁘거나 수준이 낮아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는 자발성, 무의식적인 행동에 가치를 둔다. 이성이나 의식에 가치를 더 두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인, 의, , 는 자연 발생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가치가 아니고, 진위 및 선악을 판단하는 윤리 이성에서 나오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인 도·덕을 잃어버리면(失) 윤리 이성의 가치인 인·의·예가 뒤따른다(後).


도를 잃어버리면 왜 덕이 뒤따를까? 너무 고민할 필요 없는 주제 같다. 도가 덕보다 더 근원적이라는 의미다. 실(失) 자는 선(先) 자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문맥의 의미가 통한다. 선(先)이 도고 후(後)가 덕이라는 뜻이고, 이런 문장구조가 더 자연스럽다. 다른 해석으로 높은 덕인 도를 잃으면 덕을 베풀 대상을 분별하고, 베풀었다는 형상에 집착하는 낮은 덕이 뒤따른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형상과 소리가 없는 도는 자아(ego)를 거쳐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난다. 도를 잃어버리면 도의 작용 결과로 나타나는 덕을 잃는다. 덕은 ① 만물의 근원인 ‘도’에게로 되돌아가(도를 깨달아) ② 도를 깨닫고 실천할 때 얻을 수 있다.


도·덕을 잃어버리면 의식적인 인·의·예를 강조한다. 목적의식적이고 강제력이 큰 규범으로, 이유가 없는 가치에서 이유가 있는 가치 순으로 꺼내든다.


'인(仁)'

()은 선악을 구별하여 착한 사람은 사랑하고 악한 사람은 미워하는 윤리 이성이므로 의식적이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없다. 반면 노자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선하든 악하든 차별하지 않고 선하고 참되게 대한다(2장, 27장, 49장). 선한 사람은 존중하고 악한 사람은 아끼며 도와 벗어나게 한다. 사람들은 악인을 아끼며 구원해 준다는 말이 잘한 행동인지 헷갈려하고 있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묘하다는 의미의 요묘(要妙)하다고 했다(27장).


'의(義)'

()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이므로 의식적인 가치고, 조직의 안정이라는 이유가 있다. 예()는 의식적인 윤리 가치로 예의가 없는 상대에게 화를 낸다.


'예(禮)'

예는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예의범절이고, 사회규범 측면으로 확대하면 강제력을 가진 법규를 말한다. 예법은 도, 덕, 인, 의가 먹히지 않을 때 힘을 얻는다. 도·덕이 통하지 않고 거짓이 판치거나, 규범을 자율적으로 지키지 않아 어지러울 때 강제적인 예법이 필요해진다.


가정보다 궁궐 안의 예의가 더 엄하고 강하다. 가족들은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순수한 관계로 이루어졌지만 궁궐 안의 구성원들은 권력 투쟁을 하는 경쟁적 관계로 도·덕의 양심보다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므로 엄격한 규칙을 정하고 강제적으로 지키게 한다.


'()'

전식자(前識者)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전에 아는 것’이다. 어떤 일을 경험하기 전에 알게 된 인식과 이해다. 즉 지식 또는 지혜를 의미한다. 지식은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노자는 통치 등 사람과 관계되는 일은 지적인 논리보다 마음에 영향을 더 받으므로 지식이나 지혜를 쓰지 말고 진심으로 정성껏 대하라고 말한다. 지식으로 다스리면 백성과 점점 멀어지고, 지식을 덜어내고 진심으로 대할수록 백성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지식이나 지혜로 다스리는 통치는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 참됨)'

상덕이면 참된 마음으로 행한다(참됨, 信). 대장부는 정성과 참됨이 후하며 박하지 않고, 열매에 머물며 꽃에 머물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장부는 정성을 다하며 마음에 거짓이 없고, 열매인 도를 따르지 꽃인 지식을 따르지 않는다.


반면, 예절 따지는 리더는 겉보기에 바르나 진심이 부족하여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또한 지식에 집착하는 리더는 겉보기에 화려해 많이 아는 것으로 보이나 본질을 아는 게 없어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낮은 덕을 버리고 높은 덕인 도와 덕을 취한다.



제자백가

춘추전국시대 많은 학자들이 사상을 펼쳤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의 본성과 본성을 다스리는 왕의 리더십이다. 도가는 자연의 이치인 도, 유가는 윤리, 묵가는 겸애(자타를 구분하지 않고 두루 자신처럼 사랑함), 법가는 법과 제도에 의한 상벌(法), 권세(勢)와 술(術)을 이용하여 다스리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전쟁 시기에는 병가, 혼란 시기에는 법가, 평화시기에는 유가와 도가의 통치방법이 효과적이다. 싸우는 시기에는 내부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기 위해 강한 군기와 군법, 혼란 시기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법, 평화의 시기에는 윤리나 도덕 등 자율성이 효과적인 수단이다.


인간은 자기를 위해 행동하나 공익을 훼손하는 사람은 증오한다. 평화를 원하나, 싸움을 즐긴다. 돈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어떤 때는 대가 없이 준다. 인간이 이런 모습 때문에 관점에 따라 본성을 달리 규정한다.


춘추전국시대 약 550년 동안 제자백가들이 인간의 본성과 리더십 이론을 연구하고 경쟁하였다. 하은주 시대의 왕은 혈연관계를 내세워 봉건제로 국가를 통치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왕족의 혈연관계는 약화되었다. 또한 신에게서 권력을 받았다는 의미로 천자로 불리던 왕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왕의 절대 권력이 무너졌다. 반면 신흥지주세력인 제후들은 철기 사용으로 곡식 생산이 크게 증가하여 부를 축적했다. 제후들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왕권신수설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이념이 필요했다. 그 정치이념은 제후에게 지지를 받고 부국강병을 이루는데 적합한 이론이어야 했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지, 제후의 권위를 어디에서 찾을지, 어떤 제후가 백성의 지지를 폭넓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리더십 사상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제자백가들은 자유롭게 떠돌며 자기를 알아주는 제후를 찾았다. 도가, 유가, 묵가, 법가, 명가, 상가, 병가, 종횡가, 농가, 음양가, 잡가 등의 학파가 형성되었다. 제자백가의 사상을 인간 본성과 리더십 관점에서 살펴보고, 어떤 사상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현대 민주주의는 신분적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며, 권력의 주체는 리더가 아니라 국민이라고 주장한다. 평등사상과 국민 주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학파가 현대사회와 어울린다.


도가는 인간의 자율적 본성을 중시한다. 본성을 도라 하며, 도는 남을 존중하고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않는 특성이 있다. 왕은 백성의 자율적 본성을 중시하므로 무위로 다스린다. 왕의 권한이 백성에게 돌아간다. 왕은 인ㆍ의ㆍ예 등 어떤 대의명분도 내세우지 않는다. 백성이 편안한 마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 이외에 왕은 어떤 다른 목적이 없으므로 세금을 과다하게 걷을 필요도 없다. 다투지 않는 도를 중시하므로 무력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한다. 상벌 등 법과 제도보다 자율성을 중시한다.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르므로 기교가 없는 소박함과 진실된 마음을 소중히 한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므로 분권 자치에 어울린다.


유가는 인간의 사회성을 중시하며, 윤리 규범인 인()을 내세운다. 윤리 이성을 지닌 군자를 숭상한다. 윤리도덕주의자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감으로 사회적 관계에서 요구하는 윤리를 지켜야 한다. 인간이 윤리 이성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억제하고, 남에게 예를 베푼다. 또한 집단에서 요구하는 윤리를 잘 지킨다. 유가는 사회관계에 따라 각자 차별적 역할이 있다. 군신관계, 부자관계, 귀천관계, 친소관계 등을 인정한다. 차별적 신분제 하에서 각자 역할에 따른 질서를 모색하는 지배층의 철학과 잘 어울린다. 지배층은 윤리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왕권 강화를 추구한다.


묵자는 인간은 서로 이로움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박애주의자다. 인간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두루 사랑하는 겸애를 주장한다. 겸애(兼愛)는 남, 가족, 국가를 자기와 똑같이 여기는 마음이다.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이로운 것은 사랑이고, 사랑만이 시대적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남을 사랑하면 남도 나를 사랑하므로 서로에게 이롭다는 논리다. 반대로 전쟁은 서로 물자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반대한다. 차별하지 않는 사랑을 펼칠 수 있는 철인 정치를 꿈꾼다. 차별하지 않는 사랑과 평등을 주창하나 이상적인 왕에게 기대는 권위적인 통치다.


법가는 인간의 본성이란 이익을 좋아한다는 호리설(好利說)에 근거하고 있다. 국가를 상벌에 의해 다스리고 상벌은 법과 제도로 규정한다. 자본주의자, 법치주의자, 관료제주의자다. 법가는 법(), 권세 장악(), 신하를 통제하는 기술적 능력인 술()을 강조한다. 왕이 세력을 틀어쥐고 신하의 권모술수를 잘 다스리라고 한다. 왕과 관료의 관계를 대립관계로 본다. 신하는 백성을 착취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고, 왕은 그런 신하를 견제하고 공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왕에게 권세가 있고, 법과 제도를 제정하고 운영할 권리도 왕에게 있다. 왕이 입법권, 사법권과 인사권을 가진다.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중앙집권적 국가를 추구한다. 또한 왕을 돕기 위해 전문적인 능력을 소유한 행정 관료를 선임하여 통치하는 관료제를 지향한다. 이익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국강병책을 쓴다. 농사를 장려하여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강한 군대를 만든다.


제자백가의 사상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백성을 통제할수록 왕권은 강화되나 백성의 자유는 줄어든다. 단기적으로 상벌을 활용하면 왕권이 강화되고 부국강병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상벌로 백성을 통제하면 백성은 독재자라고 비판하고 자유가 없다고 불평한다. 백성들은 리더의 눈치를 보며, 자발적 동기에 의해 국가에 협력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가권력이 통제하는 정치나 경제는 장기적으로 보면 효율적이지 못하다. 또한, 군사력이 강하다고 꼭 오래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강한 군대를 운용하기 위해 운용비용이 많이 들며 전쟁비용으로 먼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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