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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Apr 11. 2024

빌딩숲의 카멜레온

  나는 삼국지를 꽤 많이 좋아한다. 어릴 때 친구네 집에서 3편짜리 만화 삼국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그 얘기를 하니, 어머니는 기뻐하며 나에게 16권짜리 어린이용 삼국지를 사주셨었다. 어린이용이라고 해봐야 삽화가 조금 들어가 있을 뿐, 그냥 일반 삼국지 책에 가까워서 어린이용이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정주행을 했고, 나중에는 이문열의 삼국지도 사서 몇 번이고 읽었다. 

  나의 삼국지 사랑은 책에서 그치지 않았다. 코에이사의 삼국지 2부터 시작해서 삼국지 게임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삼국지를 모티브로 만든, 혹은 재해석한 만화책들도 찾아다 읽었다. 그중에 조조를 주인공으로 하여 재해석한 삼국지 만화책이 있었는데, 바로 '창천항로'라는 만화였다.


제일교포인 이학인 씨가 글을, 대만계 화교인 킹곤타가 그림을 맡았다. 이학인 씨 사후에는 킹곤타가 글, 그림을 모두 담당했다.


  창천항로에서의 조조는 신에 가까운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로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의 잔인한 모습이나 서주 대학살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그런 부분이 등장하게 되더라도 패도를 걷는 데 있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묘사하기에 삼국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이지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비난할법한 만화다. 하지만 역사적인 내용을 빼고 본다면, 만화 속 주인공인 조조는 대단한 전략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만화 속에서의 조조는 기존의 낡은 틀을 아무렇지 않게 깨부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하늘의 자식이라는 천자(황제) 앞에서도 당당하며, 장로의 오두미도를 해체시키기도 하고, 재능이 있다면 불효자 거나 인성이 좋지 않더라도 쓰겠다고 공공연하게 공표하곤 한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작중에서 한 인물이 조조를 평할 때, 역삼각형처럼 불안정을 좋아하는 자라고 평을 한다.


만화 속에서 장로는 조조를 물과 같다고 평했다.


  사실 사람은 원래 불안정을 싫어하고 안정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에 대해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가장 납득이 되는 건 이런 식으로 뇌가 진화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옛날 인간들은 혹독한 기후와 맹수들에 노출되어 몇만 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화를 두려워하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시시 때때로 가뭄이나 홍수로 사람들이 여럿 죽어나가고, 사는 부락을 벗어나면 맹수에게 공격당해 죽어나가고, 평소에 먹지 않던 새로운 식물을 섭취하면 죽어나갔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사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 살아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뇌가 점점 그렇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대사회에 이른 지금도 사람들에게는 저런 습성들이 남아있어서,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 살아온 방식을 바꾸지 않고 관성대로 살아가게 된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 그래서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바꾸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며, 남을 바꾸려 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리라. 

 

출처 : 정신의학신문 팔호광장 작가의 의학툰



  하지만 인간의 진화 속도와는 다르게 현대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라이트형제가 첫 동력 비행기를 발명한 것이 1903년이었는데, 불과 66년 뒤인 1969년에 인류는 달에 착륙하기까지 했다. 내가 어릴 적에 휴대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시티폰이 나오고 휴대폰이 나오고, 화면이 컬러가 되었다가, 스마트폰이 발명되면서 불과 30년 만에 말도 안 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처럼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찰스다윈이 말하길 

가장 강한 자나 가장 영리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라고 했었는데, 이제 이 말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사회학에도 적용 가능한 말이 된 셈이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 취업준비생일 때, 면접에서 면접관에게 이런 점을 어필했었다.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할 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적응해 나가는 빌딩숲의 카멜레온"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멘트였다는 생각도 든다. 회사에서는 신입의 능력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배우려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커나가서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애기 카멜레온이랄까…?


  아무튼 저 때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도 사람이긴 하니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것만 하고, 먹던 것만 먹고, 가던 곳만 가려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안 먹어본 음식을 먹거나 안 가본 음식점에 가보고, 낯선 장소로 여행도 떠나보려고 한다. 때로는 이게 굉장히 스트레스로 다가오긴 하지만, 반대로 너무 하던 것만 하면 뇌에 자극이 오지 않아서인지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게만 느껴지고 그게 다시 스트레스로 돌아올 때가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적당히 밸런스를 맞춰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한 가지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 스스로 계속해서 변화하려 하는 그 자세만큼은 변하지 않도록 살려한다. 아마 그게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라 생각되기에.



이런 건 안 바뀌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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