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레몬 1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호 Sep 20. 2023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2)

  버스터미널에서 10여분을 걸어 도착한 속초 해수욕장에는 역시나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황량한 바닷가에 구름마저 낀 바람에 굉장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이 감돌았다. 철썩거리는 바다 위로 잿빛 구름만이 펼쳐져있었고 갈매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해수욕장 근처의 가게들은 다 문을 닫은 듯 보였다.

  도착해서 칼국수 같은 걸로 점심이라도 때우려던 나에게는 약간은 실망스러운 상황이었다. 혹시나 비 소식이 있나 싶어 휴대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해 봤더니, 비 소식은 없지만 구름 끼고 바람이 심한 날이라고 나왔다. 그래서 나 같은 관광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고, 그러니 가게들도 문을 닫은 듯했다.

  점심을 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 그냥 그대로 모래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박사박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났다. 구두가 모래사장에 푹푹 들어가서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운동화였다면 조금은 나았겠지만 약간 헐렁한 구두라 그런지 자꾸 벗겨지려 하고 구두 속으로 모래가 계속 들어갔다. 근처 쓰레기통에 손을 얹고 한 발을 들어 구두를 벗고 모래를 털어냈다. 이어서 반대쪽도 벗어서 모래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바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계속해서 모래에 발이 빠지다 보니 걷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균형을 잡을래도 재킷 때문에 움직임이 그다지 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구두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맨발로 모래사장에 서니 약간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모래가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팔을 ㄴ자 모양으로 구부려서 재킷을 벗어 걸치고, 휴대폰은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그 손으로 구두와 양말을 집어 들었다. 다시 바다를 향해 걸었다.

  바다에 다다르니 바닷바람 때문에 입 안에서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바다비린내도 코를 찔렀다. 자유를 꿈꿀 때마다 떠올렸던 에메랄드 빛 바다와는 다르게 거무칙칙하고 무서워 보이는 바다였다. 그런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해방감보다는 그저 불안감만이 몰려왔다. 그런 불안감을 떨쳐내려 바다를 향해 소리쳐보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왠지 그런 내 모습이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는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당겨 두 다리를 모았다. 바다에 오면 엄청 후련할 것 같았는데 막상 바다는 생각보다 아름답지도 않았고, 많이 추웠고, 배고팠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멍하니 바다를 쳐다보다 보니 화가 났다. 기껏 큰 맘먹고 바다를 보러 이렇게 왔는데, 바다다운 바다는 보지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 오도카니 앉아있는 것이 싫었다. 그래도 일탈이랍시고 온 건데 이렇게 싱겁게 끝내고 싶지도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고 주머니에서 휴대폰과 지갑을 꺼냈다. 주변을 쓱 둘러보니 사람이라고는 바닷가 끝 방파제 쪽에 앉아 나처럼 오도카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만 보였다. 딱히 훔쳐갈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휴대폰과 지갑을 벗어놓은 구두 안에 슬며시 넣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후웁"

  마음을 다잡고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젖은 모래 위로 발이 올라가자 조금 전과는 다르게 굉장한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바다를 향해 계속 걸었다. 파도가 내 종아리 높이에서 칠 정도로 바다에 들어갔을 때, 나도 모르게 "에이 씨!"라고 내뱉고는 그대로 성큼성큼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순식간에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고, 바닷물이 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조금만 더 전진하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위험할 것 같았다. 그대로 몸을 옆으로 돌려 해안선을 따라 조금씩 수영을 했다. 머리는 계속 물 밖에 내놓고 평형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다. 하지만 파도 때문에 입과 콧속으로 계속 바닷물이 들이쳐서 이내 헤엄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저 둥둥 떠있었다.

  고개를 돌려 해안가를 보았다. 저 멀리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뭔가 소리치면서 이쪽으로 뛰어오시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죽으려 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뭐 하는 거야! 어서 나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시는 것을 보자니 죄송스러웠다.

  "지금 나갈 거예요!"

  모래사장을 향해 바닷물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몸이 물 밖으로 서서히 나올 때마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모래사장으로 다 나오니 온몸은 쫄딱 젖어있는 상태였고 머리도 물에 젖어 미역처럼 축 늘어진 상태로 내 얼굴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곧 견딜 수 없이 추워져서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온몸을 달달 떨었다.

  "젊은 사람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 날씨에 거길 왜 들어가, 거길! 죽을라고 환장했어?"

  이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사정을 모르는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많이 놀라셨을 것이고 나름 나를 걱정해서 그런 것일 테니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마음이 답답해서 들어가 봤어요."

  온몸을 떨면서도 억지로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날씨에 그러면 순식간에 얼어 죽어.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빨리 몸 좀 녹여야 할 텐데. 차는 갖고 왔어? 숙소는?"

  "그냥 버스 타고 왔어요. 숙소는 안 잡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죽을라고 한 거 아냐? 아니 사람이 어떻게 차도 안 가져오고 숙소도 안 잡고 여기까지 와서 물에 뛰어들어 그래?"

  "그러게요. 지금이라도 택시 잡으면 잡힐까요?"

  "그 꼴을 했는데 택시가 태워주겠어?"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방파제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어기 끝에 보이는 건물 1층 돼지갈빗집이 내 가게거든. 거기 2,3층은 펜션으로 쓰고 있고. 우리 집 와서 몸 좀 녹이고 가. 이러다가 죽겠네 아주."

  평소라면 이런 호의가 부담스러워 거절했을 테지만, 그 호의를 거절하기에는 내가 너무 춥고 배고팠다. 그래서 흔쾌히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이러나저러나 휴대폰이랑 카드는 무사하니 필요하면 돈을 지불하고 잠시 쉬면 될 테니까.



  그렇게 할아버지를 따라 걸어서 도착한 돼지갈비 가게도 역시나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열쇠로 셔터 밑의 자물쇠를 풀고 셔터를 올려 가게 문을 열어주셨다. 가게 안은 어두 컴컴하고 고요하다 못해 공포영화를 찍어도 될 정도였다.

  "이쪽으로와. 어차피 사람들 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옷 벗고 여기 수건으로 닦어. 갈아입을 옷은 내가 꺼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에게서 수건을 받아 들고 머리를 털어내었다. 몸에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 옷을 억지로 힘을 줘가며 겨우 벗어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으니 약간이나마 추위가 누그러드는 듯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추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팬티는 왜 안 벗어?"

  뒤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 밖에 없는데 뭐가 부끄러워서 그래? 얼른 벗고 갈아입어! 자!"

  할아버지에게서 받아 든 옷을 옆에 놔두고는 속옷을 벗었다. 빌린 수건으로 이렇게까지 몸을 닦자니 민망하긴 했지만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었기에 얼른 물기를 닦고 받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디 시장에서 주워오신 듯한 크고 헐렁한 반팔티와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긴 카고바지였다. 입고 나서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시대에 맞지 않게 90년대에 유행했던 힙합 패션을 입은 아저씨 같았다.

  "거기 멍하니 서있지 말고 일로와. 가게에는 보일러가 없어서 몸 녹일 데가 없으니까, 여기 숯불 피우는데 와서 앉아있어. 내가 지금 불 피울라니까."

  "아니…, 그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시끄럽고 얼른 와."

  그렇게 할아버지 옆에 의자를 갖고 가 앉아서 할아버지가 불 피우시는 걸 구경했다. 보통 가게들은 밖에서 숯불을 피워서 가게 안으로 갖고 오는데, 나 때문인지 원래 그런 것 인진 모르겠지만 주방 한편에서 숯불을 피우셨다. 불이 붙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따뜻한 공기가 퍼져나갔고, 몸은 금세 말랐다. 그렇게 몸이 좀 회복되나 싶었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점심은?"

  "네?"

  "아, 점심 먹었냐고."

  "아, 아뇨."

  "왜?"

  "여기 와서 먹을라고 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가게들이 다 닫었더라구요."

  "그건 그렇지. 누가 이 시기에 바다를 보러 오겠어? 심지어 날씨도 안 좋은데."

  할아버지의 말에 약간은 머쓱해졌다.

  "그럼 불 피운 김에 고기나 궈서 나랑 밥이나 먹자고."

  할아버지의 제안이 고맙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호의를 계속해서 받기는 좀 그래서 바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럼 고기는 할아버지 몫까지 제가 살게요. 옷도 빌려주시고 쉴 곳도 빌려주셨으니까요."

  "그 고기 어차피 내가 파는 건데?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주는 대로 먹어."

  할아버지의 일갈에 잠깐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러면 제가 너무 염치가 없는데요. 뭐라도 좀 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할아버지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큰 플라스틱 통에 재워둔 고기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밥 먹는 동안 당신 얘기나 좀 해줘. 내 얘기도 들어주고. 그게 밥값이라고 생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