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순동 Apr 08. 2023

하논 분화구, 생태계 타임캡슐


하논분화구. 올레7-1코스가 지나가는 곳이다. 올레는 봉림사 입구에서 분화구로 들어왔다가 하논분화구방문자센터로 나간다. 오늘은 세계조가비박물관 쪽 하논마을 입구로 들어간다.

분화구 안의 하논마을

분화구가 넓어 전혀 분화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원래 하논분화구 안은 호수였다고 하는데 마을을 먼저 만난다. 500여 년 전 어느 지관이 '화구벽이 낮은 동남쪽을 허물어 물꼬를 터라'하여, 이 말을 따라 수로를 내어 물을 천지연폭포로 흘려보내고 생긴 습지에서 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논이 있는 지역으로 지금도 논농사를 짓고 있다.

가장자리 높은 지대가 1차 화산재 분출로 형성된 응회암 화구륜이다.

약 5만 년 전 제주도 일대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하논에는 강력한 수성화산이 폭발하였다. 초기에는 마그마가 지하수와 접촉하면서 강렬한 1차 화산재 분출로 응회암 화구륜이 형성된다. 지하수가 완전히 없어진 후 용암이 분출하여 분화구 안에 서너 개의 분석구가 만들어진다. 그중 하나가 보름이오름(알오름)이다. 그 후 저지대에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마르(Maar) 형 화구호수가 만들어져 물이 출렁이게 된다. 남동쪽 화구벽을 허물기 전까지는 분화구 안의 호수에 섬(보름이 오름)이 떠 있었다고 한다.

밭일을 하고 있는 할머니는 자신이 사는 마을이 분화구 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보름이오름을 찾는다. 그 위에 오르면 하논분화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께 묻는다.


"할머니 보름이오름이 어디에 있습니까?"


할머니는 보름이오름을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동네가 분화구 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화구는 저기 안쪽입니다." 하면서 하논마르 쪽을 가리킨다.


"(하논마을에는) 열대여섯 가구, 100여 명이 벼농사를 하며 살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해방 후 난리 통(4.3)에 사라졌지요. 여기는 1960년대 들면서 새로 생긴 마을입니다. 대부분 감귤 농사를 합니다. 요즈음에는 외지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몇 집 안 됩니다. (보름이)오름이 저기 앞의 동산을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관광지가 되나. 사유지라 오르는 길은 울타리로 막혀 있을 텐데. 저기 양계장에 가서 물어보세요."

보름이 앞 양계장

할머니가 이야기한 양계장에 왔지만, 문이 닫혀있다. 주인이 없다. 격자형으로 파진 수로가 논을 바둑판처럼 갈라놓았다. 한라산이 하논을 내려다보고 있다.

수로가 격자형으로 파져 있다.

다시 분화구 이야기로 돌아간다. 새로 생성된 분화구는 빙하기를 거치면서 그 호수 바닥에는 지구 생태계의 변천 과정에 관한 귀중한 정보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마르 퇴적층이 매년 한 층씩 1천 년에 걸쳐 30 ~ 40cm가 쌓여왔다. 과거 5만 년 동안의 기후나 지질. 식생 등 환경정보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어 생태계 타임캡슐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논분화구는 면적이 1,266, 825㎡(바닥면적 216,000㎡)이고, 높이는 표고 143.4m(비고 90m), 분화구 둘레는 3,774m, 분화구 직경은 1,000 ~ 1,150m (정상부)로 백록담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하논마르는 지표보다 낮다.

제주도는 한반도,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의 기후 특징이 계절에 따라 뚜렷이 나타나는 곳이다. 마르 퇴적층에 축적된 고기후와 고생물 등의 지구 생태계 변천 과정에 관한 정보는 동아시아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멀리 숲이 있는 높은 곳이 동쪽 화구벽이다.

하논분화구는 서귀포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접근성이 뛰어난 지리적 여건과 빼어난 경관은 각종 난개발을 불러오게 된다. 2002년에는 분화구에 야구장 건설이라는 기가 막힌 계획을 세웠다가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취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일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2006년부터 2만 년 전의 꽃가루가 발견되어 생태계 타임캡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탄 습지를 복원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게 된다. ​

안내판은 하논분화구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한반도 유일의 Maar형 분화구와 퇴적층
2. 한반도 최대의 분화구
3. 희귀하고 아름다운 화구호
4. 기후변화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
분화구 안의 숲길

보름이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보지만 올라가는 길도, 물어볼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다. 화구벽을 돌아볼까 하고 백년초 박물관 쪽의 출입구로 난 길을 따라가다 외딴집을 만난다. 일산에 살다가 은퇴하고 이곳으로 왔다는 집주인은 들어와서 집 구경을 하란다.

염소 몇 마리가 우리 안에 있다가 주인을 보고 달려든다. 닭 몇 마리가 노지에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안으로 동백나무 묘목장이 보이고, 옆으로 벌통도 보인다. 집주인은 보름이는 사유지라 출입하지 못한다며 화구벽 둘레길을 안내한다. 봉림사 가는 길이다. 일주동로 가까이에 하논오름의 정상이 있다며, 분화구 전체를 조망하기는 안내소 전망대가 낫다고 일러준다.

보름이오름
분화구 가장자리는 대부분 밀감밭이다.

분화구 서쪽 들머리에 봉림사가 있다. 1929년에 용주사로 세워진 절이다. 4.3 때 토벌대는 용주사와 하논마을에 불을 질렀다. 용주사가 전소되고 수행자들이 수난을 당하는 법난이 있었다. 이후 중창 불사하여 봉림사로 개명했다.

봉림사

4.3으로 잃어버린 하논마을 옛 터에는 주민들의 삶의 흔적인 올레와 대나무 숲, 팽나무 등과 서귀포 지역 천주교 선교의 산실이었던 하논 성당 옛 터가 남아 있다. 2012년 제주도가 마을의 비극을 전하고 다시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세운 표석이 잃어버린 마을을 지키고 있다.

4.3으로 잃어버린 하논마을 옛터

또 서귀포지역 최초의 성당인 하논성당 옛 터에는 '화해의 탑'이 세워져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이란 명칭이 눈길을 끈다.

하논성담 옛터

신축민란(辛丑民亂)은 대한제국 봉세관(捧稅官)의 조세 수탈과 프랑스 선교사를 앞세운 천주교회의 폐단에 맞선 민중 항쟁이다. 천주교 측에서는 천주교도가 처형됐다는 사실에 주목해 신축교난(辛丑敎難)으로 해석해 왔다는 점에서 '신축항쟁'이란 봉기명이 새롭게 느껴진다.


하논은 제주말로 '논이 많다'는 뜻이다. 분화구 바닥에서 1일 수천ℓ의 용천수가 분출되어, 이곳은 500여 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논분화구 방문자 센터에서 본 하논습지 논

현재 이곳은 60만㎡의 땅이 개인 소유로 주택 여러 채와 창고, 비닐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다. 호수가 있었던 습지에는 논농사를, 분화구 가장자리에는 감귤농사를 하고 있다.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과 수로 옆 길섶에는 들풀들이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등대풀, 살갈퀴, 소리쟁이, 자주괴불주머니, 산괴불주머니 ㆍㆍㆍ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등대풀, 소리쟁이, 산괴불주머니, 살갈퀴

북쪽 화구벽으로 올라서면 일주동로 도로변에 하논분화구 방문자 센터가 있다.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도움말을 들을 수 있다. 서귀포여자중학교를 거쳐 걸매생태공원으로 간다. (2023. 3.31)



매거진의 이전글 그 위용을 드러낸 '엉또폭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