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나무와 우물, 열 지어 있는 비석, 마을 안내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통 마을의 중심지다. 온화하고 평화로운 온평리도 예외가 아니다.
정자나무. 보건지소 인근에 고목이 몇 그루 서 있고, 쉼터가 있다. 온평리에 100년 넘게 두 그루의 나무가 딱 붙어 살아온 백년해로 연리목이 있다고 안내판은 전한다. 혼인지와 연계된 전설이다. 이 마을에서 묵어가는 이들은 무병장수하고 득남한다고 한다. 요즘은 득남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나무가 이 나무인지는 확인하지는 못했다.
내통 우물. 제주에서는 비가 많이 와도 그 물을 이용할 수 없어 옛날에는 물이 귀했다. 화산섬이라 땅 밑이 대부분 돌로 이루어져 있어 투수성이 강하다. 지하로 스며든 물이 해안 근처에 이르러 흘러넘치거나 해수의 압력에 의해 지표로 솟아오른다. 이를 용천이라 한다. 용천수에 가까운 곳에 사람이 모여 살고, 자연히 마을 중심부에 우물이 있었다. 설촌 유래가 되는 것이 우물이다.
물허벅 체험장. 또 돌이 많아 물을 나르다 자칫하면 넘어진다. 그래서 주둥이가 작아 물이 흘러넘칠 염려가 없는 모양의 물허벅을 바구니에 담아 등에 지고 날랐다. 내통 우물에 물허벅를 비치하여 소개하고 있다.
온평포구. 혼인지 마을종합센터 앞의 온평포구는 올레3코스의 시작점이다. 혼인지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1km 떨어진 곳이다. 걸어서 15분쯤 걸린다.
도대. 첨성대 모양의 '도대'를 만난다. 고기잡이배의 바닷길을 인도하는 불을 밝히는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전통 등대다. 왜 도대라 하는가. '도'는 제주말로 입구란다. '대'는 돌을 쌓아 놓은 시설물이고. 해 질 무렵 고기잡이 나가는 어부들이 생선기름을 이용하여 불을 밝혀 위치를 가리켰던 중요한 해양문화 유적이다.
도대(좌), 온평리 포구(우)
중산간으로 들어간다.
온평리 포구 앞 삼거리에서 올레3A길과 올레3B길이 나누어진다. 우리는 올레3A길을 선택한다. 중산간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다. 마을을 들어서니 채소 경작지와 밀감 밭이 이어진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침 도는 방향으로 감자밭, 무밭, 콜라비밭, 밀감밭
중산간에서는 경작지의 농작물이 볼거리다.
밀감밭은 성산을 넘어 남부로 가면서 많아지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밀감밭보다 채소밭이 많아지는데 무, 감자, 콜라비, 케일이 많다. 감자밭에 스프링 클러가 돌아가면 물을 뿌리고 있다. 월동 무가 미끈하게 뿌리를 드러낸다. 노지 밀감밭에는 밀감이 유난히도 많이 달려 있다. 친환경 영농조합을 만들어 주민들이 공동경영한다.
중산간 마을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들꽃이다.
산국. 한국, 일본, 중국, 시베리아가 원산지인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수많은 종류의 국화 중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꼭 맞는 산국은 가을국화, 들국화로 더 알려져 있다. 꽃말 또한 서정적인 '순수한 사랑'이다. 노란 꽃이 가지 끝에 빽빽하게 달려 강한 향기를 내 품는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산국, 소국, 사철나무, 광대나물
소국. 원산지가 중국인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꽃말은 '밝은 마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등이다. 하나의 꽃대에 꽃송이가 작은 여러 개의 꽃을 피우고 있고 빨간색 흰색 등의 다양한 색깔의 꽃이 피어 있다. 꽃잎을 따서 담근 국화주는 그 향이 매우 그윽하다.
사철나무 열매. 꽃말이 '불변, 변함없는'인 사철나무는 이름처럼, 또 꽃말처럼 사철 푸른 '상록 활엽 관목'이다. 꽃은 졌지만 불그스럼한 둥근 열매가 마치 꽃인 양 아름답게 달려 있다.
광대나물. 밀감나무 밑에 핀 붉은색의 작은 꽃송이가 모여서 노랗게 익은 밀감과 조하를 이룬다. 광대나물은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꿀풀과의 두해살이풀로 꽃말은 '봄맞이'다.
천년역사의 난산리, 난미 밭담길
난산리로 들어간다. 길가에 콩깍지를 바람에 날리고 있는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올레는 왜 걷느냐'라고 묻는다. 우리는 대답을 못하고 당황한다. 돈이 나오는 것도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땀 흘리며 걷는 모습이 측은하게 보였던가 보다.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르는 허튼층쌓기한 돌담이 정겨운 골목이다. 남새밭에 장닭이 하릴없이 어정버정 돌아다닌다. 주인은 보이지 않는 빈 집을 강아지가 지키고 있다. 옛 고향 마을이 생각나는 고즈넉한 농촌 풍경이다.
서당 터. 난산리는 해발 50m의 중산간 마을이다.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림촌이었던 난산리는 들머리에 그윽한 문화의 항기를 느끼게 하는 서당 터가 있다.
마을 중심의 서당 터는 아직도 옛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팽나무에 울긋불긋한 금줄이 처져있다. 새끼줄이 아니라 아쉽지만.
올레3A코스는 중산간으로 들어서면 몇 군데 카페와 게스트 하우스는 보이지만 식당이 없다. 김영갑 갤러리까지 가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이곳에 셀프 쉼터가 있다. '요망진(야무진) 서당 터'라는 쓰인 건물이 무인 휴게소다. 컵라면 정도의 요기는 할 수 있다.
난미 밭담길. 난산리는 지형이 난초 모양이라 '난야리'라 불리다가 후에 '난미', '난뫼'로 불렸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난산'이 되었다. 시인 이승익은 '성산십경' 중 4경으로 '난산귤림'을 꼽았듯이 돌담 위로 드러난 황금색 감귤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담한 난초 동산인 난산리에 정겨운 '난미 밭담길'이 조성되어 있다. FAO 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 밭담이다. 약 2.8km로 느릿느릿 걸으면 50분 정도 걸린다.
억새와 띠가 어우러진 통오름
올레3A코스는 중산간동로를 건너, 마주 보고 있는 통오름과 독자봉을 연이어 지나간다.
통오름. 오름의 모양이 움푹 팬 소 여물통을 닮아서 통오름(해발 143.1m)이다. 오름 전 사면이 완만하게 오르내리며 나지막한 둥근 5개의 봉우리가 굼부리를 둘러싸고 있다. 깊게 팬 굼부리가 대체로 원형을 이루고 있으나 서쪽은 좁은 골짜기라 말굽형 분화구다.
올레는 북쪽 출입구에서 들어간다. 묘소 몇 기가 탐방객을 맞이하듯 오름 입구를 지키고 있다. 묘소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굼부리가 열린 서쪽 출입구고, 우리는 왼쪽 길을 따라 능선을 오른다.
통오름 굼부리 능선 억새 군락과 멀리 보이는 성산 기상레이더 관측소
억새 군락. 굼부리 능선은 입구부터 억새 군락이다. 황금빛 억새풀이 바람에 일렁인다. 멀리 신산포구 앞의 성산 기상레이더 관측소가 보인다. 능선 오른쪽의 굼부리 안쪽 화구벽을 따라 벚꽃나무가 무리 지어 자란다. 봄철이면 굼부리를 둥글게 돌며 벚꽃이 만발한다.
늦가을이라 들꽃들이 결실기를 맞아 꽃의 아름다움이 한창때만 못하지만 온통 보라색 꽃밭이다. 잔대, 산박하, 산부추, 갯쑥부쟁이, 꽃향유 등이 자생한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잔대, 산박하, 억새풀, 산부추
잔대. 종 모양의 옅은 보라색의 꽃이 가지 끝에 달려 있다. 원산지가 한국, 일본, 중국인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말은 '은혜'다.
산박하. 깻잎나물, 깻잎오리방풀이라고도 불리는 산박하는 파란빛을 띤 자줏빛의 꽃이 줄기 위에 달린다. 꽃말은 '동정심, 배려, 연민' 등이며 한국, 중국, 일본이 원산지인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억새풀. 줄기 끝에 흰색 꽃이 모여 피어 있다. 노란빛을 띤 작은 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원산지는 한국, 중국, 일본이며 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말은 '친절'이다.
산부추. 홍자색 꽃이 꽃대 끝에 방사형으로 동그랗게 피어 있다. 별명이 맹산부추, 왕정구지며 한국이 원산지인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말은 '신선, 수줍은 당신'이다.
억새풀 군락을 지나면 띠 군락이 산불감시초소까지 이어진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역광으로 비쳐 바람에 흔들리는 풍광이 장관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빛 띠 물결
우리는 남쪽 들머리로 내려간다. 나무 계단 좌우에는 참나무가 많다. 산책하는 부부가 도토리를 줍고 있다.
외로운 오름, 독자봉
중산간동로 신산교차로를 건너면 독자봉이다. 독자봉 (159.3m)은 통오름보다 높고 산세 또한 당차게 우뚝 솟아 있다. 그 모습이 외롭게 보여 독자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에 외아들을 둔 집이 많은 것이 이 오름의 영향이라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도 있다. 독자봉도 말굽형 굼부리 형세를 하고 있는데 통오름과는 반대 방향인 동남쪽으로 열려 있다.
들머리에 주민 체육시설과 주차장,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다. 통오름과는 여러모로 규모가 다르다, 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은 통나무 계단이다.
전망대. 중간쯤에 통신 중계탑이 있고 조금 더 오르면 전망대다. 제주 동부의 오름이 펼쳐진다. 북쪽으로 바로 앞의 통오름부터 모구악, 백약이, 다랑쉬오름, 동쪽으로 가면서 말미오름, 지미봉, 대수산봉, 성산일출봉, 섭지코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봉수대 터. 굼부리를 왼쪽으로 두고 난 평탄한 소나무 숲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독자봉수 터를 만난다. 조선시대 북동쪽의 수산봉수, 서쪽의 남산봉수와 교신하던 곳이다.
삼각점. 지금은 봉긋 솟은 제법 넓은 초지에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다. 옛날 지방 호족의 무덤이 아닌가 하고 살펴보니 꼭대기에 안내판이 서 있다. 삼각점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리 좌표를 표시한 측정 기준이다.
봉수대 터를 지나면 내리막길이다. 남쪽 들머리 못 미쳐서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의 독자봉 둘레길을 계속 가면 굼부리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삼나무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우리는 오른 편으로 난 올레길을 종종걸음으로 독자봉을 벗어난다. 김영갑 갤러리에서 관람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산림욕을 포기한다.
김영갑 갤러리 가는 길
억새풀과 광대나물. 억새풀이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억새 군락을 지나니 밭을 가득 채운 광대나물이 들판을 보랏빛으로 물 들인다.
콜라비. 또 뿌리와 잎 사이가 보라색 빛이 도는 콜라비 재배 농장도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콜라비는 양배추와 순무의 교배종이다. 이름은 독일어로 양배추를 뜻하는 콜(Kohl)과 순무를 뜻하는 라비(Rübe/Rabi )를 더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뿌리와 잎 사이의 굵어진 줄기 부분을 샐러드 재료로, 잎사귀는 쌈이나 녹즙용으로 사용한다.
키위. 삼달리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나타난다. 기업형 농가다. 성산지역 키위 특화단지로 조성 시설이다. 이 비닐하우스 한 동의 사업비가 일억 구천만 원이라 한다. 제스프리와 생산 계약을 한 농장도 보인다.
비닐하우스와 채소밭을 지나 삼달로를 만난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보이고, 음식점과 카페가 나타난다. (2022.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