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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21. 2019

10 : 알고 있었다.

연애 에세이 : 불안한 설레임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10 : 알고 있었다.

연애 에세이 : 불안한 설레임




얼마 전 자전거를 샀다. 그 사람이 사줬다. 자전거를 사달라는 내 말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라고 했다. 내가 살아생전 자전거를 탈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는데. 말도 안 되게 자연스럽게 자전거가 생겼다.     

 

 우리가 갔던 신혼여행지 길리섬. 길리섬에서는 자전거가 없으면 돌아다니기 힘들 지경이었다. 말 마차가 많아 말들이 길을 지나다니며 말똥을 싸놓는다. 그 말똥을 밟고 싶지 않으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제일 좋다. 매일같이 어딜 가든 말 마차를 탈 순 없으니. 나는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 예전에 가끔 타보기는 했지만, 오르막길이나 커브를 돌 때면 휘청휘청 댔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휘청휘청. 그런데 몇 일을 타다 보니 익숙해졌는지 생각외로 잘 탔다. 신기했다. 내가 자전거를 타다니!


 우리는 결혼하기 약 3개월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급하게 집을 꾸리고 싶지 않은 내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가 신혼집으로 얻은 곳은 경기도의 한적한 곳이다. 경기도이지만 서울 만만치 않게 하늘을 찌르는 집값으로 조금씩 조금씩 지역을 옮기며 알아봤다. 결국우리의 사정에 부합이 되는 집을 알게 되었고 마음에도 들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곳은 지하철을 타려면 걸어서 15분, 버스를 타려면 10분이 걸렸다. 근처에 필수적인 편의시설이 제한적인 곳이었다. 그러니 신혼집으로 이사 온 후로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 사람도 멀어진 출근길이 불편하긴 마찬가지 일테니 가끔 불편하다는 말은 했지만, 불평불만을 늘어놓진 않았다. 실은 매우 불편했다. 모든 편의시설이 2분, 3분 거리면 닿는 곳에 살았던 나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의 하루는 마치 ‘달팽이의 하루’* 같았다. 그러던 중 자전거가 생겼다. 자전거는 내 발에 날개를 달아줬다. 물론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 역시나 휘청댔고 불안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우리 동네 어디든 다닐 수 있었다. 불안해하며 다니는 동네는 상쾌했다. 알고 있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 더 잘 탈 거라는걸. 그러니까 불안해도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와의 만남의 시작도 자전거를 탄 기분이었다. 그는 성급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다. 우리는 성인치고는 꽤, 천천히 가까워졌다. 거의 주말에 한 번, 가끔 두 번씩 본 우리는 다섯 번째 만남 때쯤에 손을 잡았고, 한 달과 두 달 사이쯤 입을 맞췄다. 그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직은 받아들이기 낯설어한다는 것을. 그랬다. 그를 볼 준비가 되었다고 낯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종류는 달랐지만, 그 사람도 나도 서로 불안함을 안고 만났다. 그는 나를 놓치진 않을까 하는 불안 나는 그를 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그래도 떨리고 설레였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뒤로 무지개가 보이듯. 혼자 떠난 여행이 신선함을 주듯. 처음 서본 무대가 흥분을 안겨주듯. 알고 있었다. 그가 좋아질 거라는 걸.     


 그리고 고마웠다. 서서히 와줘서.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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