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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27. 2023

노리플라이(No Reply)에게 응답을 받은 날

  올해 10월 22일에 GMF(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다녀왔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페스티벌에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낸 기쁨을 표현한 글이기도 했는데, 그 글의 맨 마지막에 이런 내용을 적었었다.


2023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brunch.co.kr)


그리고 그 뒤로도 나는 계속해서 노리플라이의 곡들을 찾아들었다. 그리고는 12월 1일 마침내 오랜만에 노리플라이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앨범 타이틀은 '사랑이 있었네'. 그리고는 새 앨범 발매 기념으로 단독 콘서트를 연다는 글을 보았다. 그 글을 본 나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바로 티켓팅을 해버렸다.

 


  그렇게 지난 일요일(11월 26일), 합정역 메세나폴리스 2층의 신한 pLay 공연장에 방문했다. 가는 길이 꽤나 멀긴 했지만, 오히려 멀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계속 노리플라이의 곡을 들으며 갔다. 콘서트를 재밌게 즐기려면 대부분의 노래를 다 알고 가야 재밌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합정역에 도착해서 공연장을 찾았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크지 않은 공연장임에도, 만석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포스터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고, 공식 MD인 CD나 포스터 등을 사는 사람들도 은근히 있었다. 입구 한쪽에는 사랑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노리플라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창구로 가서 티켓을 수령한 후, 바로 자리로 향했다. 좌석들이 영화관처럼 단차를 두고 배치가 되어있어서 다른 콘서트 장과는 다르게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대를 시원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처럼 혼자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중에는 머리가 이미 다 하얗게 세버린 할아버님도 계신 게 의외였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다.


운 좋게 꽤나 좋은 자리를 예매했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미 전날 공연 사진을 인스타그램으로 봤던지라, 기대했던 그 모습 그대로이긴 했다. 잔잔하면서도 애잔한 노래들로 시작을 한 것도 좋았다. 중간중간 멘트는 위트 있으면서도 길지 않았고 공연시간인 2시간을 음악으로 꽉 채우려는 생각을 가지고 나온 듯 보였다. 안타깝게도 요즘 유행하는 감기로 인해 멤버 두 명 모두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을 위해 어떻게든 잘해보려 하는 게 느껴져서 그 부분이 꽤나 감동적이었다.

  중간에 게스트로는 유다빈 밴드의 유다빈 씨가 나왔다. 이름만 들어보고 실제로 보거나 노래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머리에 리본을 두 개나 매고 예쁘게 하고 나와서 연신 공주님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노리플라이와 같이 노래를 할 때는 노리플라이를 위해서인지 본인의 목소리를 좀 작게 내고 딱 정해진 대로 부르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면 1부와 2부 사이에 본인의 노래를 할 때는 그전과는 다르게 굉장히 파워풀하면서도 강렬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플레이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2부는 대체로 신나는 노래들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잔잔한 노래로 갔다가,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인 '사랑이 있었네'를 불렀다. 멤버 권순관이 예전 언젠가 '지나온 모든 나날들에 사랑이 있었다'라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모티브로 만든 곡이라고 했다. 맨 마지막에 가서야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에 타이틀 곡을 부른 게 조금은 의외였다.

  그다음부터는 다시 신나는 곡들로 채워졌다. 정확하게 본인들 앨범의 인기곡들 순위대로 셋 리스트를 편성해 온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그렇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은 거의 다 2부 후반부에 나왔다. 관객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듯 보였다. 심지어 '끝나지 않은 노래'라는 곡의 전주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보며 더더욱 인기순으로 정한 게 맞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심지어 나도 저 노래를 엄청 좋아하니,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들썩거리면서 노래를 들었다. 그렇게 공연이 다 끝나고 앵콜곡은 다시 유다빈 씨와 듀엣곡을 하나 하고 그 뒤에 '주변인'이라는 곡을 불렀다. 아무래도 저 곡에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렇게 선곡을 한 듯 싶었다. 

  그렇게 그날의 공연은 끝났고, 다시 집까지 1시간 20여분이 걸려서 돌아와야 했지만 그래도 꽤나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돌아왔다. 


이 사진 어딘가에 제 모습이 찍혀있답니다 : )


  공연을 보는 와중에도 역시나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전에 모 만화에서 행복의 버튼이라는 걸 설명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람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버튼이 있다고. 한 버튼은 자신이 스스로 누를 수 있는 버튼이라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재밌는 놀이를 하는 식으로 자신이 원할 때마다 눌러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대신에 그 행복의 크기는 크지는 않다고 했다. 반대로 다른 한쪽 버튼은 남이 눌러주는 버튼이라고 했다. 무대에 서고 공연을 하며 그때 박수갈채 같은 걸 받았을 때 눌리는 버튼이라고 했다. 나 스스로 누를 수 없는 대신에 그 행복의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 무대에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을 올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 공연을 보다 보니 저 무대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지금 느끼는, 그리고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느끼는 행복감이 어느 정도 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많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대체로 평생이 지나도록 느껴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그 행복감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을 때의 반동이 극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연예인들의 대다수는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들에게 스스로 누를 수 있는 행복의 버튼은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까.

 


  하지만 곧이어 적어도 나는 오늘 나 스스로 행복의 버튼을 눌렀다는 생각에 꽤나 마음이 흡족해졌다. 사실 집을 나서기 직전에는 좀 귀찮기도 했거니와, 낯선 장소에 가서 낯선 사람들 틈에 껴서 공연을 본다는 것이 꽤나 꺼려지기도 했었다. 심지어 내가 노리플라이를 좋아하게 된 게 불과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더더욱. 그렇지만 막상 와보니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여러 사람들이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감동을 느낀다는 사실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꽤 운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관람하는 그 무대에는 꽤나 많은 기술들이 들어간다. 악기에 대한 기술부터 해서 악기를 연결하는 음향기기 자체도 기술 집약적이기도 하고 무대장치에도 많은 기술이 들어간다. 조명이나 커튼도 그렇고 빔프로젝터도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무대를 즐길 수 있는 건 불과 채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나도 그렇고 거기 있던 사람들도 그렇고,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나야만 볼 수 있는 공연을 보는 것이니 여기 모든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이런 걸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옛날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 태어났으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타령을 하는 걸 보는 게 다였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지금 하는 경험은 꽤나 특별한 경험이고 이러한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이야 말로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고 '내 삶을 산다'는 것은 이런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느덧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긴장이 확 풀어져서 꽤나 흐뭇한 기분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당분간은
계속 이어폰을 꽂고
지내게 될 듯싶다.



https://youtu.be/P2WjKkl7YOs?si=SKdtBq0DfgwYvb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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