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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18. 2019

09 : 갈증

연애 에세이 : 자유롭고 싶은 이유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09 : 갈증

연애 에세이 : 자유롭고 싶은 이유





 “너가 제일 늦게 결혼할 줄 알았는데”    

 

 친구들에게 들은 말이다.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을 만나 밥 한끼 할 때 들었다. 나를 잘 아는 여러 사람에게 그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지만, 결혼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유는 하나 같이 똑같았다. 자유로워 보여서라는 이유.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렇게 자유로워 보였나? 나의 어떤 점이 자유로워 보였을까? 그럼, 자유롭다는 게 뭐지? 타인에게 그렇게 비추어졌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진 않았다. 여태까지의 나는 끝없이 자유를 원하고 있었기에 실제의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미술 심리상담 워크숍을 받은 내담자 중 주변 사람들에게 보헤미안이라는 소리를 듣는 내담자가 있었다. 그에게 투사검사로 집을 그리라고 했더니 그는 텐트를 그렸다. 그 옆에는 음표를 그려 즐거워 보이게 했다. 집을 텐트로 그린 이유를 묻자 집이라는 정의를 내리기 어려워 그랬다고 했다. 울창한 숲속에 작은 텐트. 그의 그림에선 울적함과 외로움이 묻어났다. 그는 주변으로부터 즐거워 보이는 보헤미안으로 보여졌지만, 그의 깊은 내면은 달랐다. 안정적이지 못했고 스스로의 마음을 희화화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내면을 통해 나를 볼 수 있었다. 20대 후반까지의 나 또한 그랬다. 꽉 닫혀있는 마음이 스스로를 가두었고 표면적으로만 자유로운 행세를 하고 다녔다. 그래야 그나마 내가 만들어낸 작은 구멍 틈 사이로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는 말을 듣고 다녔던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겪은 자유로움은 ‘불안정하다’ 였다. 자유로움은 답답하기 때문에 원했던 것이고, 힘이 들어 지탱하려고 붙잡았던 것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현재 갖고 있지 못한 무엇 때문이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지금과 다른 반대의 것을 원하곤 한다. 예외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이 이기적으로 돈을 더 원하는 것은 끝없이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채워야 하기에 그렇다. 물건을 끊임없이 사들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배고픈 자가 빵을 찾듯. 나에게 자유란 그러했다. 자유롭지 못해서 자유를 원했고 발버둥을 쳐왔다. 그 발버둥이 내가 자유롭게 보이도록 하는 가면을 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불안정한 이유는 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는 온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성을 떠나 엄마라는 여성의 신체 안에서 잉태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실제의 공간이 있기 전에 인간의 최초의 공간은 자궁이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보호받는 최적의 공간. 그런 공간에서 살던 아기가 태어나면 어떨까. 아기는 자궁이란 보호막을 감싸고 태어나지 않는다. 무방비 상태로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안정을 찾는 이유가 여기서부터인 건 아니었을까. 자궁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기 위해 본능을 따라 몸부림치는.


 나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쯤에도 만난 이후로도 한동안은 자유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자유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그건 그 사람 때문이었고 그 사람 덕분이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날들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그의 온기가 내 심장으로 스며들어왔고 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을 내게 채워 주었다. 그러니 자유를 찾지 않아도 되었던것이다. 어느새 자유롭고 싶다는 의식조차 사라져 있었다. 불안함이 몰려오지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나 자신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만들어낸 땅에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틔우고, 물을 주고, 줄기를 키워 잎을 피우게 했다. 내가 나의 땅을 스스로 비옥하게 만들었다면 그는 거기에 생명이 자라나게 했다.      


 나는 이제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자유는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내면이 안정적인 사람은 자유롭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원하든 주변 환경에 흔들림이 없다. 오로지 자신만의 믿음으로 굳건히 앞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흔들림도 없이 뜻대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진정한 자유이지 않을까.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와는 달랐다.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지만 받아들이기 위해 내 스스로 만들어 낸 고정적 시선을 바꾸자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낸 허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를 만남으로써 시선의 차이가 가져오는 비극을 맞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므로 그와 연을 맺어 깨달았던 모든 것들이 다행이다. 만나는 순간순간 그는 내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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