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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Apr 26. 2023

가파도 유감


지난번 가파도 올레 탐방기를 쓰면서 시기를 놓쳐 수확기의 황금 들판을 걷고 갔다. 못내 아쉬워하며 벼르고 벼르다가 청보리철에 맞추어 가파도를 다시 찾는다.

보리밭 너머 한라산, 송악산, 산방산, 단산, 모슬봉이 보인다.

가파도는 우리나라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섬이다. 바다 바람을 막아줄 산도 나무도 없다. 바람이 잔잔한 날은 따뜻하고 평온하지만, 바람이 조금만 어도 내륙과는 달리 섬 전체가 염분기를 실은 바닷바람에 휩싸인다.

보리밭은 가파도 전체 면적의 약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거친 환경으로 작물이 자라기 힘들다. 하지만 보리는 씨만 뿌려 놓으면 착박한 환경에도 잘 이겨낸다. 보리는 겨울 작물로, 여름 작물 고구마와 함께 옛날부터 가파 도민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 보리밭은 가파도 전체 면적의 약 60~70%를 차지하고 있다.

풋풋한 내음은 맡으며 보리밭 사잇길을 걷는다.

4월이 되면 푸른 청보리밭의 풋풋한 내음은 수많은 사람을 가파도로 끌어들인다.


보리는 추운 겨울을 지나 영그는 구황작물이기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보릿고개가 생각나게 하기에 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는 아름다움을 넘어 옛 향수를 불러온다.


청보리밭에서 싱그러운 냄새가 바다 바람에 실려 와서 후각을 자극한다.

청보리가 바람에 일렁인다.

상동 뱃머리의 상가를 지나 한적한 돌담길을 들어선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과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로 분주하던 마을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는다. 돌담을 덮은 담쟁이덩굴이 운치를 더한다.

돌담을 덮은 담쟁이덩굴이 운치를 더한다.

허튼층쌓기한 돌담이 제주 특유의 멋을 드러낸다. 담장의 돌은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가로 세로줄눈도 맞지 않다. 자연을 그슬리지 않는 돌담. 골목골목 이어지는 마을 길. 그래서 제주 돌담길은 언제나 정겹다.

자연을 그슬리지 않는 돌담길

가파도는 들꽃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한 섬이다. 갯강활, 갯까치수염이 바닷가를 지키고 갯무가 밭 어귀에 무리 지어 자란다. 괭이밥이 바위 틈새로 방긋 얼굴을 내민다. 밭담 사이에 산괴불주머니가 괴불을 단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으스댄다. 산야완두는 말 목 갈기처럼 생긴 홍자색 꽃을 한쪽으로 치우쳐 달고 있다.

갯무, 괭이밥, 갈퀴나물, 산괴불주머니(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몇 차례 가파도를 방문하였는데 고인돌 군락을 확인하지 못했다. 밭 일하는 주민께 고인돌 군락의 위치를 묻는다. 가파 성결교회를 중심으로 앞뒤 좌우의 밭에 있는 돌무더기가 고인돌이라고 한다.

교회 뒤편 들에 있는 추정 고인돌

"그런데 왜 안내판도 제대로 세워 놓지 않았나요."


"고인돌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부족한 면도 있고 ㆍㆍㆍㆍ, 포클레인으로 깨뜨린 일도 있었어요."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래서 그런가요?"


국립제주박물관과 제주대학교에서 섬 내 추정 고인돌 56기 중 11기에 대하여 2년에 걸친 1차, 2차 학술발굴조사를 하였다고 한다.


"고인돌 군 일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유구·유물이 나오지 않아 적극적으로 고인돌이라 추정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예요. 결론이. 전수 조사가 아니므로 단언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고. 일본 고고학자는 고인돌이라 했는데"

풍력발전기 앞 추정 고인돌

주민은 아쉬운 표정이다. 그래서 추정 고인돌에 대한 홍보가 시들해졌다고 한다.


​풍력발전기 앞 추정 고인돌에는 관광객들이 집단으로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다. 다음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서 기다린다. 까치가 장대 끝에 앉아 사진 찍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본다.


"보리밭에 유채와 갯무가 자라고 있던데 일부러 심은 겁니까?"

갯무와 유채가 보리밭을 차지하고 있다.

"보리밭이 많이 줄었습니다. 돈도 안되고, '아름다운 섬나라' 선사에서 권장하기도 하고 작년부터 유채밭이 늘어났어요. 갯무도 심고, 가을에는 코스모스도 심으라고 한다네요. 가파도가 점점 망가지고 있어요. 가파도하면 청보리밭인데 가파도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어요."

관광객도 유채밭에 더 많이 몰린다.

실제로 청보리밭은 예전만 못하다. 상동 선착장에서 하동 포구로 가는 마을 중심에 특히 유채밭이 많다. 관광객도 유채밭에 더 많이 몰린다. 유채가 제주를 상징하는 꽃임은 분명하지만 가파도의 상징은 청보리다.

유채가 제주를 상징하는 꽃임은 분명하지만 가파도의 상징은 청보리다.

이 주민은 섬에 대한 투자가 인색하다며, '아름다운 섬나라' 선사에 대한 서운함도 토로한다. 하루 3, 4천 명이 드나드는 가파도에 공중 화장실이 부족하다며 하소연한다. ​


​"도에서 지은 선착장 앞의 공중 화장실 하나밖에 없어요. 그렇게 멋있는 전망대를 지어 놓고 화장실이 없어요."

가파도를 아끼고 걱정하는 주민이 있기에 풋풋한 보리 내음을 잊지 않고 돌아간다.

이번 가파도 여행의 촌평은 실망이 앞서지만, 아직도 고인돌의 유적 지정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줄어드 보리밭을 걱정하는 주민이 있기에 풋풋한 보리 내음을 잊지 않고 돌아간다. (2023.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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