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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21. 2019

11 : 같이가

연애 에세이 : 밀당을 해야 하는 이유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11 : 같이 가   

연애 에세이 : 밀당을 해야 하는 이유       


     


 콩깍지가 씌어 지면 사람의 단점을 보지 못하고 구분하질 못해, 후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다분하다. 그를 만나기 전에 만났던 사람 중에 불같이 질주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부단히 잘해주었다. 그러나 사귀고 난 이후 나의 단점을 알게 되고 자신과 맞지 않는 단 한 번의 모습을 발견한 후로는 급속도로 마음이 식어갔다. 나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척했다. 그 남자가 어디까지 가나 궁금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결국 좋지 않게 헤어졌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의 경험으로 확실하게 느꼈다. 관계에 대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밀당 그거 왜 하는 거야? 좋아하면 그냥 사귀면 되잖아.’     


 맞다. 밀고 당기는 관계 참, 귀찮은 일이다. 일일이 생각해야 하니까. 그런데 연인관계에 대한 맥락으로 시작했기에 ‘밀당’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지, 실제로는 그런 관계는 어디서든 필요하다. 친구, 동료, 지인 심지어 가족까지. 그래서 나는 밀당이 아니라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나의 지난날, 밀당이란 단어의 숨은 뜻을 몰라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몰랐던 때가 있었다. 똑같이 생각했다. ‘그냥 재지 않고 좋아하면 안 되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라 그랬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해 줄지 고민해야 한다 생각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다 불같은 그 남자를 만난 후에야 깨달았다. 그 남자는 나를 놓칠까 미친 듯이 질주를 하는 것 같았고 한 번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뿜어내다 지쳐버렸다. 3000m를 달려야 하는 경주에서 100m 달리기처럼 뛰니 지칠 수밖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려면 몸과 호흡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장거리 달리기 시험을 보면서 느꼈다. 그래야 비슷한 리듬으로 끝까지 달려낼 수 있다.      


 연인관계. 만남을 시작한 연애 초반에는 어느 한쪽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함께 출발하는 달리기에서도 서로의 속도는 다르다. 한쪽이 먼저 빠르게 뛰어가 버리면 뒤 쳐져 버린 상대는 쫓아가기 버겁다. 쫓아가다가도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헐떡거리다 쫒지 못해 포기할지도 모른다. 먼저 가버린 뒤 돌아본 풍경은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지도.     


 우리의 달리기에서는 그 사람이 월등히 빨랐다. 그는 표현력이 거짓말같이 좋았다. 아낌없이 표현해주어 감개무량했다.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행복했다. 그럼에도 지나친 표현은 거리감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모두 만나봤지만, 이같이 표현을 잘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한 터라 적응하려니 난감했다. ‘예뻐.’ ‘좋아.’ ‘섹시해.’ ‘귀여워.’ ‘멋져.’를 수없이. 아직 관계가 단단하지 못했기에 진심인지 포장된 말인지 헷갈렸다. 나는 ‘진짜?’ ‘정말?’ 이란 물음들을 많이도 쏟아냈다. 우리의 균형이 흔들리려 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좋아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표현을 아꼈고, 쫓지 않고 더 느리게 뛰었다. 그 사람도 나도 지치지 않도록. 나의 잔상이 안 보이자 그는 뒤돌아보았고 저 멀리서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의 옆에 다시 섰을 때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는 기존보다 천천히 뛰었고, 나는 느렸던 속도를 조금 더 올려 뛰었다. 그러자 서로의 옆에서 나란히 뛸 수 있었다. 우리는 뛰다가, 풍경을 바라보다가, 잠시 쉬기도 하고, 같이 걷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예뻐.’ ‘좋아.’ ‘섹시해.’ ‘귀여워.’ ‘멋져.’ 하고 표현한다. 아낌없이. 이제는 단단해진 믿음에 그의 모든 것이 진심이란 걸 느낀다. 표현에 어려워하던 나는 익숙해졌고, 즐거워졌다. 달이 기운 밤, 작업하던 나에게 슬며시 다가온 그는 나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술을 살짝 맞췄다. 할아버지가 되어도 똑같을 거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되면 다르게 하지 않을까.’하고 말하니 그는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똑같이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나는 소녀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처음 시작하는 연인관계.
둘이 한 번에 같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농도로, 깊이로, 비율로
좋아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시작점은 같아도 서로의 속도는 다릅니다.
사귀기 시작했는데 그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 같지 않나요?
보채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나요?
너무 들이대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균형을 맞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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