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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열고 걷는 길, 큰엉 경승지와 동백마을

올레5코스(상), 남원에서 위미까지

by 정순동


올레5길은 남원포구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운 큰엉 경승지 해안산책로, 동백 울타리가 멋스러운 위미마을을 지나 쇠소깍에 이르는 총 거리 13.4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의 바당올레와 마을올레다.


남원 용암해수풀장 앞, 올레 공식 안내센터에서 걷기 시작한다. 남원은 남쪽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올레는 서쪽을 향해 해안을 이어간다. 바람이 많이 분다. 파도도 거세다. 수평선 위의 구름이 거친 파도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남원포구



남원포구의 설개왓 풍경​

9년 전 서울서 내려와 정착했다는 피데기 가게 주인 부부는 오징어를 말리면서 동네 설명을 한다. 오늘 내내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세 섬을 바라보며 걸을 거라며 말을 잇는다. 수평선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지귀도는 통일교 소유였단다.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옛 일화 연수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란히 솟아 있는 두 섬이 섶섬과 범섬이다. 벌포연대에서 볼 땐 겹쳐있던 섶섬과 범선이 이젠 따로 보이고, 두 섬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란다.

피데기 두 마리를 샀다. 제주 수산시장에서 냉동 오징어를 사서 말린단다. 지나는 사람들의 사진 찍는 명소다. 산지는 아니지만 오징어 말리는 광경이 해변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설왓개(광지동 일대의 바닷가 옛 지명) 해변 도로의 방조제에 '남원읍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새겨 놓았다. 사진에 나의 흔적을 남기면서 하나하나 읽어 본다.


'앉아 있는 신사보다 서 있는 농부가 훌륭하다. 프랭클린 글, 김진수 씀'


'인생의 행로. 우리는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야만 할까. 끝없는 인생의 행로, 흙으로 가겠지. 남원 땅에서 오손도손 살고 싶어라. 이범희 씀'

'너에게 묻는다. 글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글, 황천수 씀'


법정 스님의 글, 한용운 스님의 '복종',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ㆍㆍㆍㆍㆍ글은 계속된다.



큰엉 산책로, 오감을 열고 걷는 길​


이국적 펜션 가를 지나니 큰엉 안내판이 나온다. 제주올레는 큰엉 산책로를 '우리나라에서 오감을 열고 걸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해안 길'로 소개한다.


난대식물의 보고.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다양한 난대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팔손이나무, 돈나무, 보리장나무, 굴거리나무, 까마귀쪽나무, 아왜나무, 우묵사스레피, 송악, 비짜루, 인동덩굴, 고사리ㆍ ㆍㆍㆍ밀림을 방불케 한다.


난대 식물의 울창한 숲 때문에 끊기고 오랜 세월 사람이 다니지 않아 묻히고 사라졌던 길을 해병대 93대대의 도움으로 바당올레길 세 곳을 복원했다.

큰엉. 여기서 서쪽으로 해안절벽을 따라 펼쳐진 2.2km의 산책길에 높이 10 ~ 20m에 이르는 기암절벽이 성을 두르듯 서있다. 큰엉은 큰 바위 언덕에 뚫린 동굴이 바다를 집어삼킬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난대식물 터널을 걷다 보면 숲 사이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절벽 쪽으로 소로가 나있다. 멀리 큰엉 위에서 신랑 신부가 웨딩 사진을 찍고 있다.


호두암과 유두암. 큰엉에는 수많은 기암괴석이 있다. 사나운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사냥하는 모습을 한 호두암,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봉긋하게 솟은 유두암도 탐방객의 볼거리로 소개되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입을 크게 벌린 호두암과 봉긋 솟은 유두암


인디언 추장 얼굴 바위. 코자크 지올코브스키와 그의 후손들에 의해 제작된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성난말(타슈카 위트코)의 조각상을 닮은 바위가 탐방객의 시선을 끈다. 오랜 세월 바다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기암괴석이다.

'성난말'의 조각상을 닮은 '인디언 추장 바위'가 마다를 바라보고 있고, 아래쪽으로 큰 바위 동굴이 보인다.

노오란 산국, 누르스름하게 말라가는 억새, 상록수의 푸르름, 짙푸른 바다, 다소 옅은 푸른색 하늘의 멋진 어울림을 사진에 담았다.

공룡 조형물이 보인다. 산책로 오른쪽에 공룡 테마파크가 있다. 바닷가의 기암괴석과 아열대 식물이 어우러져 쥐라기공원 같다.


한반도. 산책로를 둘러싼 난대식물 터널 끝에 숲 사이로 한반도 지도를 걸어놓은 듯한 형상을 볼 수 있다. 탐방객 사이에 입소문이 나자 아예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해국. 한반도 숲을 빠져나오니, 연 자주색 해국이 바위틈에 피어있다. 바닷가의 매서운 바람에 맞서며 척박한 돌 틈에서 여름부터 겨울까지 꽃을 피운다. 인고의 세월 뒤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진 해국에 얽힌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어느 바닷가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둘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된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간 남편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딸과 함께 갯바위 위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높은 파도에 휩쓸려 그만 목숨을 잃는다. 날씨가 나빠 다른 섬에 피항해 있던 남편이 얼마 후 돌아왔는데, 아내와 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듬해 늦가을. 절벽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남편은 한 떨기 연 자주색 꽃을 발견한다. 바위틈을 비집고 나와 웃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보여 이 꽃을 해국이라 부르게 된다. ​​


​대나무 숲을 지나고, 산국 사이를 걷는다. 결실기를 맞은 산국이 노란 꽃과 함께 노란 열매를 달고 있다. 비짜루가 몽실몽실 모여있다. 뜨리바다 펜션을 지나면서 한 달 살이 방세를 문의한다.


단물이 나와 물이 싱겁다는 '신그물'. 지금은 거의 말랐다. 태웃개는 용천수 담수탕이다. 주민들이 노천욕을 즐긴다. 제주수산연구원부터 위미항까지 2.7km는 휠체어 구간이다.

태웃개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


마을로 들어서니 예외 없이 밀감 밭과 비닐하우스가 먼저 나타난다. 위미는 밀감 특산지, 동백 군락지, 위미항으로 알려진 곳이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제주도 기념물 제39호)는 한 할머니의 땀과 얼이 서린 곳이다. 17세에 시집온 현맹춘(1858 ~ 1933) 할머니는 황무지에 불어오는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나무 씨앗을 한섬 따다 심어 울창한 숲을 일구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사철 푸른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곳으로 키가 훌쩍 큰 동백나무가 울타리처럼 마을을 두르고 있는 풍경이 남쪽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동백나무 군락과 농원의 애기동백

방풍림으로 울타리에 심겨진 겹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고, 농원의 애기동백은 피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산국, 해국, 바이덴스, 갯쑥부쟁이가 활짝 피어 있어 떨어진 붉은 동백 꽃잎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세천포구로 내려오니 '방울풍뎅이하우스', '위미애머물다'와 같은 예쁜 이름을 가진 펜션, 음식점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2018 제주도 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위미 다가구 주택 '리와장'과 넝쿨째 돌담을 넘는 호박도 단아한 정취를 자아내는데 한몫을 한다.


위미항. 리와장 근처 위미2리 포구 해안 길 입구에서 기존 제주올레 코스를 우회하는데 우리는 기존 해변길을 선택하여 위미항으로 들어간다. 위미항은 연근해 어업의 근거지로 풍부한 수산자원을 갖고 있는 국가어항이다. 양쪽 등대 사이로 멀리 섶섬과 문섬이 보인다. 그 왼쪽으로 방파제에 가렸지만 지귀도도 보인다.

위미항


조배머들코지. 동쪽 방파제 입구에 돌 동산이 있다. 위미마을을 대표하는 명소다. 조배머들코지란 구실잣밤나무와 돌 동산(머들)이 있는 코지를 이른다.


구실잣밤나무나 메밀잣밤나무를 제주어로 '자밤낭'또는 '조밤낭'이라고 하는데 자배, 조배는 그 열매를 말한다. 구실잣밤나무들이 많았던가 보다. 근처 중산간에 솟아 있는 자배봉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닌가 추측해 본다.

조배머들코지

원래 이곳에는 70척이 넘는 높이의 기암괴석이 석벽을 이루고 있었다 한다. 그 지형지세가 비룡전에 용이 앉아 바닷가의 여의주를 바라보는 형상이란다. 어떤 이는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문필봉형'이라고도 한다. '팜파스그라스'의 꽃이 모필을 연상케 한다.


위미항 조배머들코지에는 횟집들이 모여 있다. 5코스의 절반쯤에 위치한 곳이라 점심으로 신선한 회와 해물탕 등을 맛볼 수 있다.


또 선창가에 '위미 어부 영어조합'에서 운영하는 활어 어판장이 있다.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영업을 하며 포장 판매만 한다. 우리의 숙소가 위미에 있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이곳에서 방어회를 사갈까 한다.


올레는 위미마을 중심지인 일주동로로 올라간다. 올레5길(하)에서 이야기를 이어 간다.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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