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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24. 2023

돈과 경쟁에 미친 나라

  최근 모 경제 유튜브를 보는데, 제목이 "한국인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이었다. 뭐 제목만 봐도 이미 결과가 짐작되었지만, 좀 더 자세한 결과를 알고 싶어서 그 영상을 보며 출근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상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상 그 내막은 다음과 같았다.




1. 역시나 한국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가치는 '돈'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을 꼽은 것과는 대조되었다. 1순위가 '가족'이 아닌 나라는 세 나라인데, 스페인, 대만, 한국이었다. 근데 스페인은 '가족'과 '건강'이 비슷한 순위여서 그랬고, 대만은 '사회'를 제일가는 가치로 꼽았다. 한국만 '돈'을 제일가는 가치로 꼽은 것이다.


2. 해당 조사에서는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여러 개 선택 가능했음에도 한국인들은 대부분 1개의 가치만 꼽았다. 다른 것들은 그다지 가치 있지 않다고 여기는 듯하다.


3. 유교권 국가들이 오히려 물질문명 중심인 서구권 국가들보다 더 세속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나왔다. 안빈낙도나 청렴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유교사상과는 너무나도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4. 가족과 아이들의 중요성 측면에서 한국은 거의 꼴찌를 기록했다. 명절마다 가족이 모이고 그러는 나라임에도 실제로는 가족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심지어 18~29세들 중 가족이 중요하다고 말한 사람은 3%에 불과했다.


5. 배우자나 연인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 한국사람은 고작 1%에 불과했다.


6. 다른 나라들은 2순위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대부분 '직업'이었으나 한국은 '건강'이 2순위로 꼽혔다. 한국에서 직업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불과 6%에 불과했다. 한국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모두, 일을 그냥 돈 버는 수단으로만 여긴 유일한 나라다. 지난 10년 사이 청소년들이 직업을 고르는 기준이 적성, 흥미에서 돈으로 바뀌었다.


7. 일반적으로 18~29세 청년들은 친구나 공동체가 더 중요함에도, 한국은 연령과 상관없이 친구와 취미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새 속된 말로 지옥불반도, 헬조선 이런 얘기들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출산율이라던가 삶의 만족도나 행복도를 얘기하곤 한다. 물론 나도 삶을 살아가는 게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런데 막상 저런 구체적인 통계를 보니 1. 나만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었으며 2. 생각 이상으로 상태가 심각하다 는 것이 확 체감되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 사람들 마다 꽤나 많은 의견이 있곤 하다. 누구는 부동산 때문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사회적 인식의 부족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제도의 문제라고도 한다. 다들 일리는 있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누가 나에게 이런 현상들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과도한 경쟁'이 원인이라고.

  





  우리나라는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경쟁을 통해 살아남기 시작했다. 전 세계 최빈국에서 빠르게 선진국까지 성장하는 데는 아마 경쟁을 통한 생산력 향상과 기술 발전이 배경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음에도, 이러한 기조는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다.

  '돈'을 제일가는 가치로 여기는 우리네 사회 분위기도 경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제는 다들 먹고살만함에도 여전히 경쟁을 통해 남을 이겨야 하고, 남들과 본인을 비교할 때 척도로 삼기 제일 좋은 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얼마를 벌든 반드시 남보다 더 벌어야 하고, 내가 얼마를 벌든 남보다 덜 번다면 패배자라는 생각을 씻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런 성향이 꽤나 강한 편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부서에 만족할 수 없는 이유도 그렇다. 물론 일 자체가 힘든 것도 맞긴 하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나보다 더 편하게 회사를 다니면서 같은 연봉을 받는 타 부서라던가, 내가 누리지 못하는 복지를 누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경쟁심리가 불타올라 화가 나기까지 한다. 일본 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의 한 에피소드를 보면 페루의 한 아이가 말하길 '집에 불빛이 없는 건 괴롭지 않아. 하지만 내가 갖지 못한 불빛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걸 매일 보는 건 괴로워.'라고 했는데, 내가 바로 딱 그런 심정인 것이다.




  친구들에 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우리가 보통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문이다. 같은 학교를 나와서 친구가 된 경우가 흔하고, 그 외 경로로 친구가 되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같은 학교나 같은 환경의 사람들이 더 친해지기 쉬운 건 맞지만, 반대로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경쟁상대가 되어버리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다. 아무리 내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 한들, 연봉으로, 고과로, 사람들의 평판으로 비교가 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과 나의 우정은 산산이 깨어지기 마련이다.

  요즘 바닥인 출산율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표면적인 이유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고, 노후 대책이 잘 안 되고, 교육비가 많이 들고 그런 이유들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경쟁사회에서 내 아이를 잘 키우고, 나 자신도 잘 살 자신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잘 키우고 잘 사는 건 당연하게도 '남들보다 잘' 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는 건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잘'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권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분위기에 더해 때마침 등장한 SNS는 이런 현상을 급속도로 가속화시켜버렸다. 잘 사는 모습을 찍어 경쟁적으로 SNS에 올려 자랑하고, 서로 그런 SNS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모르게 모두 비교의 굴레에 들어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존감이 깎이는 그런 악순환의 연속이 생겨 버렸다. 경쟁하고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손가락 한번 움직여서 너무나도 쉽게 남들과 비교가 가능해진 것이다.


사람들의 정신을 깎아먹는 주범이라 생각한다.


  그러자 예전에 어떤 쥐 집단을 놓고 실험을 했다는 글을 본 것이 생각이 났다. 쥐들을 한 곳에 몰아 가둬놓고 계속해서 한정된 자원(먹이)만을 투입하는 실험이었다. 처음에는 자원이 풍족했기에 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쥐들의 숫자에 비해 자원은 부족해졌고, 그러다 보니 쥐들끼리 극도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경쟁에서 도태된 쥐들은 번식이 힘들어졌고, 경쟁에서 이긴 쥐들만 번식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는 경쟁에서 이긴 쥐들조차 번식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자 쥐들의 숫자는 급속도로 감소했고, 시간이 좀 지나서는 자원이 남아돌 정도로 쥐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쥐들은 여전히 번식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쥐들은 그대로 다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저 실험의 결과로 미루어 짐작건대, 생물들은 지속적으로 과도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계속 그렇게 살다 보면, 경쟁이 필요 없어진 시점이 되어서도 그 기조는 계속해서 남아 내려와 그렇게 멸망하는 길을 택하게 되는 습성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아마 그게 지금 한국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이대로 아무 조치도 없다면 미래도 같지 않을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배경이 한국이었나…


  나도 저런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서 어느 순간부터는 DINK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 분명 어릴 때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었으나, 이 사회에서 제시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의 허들이 어마무시하게 높다는 것을 체감하고부터는 그럴 자신이 많이 사라졌기도 했고, 심지어 요새는 나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을지도 불안한 시대가 되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이런 악순환의 굴레를 깨고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나 스스로부터 바뀌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의 힘으로 그게 될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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