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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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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24. 2024

67. 균형은 비어 보이고 이미 가득해 차지 않는다

도덕경 제15장

예로부터 도를 잘 행하는 사람은

미묘하고 심원한 모습이 같이 있고,

오가며 서로 통하니 깊어 알 수 없다.

 

그저 알 수 없을 뿐이기에

모습을 억지로 생각한다.

머뭇거리는구나! 겨울에 개울을 건너는 것 같고,

의심구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조심하는구나! 긴장해 편하지 않은 손님과 같고,

풀어진 모습이구나! 얼음이 막 녹아 물인 듯하다.


도탑구나! 이름 없는 옥돌과 같고,

비었구나! 후미진 골짜기와 같다.


흐리구나! 뒤섞여 탁한 물과 같고,

누가 흐릿함을 고요함으로 서서히

맑아지게 할 수 있으며,

누가 안정됨 오래 움직여 서서히

살아나게 할 수 있는가?

도인이다.

 

이러한 도를 지키는 사람은

채우고 싶어 하지를 않는다.

이미 부족함 없이 가득하니,

그저 않을 뿐

가리거나 덮을 수 있는 것이지,

채워서 새로 뭘 이루지 않는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심불가식,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焉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예언약동섭천, 유혜약외사린,

儼兮其若客, 渙兮若氷之將釋.

엄혜기약객, 환혜약빙지장석.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돈혜기약박, 광혜기약곡, 혼혜기약탁,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숙능탁이정지서청, 숙능안이구동지서생?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 不新成.

보차도자, 불욕영, 부유불영, 고능폐, 불신성.


노자는 음양의 균형은 빈 것처럼 보이며, 비움은 이미 꽉 채워진 상태이므로 가릴 수 있지만 채워 새로 이루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인은 미묘하고 깊어 알 수 없다.'

도인은 미묘하고 심원해서 헤아릴 수 없는 존재다. 겉보기에 탁 치고 나가고 결단력이 있으며 자기 확신에 찬 모습이 아니다. 편견이 없어 대립되는 상반을 모두 품고 있어 모호하고 우유부단하게 보인다. 음양이 균형을 이뤄 투명해 잘 안 보이고 초라한 모습이다. 자신을 양으로 채워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추구하지 않고, 양을 담고 음으로 포장하여 남을 자극하지 않는다.


노자는 음양의 균형 잡힌 도의 모습을 비유법을 써서 표현했다. 머뭇거리고 느린 코끼리(豫)와 의심이 많고 빠른 원숭이(猶), 조심스러운 손님(客)과 풀어지려는 얼음(氷), 도타운 옥돌(樸)과 빈 골짜기(谷)에 비유했다. 또한 도는 탁함(濁)과 맑음(淸), 안정(安)과 움직임(動)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망설임과 의심: 느린 움직임 빠른 움직임'

도인은 망설여 느리고 의심이 많아 빠르게 보인다. 예(豫)는 덩치가 크고 겁이 많은 코끼리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이다. 유(猶)는 의심이 많아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잽싼 원숭이의 모습이다. 산속에서 소리가 들리면 나무에 잽싸게 올라가 동태를 살핀 후 안심한 후에야 내려온다.

 

'조심성과 풀어짐'

곁에 있는 도인은 손님처럼 긴장해 행동을 조심하다가도 긴장이 풀린 사람처럼 느슨하다.

 

'도타움과 빈 마음'

도인은 두텁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겉보기에 소박하고 빈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옥돌처럼 소박하고,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 포용하니 외진 골짜기처럼 비어 보인다.

 

'탁함과 맑음'

도인은 다양한 사람을 분별하지 않아 흐릿하게 보이나, 속이 맑은 사람이


안정과 움직임

도인은 별 말 안 하고 조용하며 침착하게 보이기도 하고, 오래 움직여 생동감 있게 보이기도 한다.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서서히 맑아지며, 틈새로 오래 빠져나가 서서히 대지를 적시고 생명의 싹을 틔운다.

 

'가득 차 채우지 않는 가림'

초라해 보이는 음양이 잘 뒤섞여 있는 상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미 가득하다. 양으로 가득한 것만 찬 게 아니다. 음양으로 채워 잘 섞는 경우 투명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색깔의 빛이 섞여 투명해 보이는 현상과 같다. 더 채우려고 해도 이미 가득하여 채워지지 않는다. 텅 빈 채움이다.


사람들은 투명해 빈 것으로 착각하고 뭔가 채우려고 한다. 이미 가득하고 강해 가릴 수는 있지만(蔽) 채워서 새롭게 뭘 이루지 않는 사람이(不新成). 음양의 균형이 잡히면 무색, 무취, 무성, 무형이다. 도인도 투명한 무위로 행하고 무언으로 말하고 무심하다. 뭘 더 채워넣을 수 없는 경지의 사람이다. 더 채워봐야 넘쳐 주변만 더러워진다.

 

능폐불신성(能, 不新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A. 가릴 수 있지만(能蔽), 채워 새로 뭘 이루지 않는다(不新成). B. 낡아도 능히 새롭게 이루지 않는다. A로 해석했다. 폐(蔽)는 너무 넘치거나 강해서 가린다는 뜻이, 신성(新成)은 부족해 채워 넣어 뭘 새롭게 이룬다는 의미다. 22장에 낡아지면 새로워진다는 폐즉신(幣則新)이라는 말이 있다. 장의 폐(蔽)와 22장의 폐(幣)는 다른 글자다. 또한 폐를 낡다는 의미로 번역하면 낡아서 새로 만들지 않는다(不新成)낡아서 새로 만든다(新成) 모순이 발생한. 이번 장의 폐(蔽)는 낡음이 니라 가림으로 번역했다.

 

어미는 도인을 닮았다. 정이 많고 깊으며,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을 비우고 애들 키우는 소임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성을 다한다.


어미는 자식보다  배웠더라도 애들을 아끼고 크는 것만 봐도 행복해한다. 애들 배고플까, 춥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고, 애들이 밖에 나가면 차에 치일까 조마조마한다. 이렇게 조심조심하다가 풀이 죽은 애들에게 긴장이 풀린 어미의 모습을 보여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애들 힘들게 낳고 키운 것을 굳이 직접 내세우지 않는다. 흐릿하게 보이고 별 말 많이 하지 않아 조용한 줄 알았는데 사실 맑고 필요한 때는 생동감이 넘쳐 집안의 기운을 살아나게 하는 사람이다.



자식을 먹이고 기르는 어미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가 남긴 편지다. 임태주 시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 이 편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를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거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 꽃들이 무리 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 집 잔치 마당에서 일을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를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나에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망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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