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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Apr 27. 2023

'그 해 이후 갈치를 먹지 않습니다'

공천포와 망장포

김영삼 정부 때였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놈이 "아버지, '영식(令息)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남의 아들, 특히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부르는 말이란다. 딸은 영애고, 부인은 영부인이라 부르고. 그런데 요즘은 대통령의 아들을 부르는 말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그러자 이 녀석이 맹랑한 소리를 한다. "아, 그래서 대통령을 '영삼이'라 하는구나."

공천포

당시 부산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을 '영새미'이라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아들의 '영삼이' 발언을 떠오르게 한 '공(영)새미' 식당이 있는 공천포를 찾는다. 공천포는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맛이 좋은 샘물을 바친다 ‘라는 뜻으로 지어진 지명인 공샘이(공새미)가 공천포로 바뀌었다고 한다.

신례천 하구의 당목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차 한 잔 마시며 바라보는 공천 포구가 왠지 모를 친근함이 들어 자주 찾던 공천포. 방파제가 포구를 편안하게 감싸고 있고, 마을을 지키는 당목 앞의 갯바위에는 종종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들을 만날 수 있다.

신례천 놀이터

이곳에 오면 찾는 곳이 있다. 신례천 한가운데 있는 소나무 숲 맞은편에 갤러리가 있다.

바람섬 갤러리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 강길순 님의 작업실 겸 작은 갤러리다. 제주에서 미술 교사를 하다가 은퇴한 후, 제주의 풍경과 해녀를 소재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바람섬 갯당, 영등, 절울, 신목, 따개, 해녀'들에서 영감을 얻어 조각과 사진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제주의 풍경과 해녀를 소재로 창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히고 바다 날씨를 살피는 해녀 조각상 뒤에, 테왁과 망사리가 전시되어 있다. 새로 전시한 작품이다. 강 작가는 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 갔다가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라며 그 경위를 설명한다.

바다 날씨를 살피는 해녀 조각상 뒤에 테왁과 망사리가 전시되어 있다.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 앉은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이젠 눈물도 말랐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그때 이야기를 했어요. 4.3 때 법환마을에 살았대요. 왜 범섬이 마을 바로 앞에 호기롭게 떠있는 갯무꽃이 아름다운 마을이지요."


"난리 통에 할머니의 아버지와 오빠는 마을 사람들 수십 명과 함께 허리춤에 돌덩이를 단 채 범섬 앞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여태 가슴에 묻고 살다가 이제 말한다면서 말을 이어 갔어요. 그 해  여름에 법환 앞바다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가 많이 잡혔대요."


"할머니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갈치를 안 먹습니다'하면서 눈에 이슬이 맺혔어요."

4.3 7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했던 테왁과 망사리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 드리려고, 또 그날 만난 할머니를 위로하려는 마음에 이 '테왁과 망사리'를 만들었어요. 밑에 범섬을 그려 넣고, 갯무로 장식했지요. 폭력과 억압이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보내드리려고 나비와 종이배를 그렸어요."


우리는 갤러리 앞의 돌담에 심어진 여러해살이풀들을 보며 고조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힌다.

종려방동사니, 원평소국, 암대극, 갯모밀덩굴(위 왼쪽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용암이 흘러내려 덮은 해안에 기묘한 모양을 한 바위들이 거친 비바람과 파도를 맨몸으로 맞이한다. 이 모습이 애처로워 지의류가 바위에 옷을 입힌다. 생물이 살아갈 최소한의 쉼터를 만든다. 이끼도 생기고 털머위도 뿌리를 내린다.

용암으로 굳은 바위에 지의류, 이끼, 털머위 등 생물체가 살아간다.

불광선원 아래 해변으로 내려가서 망장포로 간다. 예전에 올레5길이 지나가던 길인 것 같다. 길 옆에 올레5길이라는 표식이 보인다. 눈, 코, 입, 귀가 있는 유인원처럼 생긴 바위가 망장포를 바라본다.

유인원처럼 생긴 바위

망장포 해변은 화산의 분화구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바닷물을 만나 냉각·응고된 검은 바위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은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은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망장포 들머리에 제법 큰 규모의 원담이 있다. 바닷속 돌담이다. 낮은 바다를 둥글게 돌려 막고 있다. 밀물이 되면 바닷물과 함께 밀여 든 물고기를 가두던 곳이다.

망장포 원담

마을마다 익히 보던 한가로운 시골 마을 풍경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강아지와 고양이만 집을 지킨다. 마당에 심은 밀감나무에는 흰 꽃이 피기 시작한다. (2023. 4. 25)

한가로운 망장포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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