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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물뫼봉을 넘어 혼인지로

올레2길(하), 고성에서 온평으로

by 정순동

올레2코스 중간지 기착지인 제주동마트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고성동서로를 따라간다. 올레는 산성효자로로 이어진다. 고성윗마을 갈림길, 허름한 건물 외벽이 눈길을 잡는다. 현란한 그라피티(graffiti)가 그려진 카페다. 아쉽게도 영업은 하지 않는 분위기다.

조망이 아름다운 큰물뫼봉


고성리 한가운데에 두 개의 '수산봉'이 솟아 있다. 정작 이름이 같은 수산리는 벗어난 곳이다. 이 오름에서 나온 물이 못을 이룬다 하여 물뫼, 즉 수산봉이다. 동쪽의 족은물뫼(소수산봉)과 대비되어 큰물뫼, 대수산봉이다.


대수산봉(해발고도 134.5m)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편이나 야자 매트가 깔려 걷기가 수월하다. 능선에 오르면 산불감시초소를 만난다. 초소 바로 위가 정상이다. 정상은 남서방향으로 독자봉, 북동쪽으로 성산일출봉의 봉수와 교신을 하던 '수산봉수'가 있던 자리다.

옛 수산봉수 터

대수산봉의 탐방 포인트는 '조망'이다. 사방으로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성산읍 일대와 성산일출봉, 광치기 해변이 눈앞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성산읍 일대와 성산일출봉, 광치기 해변 그리고 우도

섭지코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사)제주올레는 섭지코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수산봉수라고 소개한다.

섭지코지

영주산에서 시작하여 다랑쉬오름까지, 제주 동쪽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한라산과 제주동부 오름군

말미오름과 지미봉, 그 앞으로 오조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수산봉수 바로 밑의 산불감시초소 앞에 굼부리 능선으로 들어가는 탐방로가 있다. 능선을 따라 굼부리 둘레길이 한 바퀴 돈다. 10분이면 넉넉하다. 산불감시초소로 다시 돌아와서 올라온 길의 반대편으로 하산한다.

대수산봉에서 본 말미오름과 지미봉

하산길 역시 정상 가까이는 경사가 심하다. 북사면의 길보다 미끄럽다. 미끄러운 길이 길지는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젓한 산길이다. 산허리를 돌아내려 가는 꽤 넓고 완만한 경사의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등산도 하산도 각각 15분 정도 소요된다.


본격적으로 중산간 들판을 걷는다.


​여기서부터 중산간 들길과 산길을 걷는다. 케일, 당근, 무, 감자 밭이 이어진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케일, 당근, 무, 감자

잎이 타원형으로 두껍고 길쭉하며 오글쪼글한 케일, 잔잔한 잎을 소복이 단 당근, 감자는 흰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최근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어 수분 부족으로 생육에 비상이 걸린 월동무가 땅 위로 뿌리를 밀어 올리지만 크기가 예년만 못하다.

말 방목장 옆을 지난다. 인적이 없다. 갑자기 숲 속에서 노루가 뛰어나온다. 뒤를 돌아보면 성산일출봉과 소수산봉이 살짝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다.


중간에 가게나 음식점은 물론 민가나 화장실도 없다. 여자 혼자 걷는 것은 말리고 싶다. 한적한 중산간 들판은 들꽃 살피는 재미가 있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들개미자리, 둥근잎유홍초, 붉은메밀, 층층잔대


탐라 개국시조 삼신인과 벽랑국 세 공주의 혼인지


혼인지는 삼성혈에서 솟아난 탐라국의 시조 고·양·부(高梁夫 : 梁은 원래 良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순서도 良高夫로 적힌 문헌도 있다) 세 신인이 지금의 온평리 바닷가로 떠밀려온 나무상자 속에서 동쪽나라 벽랑국 세 공주를 만나 혼인한 곳으로 알려진 연못이다.

초여름의 혼인지(2023. 6. 6 촬영)

혼인지는 탐라국 시조의 탄생설화를 담고 있는 삼성혈(三姓穴)과 함께 고대 제주인들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는 설화가 전해지는 장소다.


설화에 따르면,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열매를 따서 먹으며 떠돌며 살던 탐라의 시조 고ㆍ양ㆍ부 3 신인이 어느 날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온 나무 상자를 발견한다. 그 안의 돌함을 열어보니 미모의 세 여인과 함께 오곡의 씨앗, 망아지·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신방굴

벽랑국의 공주인 세 여인과 삼신인이 이곳에서 합동 혼례를 올리고, 이곳 온평 일대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인구가 번성한다. 후세에 들어 섬 내의 제주, 정의, 대정 등 여러 곳으로 흩어져 사니 제주 고씨, 제주 양 씨, 제주 부 씨는 모두 그 후손이란 이야기다.


연못 옆에는 삼신인이 혼례를 올린 후 신방을 차렸던 신방굴이 있다. 이 굴은 세 갈래로 되어 있어 쓰리 룸이다.



점필재가 읊은 서사시, 제주의 노래​


혼인지 옆에 김종직의 '탁라가'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탁라(乇羅)는 탐라, 섭라, 탁라, 담라 등으로 불리던 제주의 옛 이름 중 하나다. 그러니 '탁라가(乇羅歌)'란 제주의 노래다.

탁라가

조선 세조 때 문신인 점필재 김종직은 직산(지금의 천안)의 성환에서, 제주에서 올라온 약재상 김극수를 만나 제주의 풍토와 물산에 대해 소상히 묻고 들은 내용을 서사시적으로 노래한 칠언율시 14수를 남겼다. 탁라가(乇羅歌)다. 그중 두 번째 시를 보면,

當初鼎立是神人(당초정립시신인) / 먼 옛날 신인이 세 곳에 도읍하셔
伉儷來從日出濱(항려래종일출빈) / 해 돋는 물가에서 배필을 맞으셨다네
百世婚姻只三姓(백세혼인지삼성) / 그 시절 삼성이 혼인했던 일은
遺風見說似朱陳(유풍견설사주진) / 전해 내려오는 주진의 전설과 같다네.​​

출처 : 점필재 김종직 선생 시(佔畢齋金宗直先生詩) 1편 탁라가(乇羅歌) 14수 중


조선 초기 김종직은 지방관으로 여러 곳에 나가 있으면서 그곳의 풍속과 풍물을 칠언율시에 담았는데, 탁라가도 그중 하나다. 탁라가는 제주도에 직접 가 보지도 않고 쓴 시라 더욱 흥미롭다.


수국의 명소, 혼인지​


혼인지에는 4300여 년 전 탐라를 세운 삼을나(三乙那) 배필인 삼을 나비(三乙那妃) 벽랑국(碧浪國) 삼공주(三公主)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삼공주 추원사, 전통 혼례관 등의 건물이 있고, 1971년 8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삼공주 추원사(2023. 6. 6 촬영)

혼인지는 수국 명소다. 이왕이면 수국이 만개하는 오뉴월에 탐방 일정을 잡는 것이 좋겠다. 산방 꽃차례로 핀 보라, 분홍, 연두색의 수국은 신부의 손에 들린 부케처럼 보인다.

수국이 만발한 혼인지(2023. 6. 6 촬영)

수국 꽃은 처음 필 때 연한 보라색을 띠던 것이 파란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연분홍색, 연두색 등으로 피는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색깔을 바꾼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수국을 도깨비 꽃이라 한다.

혼인지의 노을

지금은 마른 줄기에 열매가 여물어가고 있다. 해 질 녘 멋진 구름과 노을이 화려한 수국의 아름다움을 대신한다.


'별을담다'라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지난다. 혼인지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일주동로를 건넌다. 온평상하로를 따라 포구 쪽으로 내려가는데 예쁘게 꾸며 놓은 개성 있는 집이 올레꾼의 눈길을 끈다

온평환해장성

환해장성을 만나 해변을 잠시 걸으면 온평포구다. (2022. 11. 3)




운동 시간 4시간 27분(총 시간 6시간 5분)

걸은 거리 16.8km (공식 거리 15.6km)

걸음 수 28,793보

소모 열량 1,595kcal

평균 속도 3.7km/h


​​​​날씨 : 맑음

온도 : 15°C

습도 :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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