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 모호함: 이분법

by 누룽지조아

진리는 대립되는 것을 모두 포괄하는 한 덩어리이므로 딱 부러지지 않고 모호하다. 모호해서 답답하지만 모호함에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모호해서 ‘~이다.’라고 확정 지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좌가 좋아, 우가 좋아?”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이다. 질문자는 이렇게 질문해 답변자를 흑백논리의 프레임에 가두려고 한다. 사실 둘 중에 하나를 꼭 선택해 답할 필요가 없다. 미리 판단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하는 것 봐서 그때그때 내가 꼭 선택해야 하는 순간 그때 하면 된다.


이분법은 온전한 것을 반으로 나누어 반절만 생각하도록 한다. 나눈 반절만이 참이 될 수는 없다. 답변자가 이런 유형의 질문에 말려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를 잃는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자기편은 줄어든다. 이런 흑백논리 질문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모호성 원리를 활용한다. “응~, 잘 모르겠는데.”, 또는 “다 좋아.”라고 대답한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상황이나 연령에 따라 변하므로 선택한 반절이 늘 맞을 수 없다.


다른 예로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 중 어느 국가와 우호친선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들 수 있다.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이다.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조건이 없는 경우 명확히 대답할 필요가 없다.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대답이 현명하다. 둘을 포용하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 미리 한 나라를 포기할 필요 없다. 평화를 유지하면서 상황과 실리에 따라 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현실에서는 꼭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때 선택해도 늦지 않다. 선택 기준은 평화다. 큰 나라 옆에 있는 국가에게 평화라는 가치가 아주 중요하다. 평화를 깨는 국가는 사실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그런 국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는다.


온전한 것을 여러 토막으로 나눈 후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이나 이상한 느낌이 드는 질문은 질문의 타당성을 먼저 생각한다. 괜히 나누는 대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답해야 한다면 질문자가 고정시킨 선택기준이 아니라 답변자의 선택기준에 따라 답한다. 내 선택 기준도 고정시킬 필요 없다. 세상은 변한다. 환경도 변한다. 내 몸도, 내 마음도 변한다. 상대도 변한다. 고정시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안개가 낀 길을 걷는 것처럼 모호하더라도 답답하거나 두렵지 않다. 이미 갔다 온 적 있는 알 만한 사람에게 물을 수 있어 답답하지 않다. 알 만한 사람이 없어도 두렵지 않다. 일단 씩씩하게 흐름대로 길을 걸어간다. 걸어가다 만난 사람에게 묻고, 틀렸다면 그때 괘도를 수정해도 늦지 않다. 계속될 것 같은 안개가 걷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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