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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21. 2024

64. 윤리 이성이 아니라 대도를 회복한다

도덕경 제18장

극히 큰 도가 무너져 인의가 있고,

지혜가 출중하여 심한 거짓이 있다.

 

가족 간에 불화로 효와 자애가 있고,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충신이 있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대도폐,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6남매인 한 가족이 있다.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부모님이 연로하여 가족회비를 걷어 생활비, 병원비 등으로 썼다. 별 불만이 없었다. 회비 내니 안 내니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다섯째 아들이 따지기 시작했다. 매달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다른 자녀가 안 내는 것을 알고 나니 억울해 불만이 생겼고, 다른 형제자매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효와 불효를 안 따질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불만이 없었고 다른 형제자매도 밉지 않았다. 다섯째가 따지기 시작하니 갑자기 회비 잘 내는 사람이 효자고 안 내는 자녀는 불효자로 보였다. 노자가 가족이 화목하지 않을 때 효가 생긴다고 한 이유다.


회비 내는지 여부로 효와 불효를 판단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이다. 회비 내는 사람이 있어 혼자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회비 안 내는 사람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수 있다. 회비 안 낸다고 없는 게 낫겠는가? 또한 부모 입장에서 회비 문제로 자녀들끼리 싸우는 게 큰 불효며, 형제자매가 화목하게 지내는 게 큰 효도다. 진짜 효도를 하려면 회비 문제로 효와 불효를 따지는 게 아니라 형제자매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다.

 

노자는 이번 장에서도 짧게 표현했다. 풀어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도는 음양이 뒤섞여 있다. 음도, 양도 아닌 투명한 상태다. 대도가 쪼개져 버렸다. 윤리 이성인 인의예지를 강조했다. 저절로 반대 성질의 불인, 불의, 무례, 어리석음도 득세했다. 사람들은 인, 의, 예, 참(지혜의 일부)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하고 불인, 불의, 무례, 거짓(어리석음의 일부)을 미워하고 냉대했다.

 

불인, 불의, 무례,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해 인의예지의 윤리 이성을 강조하고 반대 가치를 구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인의예지가 생기면 반대 성질의 것이 저절로 생기고 한 편을 강조하면 반대 성질도 같이 커지기 때문이다.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쪼개져 음양으로 갈라진 대도를 붙인다. 대도가 정상 복원되어 대립하는 음과 양이 하나로 뒤섞여 따지거나 가릴 게 없다.

 

충과 효는 예(禮)의 다른 모습이다. 화목한 가정을 효로, 건전한 사회를 예로, 부강한 국가를 충으로 이루려고 한다. 충, 효와 같은 예를 강조할 게 아니라 불화나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 우선이다. 충신이 나오려면 난세를 만나야 하고, 난세를 만나면 백성들은 생고생을 한다. 따라서 평화보다 충신을 강조하는 것은 많은 백성에게 고생하는 시대에 살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통치자는 예와 법도를 강조할 게 아니라 혼란스럽지 않고 평화를 구축하는데 힘쓴다.


노자는 현재 존재하는 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별하고 나쁜 것을 없애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가치이므로 상황, 입장과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구분하기 어렵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인과 의를 강조하여 세세하게 들여다볼수록 불인과 불의의 세력이 많아지더 잘 보인다. 더 강한 예의 법도를 만들어 강하게 처벌한다. 교도소에서 나온 범법자는 사회에서 멸시를 받아 사회에 불만을 품는다. 먹고살기 힘들어 범죄를 또 저지른다. 좋은 뜻으로 윤리 이성을 강조했는데 결과적으로 대도와 더 멀어졌다. 근원적인 가치인 대도를 회복한다.


智慧出, 有大僞를 해석할 때 출(出)을 출중하다, 뛰어나다는 의미로 번역했다. 출(出)은 나온다는 의미가 있으나 뛰어나다는 의미도 있다. 뒤에 심한 거짓(大僞)이 있어 문맥상 출중한 지혜라고 번역하는 게 더 어울린다. 용례로 청출어람(靑出於藍, 쪽에서 뽑아낸 푸른빛이 쪽보다 더 푸르다)이 있다.


잘 움직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 건강하게 살면 명의를 힘들 게 찾거나 명의가 처방한 명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

 


도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의 대처


어느 도시에 노숙자, 마약 중독자, 똥, 쓰레기, 주사기 등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교도소에 죄수들이 넘쳐 더 수용하기 힘들어 950 달러 이하의 도둑은 기소도 하지 않고 경범죄로 처벌했다. 대마초를 합법화하여 대마초 피우던 사람이 코카인이나 헤로인 등 중독성이 강한 약물에 중독되었다. 학교 학생들의 많은 수가 마약을 했다. 강력 범죄도 늘어났다. 기업들이나 상가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어 이 도시를 떠났다. 공실율이 늘어났으며 인구가 감소했다. 재정이 더 열악해졌다.

 

노자의 무위와 자율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한다.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이상적인 생각이며 아주 무력해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노자에 대해 두 가지 사항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 ① 대도에 어긋난 상황이다. 노자는 대도에 어긋난 상황에서 무위와 자율을 주장하지 않았다. ② 자율보다 더 좋은 처방이 있다는 생각이다.

 

대도에 맞지 않는 상황인 경우 빨리 끝낸다고 했다(30장, 55장). 무위나 자율을 말하는 게 아니다. 빨리 끝내는 일은 유위다. 또한 도에 맞지 않는 전쟁이 났는데 동포들 다 죽고, 다 빼앗아 갈 수 있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경우 장례 예절로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30장). 즉 노자의 무위나 자율은 도가 있는 세상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도에 어긋난 상황에서는 빨리 끝내거나 불가피하게 유위를 사용한다. 무위만 필요한 게 아니라 유위도 필요하다. 유무상생이다. 자율로는 안 되는 상황이거나 병적인 상황에서는 유위도 쓸 수 있다. 그냥 내버려 둔다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노자는 세상의 이치를 따르고 환경에 순응하는 것을 강조한다. 마약 중독자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데 무위로 다스리므로 그냥 놔두라고 한다면 계절이 바뀌면 여름이 온다고 러닝셔츠만 입고 지내는 사람과 비슷하다. 여름날 더워 러닝셔츠만 입고 지냈다. 어차피 여름은 또 오므로 겨울철에도 그냥 러닝셔츠만 입었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더 입어야 한다.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러닝셔츠만 입고 지내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 환경에 순응하는 모습도 아니다.

 

유위를 쓰지만 마약 중독자를 사람으로서 존중한다. 또한 마약 중독자를 범법자의 눈으로 보기보다 병에 걸린 환자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처벌보다 병 치료에 중점을 둔다. 병 걸린 사람은 병을 치료해야지 잡아 가둔다고 병이 낫지 않는다.

 

마약 환자가 더 늘어나지 않게 예방 교육을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의 위험성 등에 대해 교육한다. 마약 환자에게 마약을 끊을 수 있게 교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마약으로 돈 벌고 있는 자를 찾아내 처벌한다. 마약이 흘러 들어오는 루트를 차단한다. 선박, 해외 탁송, 인터넷, SNS 등을 통한 유통을 철저히 감시한다. 주변 환경을 정화한다. 길거리에 있는 똥, 쓰레기, 마약 주사기 등을 청소한다. 마약의 유통, 도둑질 등 금지사항에 대해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

 

위와 같은 대책이 너무 미지근한 처방이고 즉각적인 효과가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강력하게 처벌하여 다 빵에 잡어 넣는다고 하자. 그렇게 한다고 이런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재소자가 넘쳐나 교도소 운영하는데 돈이 많이 들며 다른 복지 예산을 줄여야 한다. 빵에서 더 안 좋은 것을 배워 나올 수 있다. 빵에서 나와도 범법자라는 멸시를 받으며 할 일도 별로 없다. 훔치고 강도짓을 하고 강력 범죄를 또 저지를 수 있다. 강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 마약 중독, 인구 감소, 도시 침체를 해결할 수 없다.

 

대도에 어긋난 상황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유위나 예방으로는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대책인지? 그것이 아니면 타율과 명령이다. 타율과 명령을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더 강하게 형벌을 내린다. 범법자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버러지로 보아 인간 취급을 안 한다. 왜 그러냐고 따지면 조인트를 깐다.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가 그런 환경에서 득세한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고 범법자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했던 사람이 실제로 통치자가 그 주장대로 실행하면 독재자가 나타났다고 비판하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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