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레몬 1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호 Sep 23. 2023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3)

  "그래서?"

  "네?"

  "그래서 끝이냐구."

  내 얘기가 끝나자 고기를 굽던 할아버지는 손을 멈추고 물었다.

  "네…. 일단은요?"

   할아버지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고기를 굽는데 열중했다.

  "그러니까 자네는 맨날 똑같이 사는 게 지겹고 답답해서 여기까지 그냥 와봤고, 그래서 물에 뛰어들었다는 거네?"

  "요약하자면…, 그런 셈이죠."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나는 당신을 모르니까, 여기다 대고 뭐라 할 말은 없네. 나 같은 늙은이가 이것저것 아는 척하면 꼰대 같을 거 아닌가. 요새는 뭐 젊은 사람들도 꼰대가 많다니 뭐니 난리잖아. 그러니까 당신에게 설교하는 대신 한 가지만 물어볼게."

  "어떤 거요?"

  "맨날 똑같이 살면 나쁜가?"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잠깐 생각한 후 대답했다.

  "나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순 없죠. 매일 똑같이 기계처럼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그냥 숨만 쉬고 살아만 있다고 해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이 목표도 있어야 하고 하다못해 제대로 된 취미라도 있어야죠. 이렇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자꾸 물어볼게 생기네. 지금 당신 얘기를 들으니까 물어볼게 몇 개 더 생겼어."

  "말씀하시죠."

  "그래 뭐 당신은 취미가 없다고 했는데, 그럼 쉴 때는 어떻게 쉬나?"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하면서 쉬죠."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렇게 대충 대답하지 말고, 자세히 말해봐. 늙은이라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스읍~"

  숨을 크게 들이쉬고 대답했다.

  "보통 주말에는 아침 9시쯤 일어나요. 일어나서 바로 컴퓨터 앞으로 갑니다. 그래서 게임 할거 있나 찾아보고 할 만한 게임이 있으면 하루종일 그 게임을 하죠. 밥은 적당히 해 먹거나 배달시켜 먹고요. 할만한 게임이 마땅히 없으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요. 그러다 보면 하루는 생각보다 금방 가더라구요. 요새는 할만한 게임도 다 떨어져서 주로 영화만 보는 것 같아요."

  "그럼 당신은 게임하고 영화 보고 드라마 보는 게 취미가 아냐? 근데 왜 취미가 없다고 그래?"

  "그걸 취미라고 할 수 있나요. 생산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게임을 잘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요."

  할아버지는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말했다.

  "다 구워졌네. 얼른 먹어. 먹으면서 얘기하지."

  할아버지는 집게로 고기를 들어 내 앞에 놓인 그릇에 얹어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 말대로면 생산적이지 않은 취미는 취미가 아닌가? 취미 생활을 하는 목적이 뭐야. 즐거울라고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이 즐거우면 그게 취미인거지 뭐할라 취미생활에서 생산적인걸 찾아?"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막 그렇게 기다려지고 즐겁진 않아요. 게임하고 영화 보고 하는 게. 그냥 할 게 없으니까 하는 거죠."

  "그건 당신이 아직 그거보다 더 좋아하는 게 없어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럼 지금은 그게 제일 당신을 평온하게 해 주고 즐겁게 해 주는 거잖아. 그럼 그게 취미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취미라는 게 꼭 잘해야 하나? 그런 식이면 세상사람들 대부분은 취미가 없는 셈일 텐데."

  "…"

  "내 정신 좀 봐. 질문만 한댔는데 설교를 했네. 미안해. 먹다가 체하겠네."

  "아뇨, 괜찮습니다. 맞는 말씀인데요 뭐."

  "맞는 말도 기분이 맞는 때에 들어야 좋지 뭘."

  한번 입에 고기를 넣으니, 그동안 참아왔던 허기가 한 번에 밀려들었다. 머리로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으니 문명인처럼 천천히 깔끔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몸은 그와 반대로 고기건 반찬이건 있는 대로 쌈을 싸서 계속 입에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말했다.

  "쯧쯧, 점심도 안 먹었는 데다가 이 추운 날에 바다까지 들어갔다 나왔으니 그렇게 배가 고프지. 먹다가 모자라면 말해 더 줄 테니까. 사양하지 말고."

  "즈므는 끈느스쓰느끄"

  "삼키고 말해."

  정신을 집중해서 입을 움직이고 얼른 목으로 삼켰다. 목이 좀 매여서 물을 조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

  "질문은 끝나셨습니까."

  "아니, 마지막 질문 하나가 남았어."

  "어떤 질문이요?"

  또 어떤 질문이 들어올까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이 되었다.

  "당신이 아까 매일 기계처럼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는데."

  "네."

  "사는데 꼭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건가?"

  "…"

  할아버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삶에 있어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적도, 의심해 본 적도 없었다. 삶에 의미가 없다면 그저 나는 이유 없이 태어나 이유 없이 삶을 영위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때가 되어 죽어버리는 그런 삶을 사는 게 되어버리니까. 삶에 의미가 없다면 굳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다고 죽어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대답하라는 건 아냐. 그냥 궁금해서. 왜 꼭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



  잠시 후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때, 배는 좀 찼어? 좀 더 먹지 그래."

  "아뇨, 괜찮아요. 충분히 배부릅니다."

  배를 두들기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짜로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바로 그릇들을 포개어 정리했다.

  "굳이 뭘 또 치워. 그냥 놔둬."

  "아뇨, 그래도 치우는 것 정도는 해야죠. 설거지는 저기서 하면 되나요?"

  할아버지는 주방을 빤히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기신 듯했다. 그리고 곧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한번 같이 싹 치우자고. 설거지는 안 해도 돼. 어차피 자네는 불판은 못 닦을 거고 그릇들은 저기 세척기에 넣어서 할 거니까. 근데 오늘은 장사 안 하니까 세척기도 안 켤 거야. 그러니 그냥 저기 싱크대에 담가놓기만 해. 음식물은 그 옆에 통에 넣고."

  빠르게 그릇들을 들어다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싱크대에 넣었다. 둘이서 먹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설거지 거리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자리로 돌아가니 할아버지는 어느샌가 숯불을 빼서 치우러 가신 모양이었다. 옆 테이블에 놓인 휴지를 몇 장 꺼내 물을 묻혀 테이블을 닦았다. 그리곤 딱히 할 것이 없어서 옆에 놓아둔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아직까지도 휴대폰은 수면모드로 설정되어 있어서 지금까지도 딱히 알람이 울리진 않았다. 어디서 연락이 오진 않았을까 확인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최소한 이 가게를 나설 때까지만은 여전히 일탈 중인 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철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 옆 철문이 열리더니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냉장고로가 소주 한 병과 제일 아랫칸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할아버지가 꺼내온 것은 다름 아닌 육포였다. 소주와 육포를 내 앞에 내려놓고는 주방으로 가 소주잔 두 개를 꺼내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혹시, 술을 안 하거나 못하나?"

  "아뇨. 조금은 합니다."

  "그래 그럼 잘 됐구먼. 나랑 같이 조금만 더 어울려 줘."

  소주병을 들어 뚜껑을 따고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소주잔을 들고 내가 따르는 소주를 받았다. 곧이어 할아버지는 병을 뺏어 들고 내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자네 얘기는 얼추 다 들은 것 같은데. 아까 내가 그랬지, 내 얘기도 들어달라고. 이제는 내가 얘기할 차례라 소주를 좀 꺼내봤어. 당신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시면서 들어."

  "네."

  "별 얘긴 아냐. 그냥 나 살아온 얘기지."

  할아버지는 소주를 바로 한 잔 들이켜고 얘기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